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호]

재해는 나랏님도 못 고친다, 글쎄?

글/朴正姬 (박정희 한국여성환경운동본부 회장, 전 서울 YWCA회장)

천재에서 관재로

관례같이 되어버린 매년 겪는 수재 물난리는 천재(天災)라기보다는 무분별한 개발이 몰고온 인재(人災)이자, 관재(官災)라 하겠다.

자연재해를 근본적으로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재해가 반복되는 것은 중앙정부나 지방자치 단체에서 눈에 보이는 효용성만을` 중시, 즉 임기 내에 준공이 가능한 도로, 문화시설 등의 전시행정에만 치우친 결과이다. 앞날을 내다보고 제방정비, 하천준설, 댐공사 등의 예산배정을 우선순위로 한 정책을 집행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국토이용계획, 도시개발 기본계획시 환경영향 평가를 제대로 실시하지 않은 난개발에 따른 결과로 보여진다.

재해의 근본 원인은 인류의 환경파괴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인과응보’이지만 예방할 수 있는 수해도 있는 것이다.

준농림지에 건축이 허용되면서 수자원 보호지역과 농경지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건설했는데 여기서 나오는 생활오수도 문제지만 무분별한 택지조성, 도시화로 인한 개발이 토사유출을 불러 소하천의 하상을 상승시키고, 물의 흐름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또한 농지, 잡종지, 녹지로 존재했을 때에는 물이 땅속에 스며들어 수목에 의해 흡수되는 양이 많았으나 도로와 주택단지 등 콘크리트로 씌워지는 면적이 늘면서 빗물, 지표수들이 개량되지 않은 기존의 하천으로 흘러들어가 물이 넘치게 되므로써 수해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대단위의 주택지를 개발할 때는 우선 상하수도, 폐수처리, 산에서 밀려내려오는 빗물 등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강폭과 개천폭을 넓히고 지역에 따라 적정한 제방공사 등 종합적인 치수(治水)대책을 감안한 도시계획이 이루어져야 원칙이다.

또한 저지대 개발은 충분한 배수 능력을 갖춘 유수지 마련이 우선돼야 하고 펌프시설의 설치와 함께 홍수조절 능력을 갖추었을 때만 허가해 주어야 할 것이다.

수도권 외곽은 물론 통칭 시골로 불리는 지방에서도 논바닥 가운데 콘크리트 아파트 한두 채가 우뚝 버티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눈에 거슬리는 풍경이다.

주위와 조화를 이룬 나지막하면서도 아름다운 주택들이 노랑 유채꽃 등 자연과 어울려 있는 유럽의 농촌 마을과는 사뭇 대비된다.

그린벨트마저 해제하니

현재 자연재해라고 하는 기상이변의 주요인은 엘리뇨 현상으로 지구촌 한쪽에는 폭우를, 또다른 쪽에서는 가뭄과 혹서를 발생시키고 있다.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함으로써 자동차 배기가스 등이 대기중에 이산화탄소를 증가시켜 엘리뇨 현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대기온도 상승과 해수면 상승은 생태계의 변화와 균형을 파괴시키며 사회경제 차원의 농업, 축산 및 산업활동 전반과 주거, 건강 등 인간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자연생태계의 변화에서 비롯되는 강수량의 변화는 가용 수자원의 변화를 가져오고, 게다가 이산화탄소를 다 흡수하지 못하는 결과, 토양의 사막화 및 질병, 생물의 멸종, 해안지역과 저지대의 침수, 홍수, 파괴 등을 예고하고 있다.

인류는 매년 수십억톤의 이산화탄소를 대기중에 내뿜고 있는 바, 그런 면에서 기상이변이나 수재도 따지고 보면 천재가 아닌 인재인 것이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그린벨트 해제는 장차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킬지도 모른다.

평지에 속하는 춘천권 녹지 21.3%에 공장이나 주택이 건설될 경우(현재 축사를 공장으로 바꾸어 쓰고 있음) 팔당 상류인 북한강을 오염시키고, 진주권의 남강물은 경남지역과 부산권의 식수로 사용될 예정인데 남강댐 주변에 공장과 주택이 들어서면 경남지역 주민들은 공장폐수를 먹게 될지도 모른다.

