[창간호/1999년9월호]

IMF로 각광받는 국민은행

글/ 趙長鎬 조장호 편집위원(한라대 교수, 전 매일경제 논설실장)

IMF계기로 기업금융 영역 넓혀

만약에 IMF 사태가 없었다면 국민은행이 오늘날처럼 우리 국민들이나 내외 여론의 높은 관심과 각광을 받을 수가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는 못했을 것이다.

IMF 사태라는 엄청난 국난이 있어 국민은행의 건실성과 우수성이 돋보이게 됐고, 그 때문에 서민금융을 전문으로 하는 ‘국내은행’에서 단숨에 국제거래를 주업으로 하는 기업금융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세계적인 은행(world class bank)’으로의 부상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예금자)들은 어느 은행의 경영이나 재무상태가 예금이나 금융거래 등 자신의 재산과 이익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은행이면 같은 은행들이려니 했었고, 그래서 안정성보다는 편의성을 더 따져서 거래를 해왔다.

은행이나 그 종사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별히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최신 금융기법을 확보하거나, 경영의 건전성을 중시해서 대규모 투자를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꾸준히 경영의 건실성과 재무구조개선, 고객확보 등 경쟁력 강화에 힘써 온 은행들도 적지 않았다.

이를테면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 비율 8%를 넘어서는 국민, 신한, 주택, 하나, 한미, 보람, 장기은행과 대구, 전북, 광주은행들이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사람들이 신용상태가 우수하고 안전성이 높을 것이라고 막연히 믿고 있었던, 이른바 7대 시중은행들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적으로 연륜이 낮거나 규모가 작은 은행들이었다.

특히 국민은행의 경우, 그 경영과 자산 상태가 각 부문에서 두드러진다. IMF 사태를 맞기 전인 96년 실적으로 볼 때, 총 수신고가 33조원으로 국내 은행들 가운데서 1위, 점포수 역시 5백개로 1위, 거래고객도 1천2백만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업무이익과 당기순이익도 각각 5천1백18억원과 1천6백36억원으로 업계 최고를 기록했으며, 부실여신 비율은 0.37%로 가장 낮았다.

이는 국민은행의 우수한 재무건전성과 내재가치성을 얘기해 주는 것으로서 96년에 발행한 해외DR(주식예탁증서) 3억 달러가 27%라는 유례없이 높은 프리미엄으로 판매되는 실적을 올리게 했을 뿐만 아니라, IMF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결행한 금융개혁에서 국민은행이 중소기업자금 전문은행인 대동은행을 인수하고, 이어서 장기금융을 전담하는 장기신용은행과 주도적인 위치에서 합병을 하게 된 힘이 됐다.

국민은행은 이러한 합병과정을 거쳐서 지난 5월 말 현재로 총자산 81조원, 총수신 55조원, 총여신 36조5천억원에, BIS기준 9.61%(6월 말 유치한 골드만삭스 납입자본을 포함하면 10.81%)의 경영지표를 기록하고 있다.

마침내 경영규모나 내용면에서 국내 최대의 선도 은행이자 최우량 은행의 위치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세계를 향한 도약기반 선점

지난 5월 27일, 국민은행은 미국의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5억달러의 자본참여 계약을 체결했다.

골드만삭스가 운용하는 투자펀드가 국민은행이 발행하는 신주 3천만주를 액면가(주당 5천원)보다 2.4배가 많은 1만2천원씩에 인수하고, 별도로 6년짜리 후순위 해외전환사채 2억 달러어치를 주당 1만4천2백원씩에 더 매입하기로 한 내용이다.

만기가 되어 골드만삭스가 이 전환사채를 모두 주식으로 바꾼다면, 국민은행 전체 주식의 17%를 갖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11.3%를 넘어선다. 일약 최대 주주가 되는 것이지만, 경영권 참여에는 제한을 두고 있는 전략적 제휴의 형태다.

현재의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이러한 외자유치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하나는 이른바 IMF 사태라는 외환 및 금융 위기를 당한 국가의 금융기관으로서 그 대외적 신인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이요, 다른 하나는 패러다임 자체가 종래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글로벌’ 경쟁환경에서 새로운 활로 타개와 도약의 기틀을 확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부와 기업, 금융기관들이 발벗고 나선 외자유치는 비단 당장의 환란을 타개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어 가는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세계적인 경쟁 우위의 기업들과 연계해서 생존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특히 금융기관의 사정은 좀 더 절박하다. 우리를 포함해서 아시아권에서 외환위기가 일어난 가장 중요한 원인이 이들 국가의 낙후된 금융시스템 때문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신흥시장(Emerging Market)으로 주목받으면서 고속성장을 해 온 실물 부문에 금융산업이 적절한 지원을 해 줄 수 있었던들 이처럼 혹독한 고통은 없었을 것이고, 더욱이 세계경제 자체가 종래의 실물자산 주도에서 금융자산 주도로 바뀌고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능동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만 갖췄어도 굳이 IMF의 신세를 지게 되는 최악의 사태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점에서 국민은행이 외환은행(98년 7월 29일, 독일 코메르츠방크로부터 3천5백억원)에 이어서 외자유치를 실현시킨 것은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신인도가 그만큼 인정받고 있다는 점과 함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처할 선진금융기법 및 경영 노하우,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의 구축 등 세계를 향한 도약의 기반을 확보하게 됐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국민은행의 가능성을 평가하는 자료들은 최근 줄을 잇고 있다. 우선 국민은행주가 증권시장에서 주택은행주와 함께 가장 인기 있는 은행주가 되어 있다는 점이 그렇다.

지금 외국인들을 비롯해서 대규모 펀드 운용자 등 우리 증권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투자자들의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에 주가는 곧 그 기업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이라고 해서 잘못이 없는 것이다.

경제개발 발 맞춰 온 서민은행

국민은행은 지난 63년 2월 1일, 그 동안 서민금융을 맡아왔던 무진회사(無盡會社) 등을 모체로 한 국책은행으로 출범했다.

일반 개인들과, 국민가계 및 소규모 기업들에게 금융편의를 제공함으로서 이들의 경제적 지위를 향상하고, 이를 통해서 국민경제의 창달을 도모한다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

이른바 ‘보릿고개’로 대표되는 기아선상의 민생고를 해결해내기 위한 최첨병의 역할을 국민은행이 떠맡았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은행은 이렇게 주로 서민 가계나 개인 사업자금을 다루기 때문에 사업규모 역시, 대규모 기업을 상대로 하는 다른 시중은행들에 비해 훨씬 작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민은행은 불과 36년이라는 짧은 연륜 속에서 높은 수준의 성장을 지속해서 마침내 국내 금융기관의 선두권에 서게 됐다.

이러한 국민은행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 요인은 전문가들의 시각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 하나는 국민은행이 서민을 상대로 한 소매금융을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기업금융을 주로 하는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서 거래 고객과 점포수가 많아서 서민 고객의 바로 곁에서 친근 관계를 형성할 수가 있었다는 점이다.

또 이러한 고객 밀착도가 국민 가계소득의 급속 향상과정에서 국민은행의 빠른 성장을 도왔다는 것이다. 자금운용 면에서도 건당 대출규모가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훨씬 작기 때문에 안정성이 높았다는 점, 그리고 기업자금을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관치금융의 전형인 대규모 대출압력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으리라는 점도 지적된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은 반드시 경영상의 강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하는 면도 크다.