28년 전, 그린벨트로 지정되었을 당시부터 그곳에 살았던 주민들에게는 보상 등 대책이 필요하겠지만 개발제한 구역임을 알고 그 후에 들어온 사람에게까지 해제해 주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다시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 관리하자는 의견도 대두되지만 일단 해제된 것을 다시 보호구역으로 묶는다면 주민들의 반발이란 불 보듯 뻔하다. 그린벨트 해제로 인해 또 다른 재해를 불러오지 않도록 정책 결정자들은 미리 대비해야 할 것이다.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 지방자치단체가 할 일 외에 주민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우리 고장 우리가 지키려고 철원군 주민 90명이 7시간 사투로 마대 2천개를 쌓아 고비를 모면한 것처럼 주민들의 환경의식 전환도 중요하고 주민들의 제안이 정부에 관철되도록 계속 노력함도 요청된다.

치수가 곧 경제다

양자강의 범람으로 9천명이 사망하고 2억2천만명의 이재민이 발생, 경제적 손실 규모가 국가 예산의 16%인 9천7백억원에 달했던 중국의 교훈을 잊지 말자.

우리나라도 재해 복구비로 경기도만 해도 87억원을 이미 집행하였다.

응급복구를 위한 교부금 3백10억원을 지원할 예정인데 지방비 1천9백억원을 보태 급한 불을 끌 수 있다.

그러나 중장비·군병력의 동원, 가축 폐사 및 전염병 예방비, 쓰레기·분뇨 등의 청소 비용, 이밖에 전기·전화·통신·가스 및 침수 농경지 복구 비용 등을 종합하면 예방사업에 드는 비용이 복구비용보다 훨씬 적게 소요됨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장들은 깨닫고 대처해야 한다.

추경예산에서 긴급예산을 투입, 재해방지 대책을 세우고 상습 재해구역 및 저지대의 신규 택지개발 억제, 일정 면적의 녹지 보전 의무화 등 수자원 장기 종합대책을 10년 단위로 수립토록 할 것이라니 다행이지만 댐건설, 맑은 물 공급과 수량 조절 등의 업무가 환경부로 이관되어 물의 양과 질을 함께 관리토록 함이 옳을 것 같다.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기능하는 미국의 재난관리청과 일본의 국토청에서 재해대책을 수립함에 있어 예방을 최우선 과제로 다루는 사실을 본받을 필요가 있겠다.

우리나라의 기상예보가 AFKN, NHK 방송과 다르게 보도되고, 잘맞지 않는 현실도 직시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기상예보 시스템을 강화하고 최신 과학화로 기상변화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재해 예방 예산 확충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비용 중 치수 부문 예산이 3%로 책정되어 있는데 이 또한 늘려서 인재를 막아야 할 것이다.

당장은 정부의 1조원 보조와 이재민 구호 구난비가 급선무이다.

수재민을 돕는 성금이 답지하고, 자원봉사자들이 수해복구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더불어 사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어 다행스럽기도 하나, 현 정부가 작년에 진 빚이 보증채무 등 1백43조원으로 97년에 비해 126% 증가, 금액으로 무려 80조원 규모나 늘었다고 하니 걱정이 앞선다.

최근 우리 경제는 경영실패자 및 기업 구조조정 기피 경영진을 퇴출시키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부실경영 예방에 힘쓰지 않고 부실이 발생하고서야 사후처리에 급급하여 계획되지 않았던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 부실기업의 생리다.

치수계획도 이와 흡사하다. 치수는 곧 경제인 것이다.

앞으로 우리들은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해 장기적인 재해예방 계획을 수립하고 차곡차곡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연, 학연, 정당보다는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을 지자체 단체장으로 선출해야겠다. 행정가도 정직, 성실, 비전을 바탕으로 재해예방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영입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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