물론 1천2백만명을 넘는 국내은행 최대의 고객과 5백개에 이르는 광범위한 점포망이 국민은행의 사업성장에 크게 기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소매금융 전문이란 점에서 납입 자본금의 규모가 작고, 도매금융분야 및 국제금융분야의 기반이 취약하고, 또 전문인력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은데다 많은 직원들과 많은 점포를 운용해야 하기 때문에 1인당 생산성이 낮고 취급 손비가 크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따라서 보다 정확한 성장 요인으로 국민은행의 조직문화와 경영의 견실성, 미래를 대비한 선행투자, 그리고 특히 민영화 이후 크게 두드러진 자율과 책임경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은행에 한 발 앞선 전산 및 기술력으로 구축된 전산화와 전국 방방곡곡을 잇는 네트워크를 활용한 정보화, 그리고 자산의 건전성과 높은 수익성이 바탕이 되어 상승효과를 얻고 있는 대(對) 고객 이미지 향상 등이 국민은행의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특히 국민은행을 이러한 위치로까지 발전시킨 데는 국민은행만의 독특한 조직문화가 뒷받침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국민은행의 조직문화는 크게 다섯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 왔다. 첫 번째는 창립기로서 공동체 의식의 발아기라 할 수 있고, 다음이 70년대 전반의 정착기로 특히 이 기간동안에는 ‘인화·단결’과 ‘개척자 정신’등 행내의 결속에 힘써 왔다.

이렇게 결속된 힘과 정신을 바탕으로 ‘가장 편리하고 친절한 은행’이란 이미지를 소비자 고객에게 각인시킨 성장기(70년대 후반 ~ 80년대 전반), 비대해진 조직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제거해 나간 혁신기간인 성숙기(80년대 후반 ~ 90년대 전반)를 거치면서 형성된 기업문화가 지금의 민영화 시기(95년 ~ 현재)를 맞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행은 조직문화를 대표하는 양대정신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국민은행의 심볼인 ‘빅맨(Big Man)정신’이고, 또 하나는 ‘꿀벌정신’이다.

빅맨정신은 고객제일주의로, 고객의 손발이 되는 편리한 은행, 고객의 마음이 되는 편안한 은행, 고객의 미래를 도와주고 책임지는 은행을 근간으로 하는 대외적인 정신문화이고, 꿀벌정신은 국민은행인들의 의식통합과 일체감을 조성해서 조직문화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능률제일주의’다.

조직역량 통합이 최대 관건

국민은행은 합병을 계기로 지금의 국내 최고은행에서 21세기 소매금융의 세계 최고은행인 초선도은행(Super Leading Bank)을 지향하는 뉴 뱅크(New Bank) 경영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사실 국민은행의 경우, 합병의 시너지 효과가 작지 않으리라는 견해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함께 하고 있다.

즉 종래 국민은행이 가지고 있는 강점(강인한 조직문화, 탄탄한 재무구조, 최다 고객 및 점포망, 우수한 전산·정보화 등)에 장기신용은행이 가지고 있는 강점(기업금융 및 채권부문에 대한 노하우, 기업 Rating System)이 보태져 소매 및 기업금융 면에서 효과적인 사업확장을 할 수 있고, 여기에 민영화 이후 나타나고 있는 대국민 이미지 향상, IMF 이후 돋보인 대외 신인도 등이 보태져서 초선도은행으로의 도약을 돕게 되리라는 것이다.

국민은행은 이를 위해 고객중심경영, 투명경영, 정도경영, 책임경영을 통해 주주가치를 극대화한다는 경영방침과 가계 및 중소기업 등 핵심시장을 확고하게 주도하고 자산의 건전성과 부실자산 종합관리 등 국제수준의 클린뱅크화, 또 수익원을 다변화하고 비용구조를 합리화해서 최고의 수익을 올리겠다는 경영전략을 세워 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욕에 찬 계획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조직의 역량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통합하고 발휘할 수 있느냐 하는 점에 있다. 각기 다른 3개의 이질적인 기업문화에 길들여진 1만2천명을 헤아리는 조직원들의 의식구조를 화합적으로 통합하는 문제, 20여 개에 이르는 자회사 등 산하 조직의 효과적인 구조조정 문제 등, 통합은행의 잠재적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반조성 여부가 국민은행의 초선도은행화의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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