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호]

한국적 경제모델과 재벌개혁

글 / 權和燮(권화섭) 편집위원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

폴 새뮤얼슨은 경제학자들의 우상이 될만하다. 1941년 MIT 경제학 교수가 된 그는 15년 후대학교수로서 최고 영예인 MIT석좌교수(Institutional Professor)에 올랐고 1970년에는 “경제이론에서 과학적 분석의 수준을 격상”시킨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경제학에 얽매인 외통수 경제학자는 결코 아니다. 그의 말인즉슨 “경제이론과 원칙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현실에 적용할 때는 듬뿍 소금을 쳐야한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새삼스레 새뮤얼슨의 이 말을 떠올리는 것은 경제개혁, 재벌개혁을 둘러싸고 우리사회가 위험스런 이분법적 논쟁에 휘말려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정부측의 개혁 당위론과 재계의 현실론이 공통의 목적을 추구하는 두 가지 접근법인데 서로를 전혀 신뢰하지 못하고 절대적 대립양상을 빚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하는 일에는 절대로 옳고 또 틀린 것이란 없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경제운용방식, 즉 한국적 경제모델은 악덕이며 무조건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하는가? 그것도 그냥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한꺼번에 몽땅 바꾸려고 하는가?

정부가 뜯어고치려는 한국적 경제모델의 주된 타깃은 재벌그룹이다. 그 재벌들이 IMF 사태의 원흉이고, 그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한 한국경제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개혁주체와 경제관료들의 주장이다.

최근 정부의 재벌개혁론은 사뭇 이념화 형태를 갖추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재벌개혁을 한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이후 정부내 분위기가 그렇게 바뀐 것이다. 그런데 일종의 에너지 균형의 법칙이랄까, 국내외에서 뜻밖의 재벌옹호론이 제기되었다. 김대통령의 재벌개혁이 “금융제국주의의 이익을 위한 것”(일본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이며 “재벌은 IMF사태의 원흉도 아니고 또 구태여 해체할 필요도 없다”(서울대 송병락교수)는 주장이다.

여기서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를 따지는 것은 헛수고다. 그러기보다 우리는 새뮤얼슨의 충고처럼 양측의 주장에 듬뿍 소금을 치고 냉철하게 그 손익을 따지는 자세가 중요하다.

가장 먼저 따져보아야 할 점은 IMF 사태가 과연 재벌그룹들의 책임이며, 그 재벌들이 중심역할을 하는 한국적 경제모델의 책임인가 하는 의문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장황한 논란이 필요없다. IMF 사태의 진짜 범인은 “고루하고 부패한 한국정치”이지 재벌그룹이 아닌 것이다. 재벌그룹의 책임은 그러한 한국정치로 인해 빚어진 사태의 파생물일 뿐이지 결코 그 원흉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1년 여전 태국의 한 저명한 경제학자가 제기한 IMF 사태와 한국경제에 관한 비판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창노이'라는 필명으로 영자지 '더 네이션'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아시아 위기에서 가장 잘못된 한가지 측면은 “아시아인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관한 분석을, 아시아에 대해 단지 일시적인 관심밖에 갖지 않은 외부전문가들에게 내맡겼고, 그들로부터 아시아 자본주의에 대한 사형선고를 받고는, 그것을 미국식 자본주의로 바꾸는 것을 유일한 위기 탈출의 길로 삼고있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한국의 경제위기와 관련하여 “그것은 한국의 접근(경제모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정부가 그 모델을 너무 쉽사리 내버렸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90년대 초에 문민정부는 세계은행의 종용에 따라 경제계획기구를 서둘러 폐기하고(경제기획원의 해체) 자본시장을 자유화했으며 이때부터 갑자기 외국의 저리자금이 쏟아져 들어오고 정부의 단속력이 사라진 가운데 한국기업들이 중복과잉투자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때의 상황에 언급하면서 “그것은 잘 훈련된 오토바이 편대주행 시범팀이 돌연 대오를 이탈하여 모두가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미친 듯이 한가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모습이었다”라고 표현했다. 이런 상황은 결코 경제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는 어떠한 경제도 온전할 수가 없다. 그래도 한국경제이니 만큼 위기 1년 반만에 최악의 경제파탄을 딛고 일어서 다시 8%가 넘는 고성장으로 복귀하는 탄력성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또 한가지 따져보아야 할 점은 정부의 재벌개혁 이념화와 정책능력 과신이다. 개혁은 나쁜 것을 바로 잡는 것이다. 그러니 재벌그룹의 잘못된 행태와 구조도 개혁해야 옳다. 그러나 이를 절대적 가치로 간주하고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경제가 죽는다는 강박관념은 경계해야 한다. 그처럼 경직된 정책자세로는 자칫 재벌개혁이 한국경제 죽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특히 경계해야 할 점은 적절한 보완대책 없는 무리한 재벌개혁의 추진이다. 최근 대우그룹의 워크아웃과 해체과정에서 목격하듯이 정부의 경제적 위기관리능력은 결코 신뢰할만한 것이 못된다. 이것은 재벌개혁의 각종 정책수단을 발동함에 있어서 정부는 그로인해 빚어질 수 있는 제반 파장을 신중히 검토하고 대비책을 세운 후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하지만 정부의 경제개혁, 재벌개혁에서 우리는 그러한 신중함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목격하는 바는 정치권과 관료들이 경쟁적으로 공적(功績)다툼을 하는 한건주의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선임장관의 충고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과잉기대는 금물”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충고했다. “경제회복의 열쇠는 체제를 깨끗이 하고 신뢰를 되찾아 자본을 되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자율과 환율,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이 정상화될 것이다....위기 대처를 위해 동원한 조치들, 예컨대 은행 시스템의 개혁과 규제개선, 정실주의의 청산 등이 신속한 문화적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경솔한 짓거리다. 위기가 터진 다음날 잠에서 깨어나 '우리 잘못했다. 새롭게 하자'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그런데 우리는 바로 그런 비현실적인 행동을 하면서 우리가 가장 영리하게 경제개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것은 리콴유 전수상의 말처럼 “과잉기대”이자 동시에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이다. 우리의 정치문화와 사회의식, 그리고 경제 인프라가 전혀 바뀌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가운데 기업의 소유지배구조와 경영형태를 한꺼번에 바꾸려고 다그치는 것은 경제개혁의 의지를 내보이는 과시하는 효과는 얻을 수 있을지라도 결코 현명한 정책적 접근이 될 수 없다.

IMF 관리체제를 통해 한국의 과거 경제모델은 이미 상당히 해체되었고 시대적으로 그것을 되살리는 것은 전혀 무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의 한국모델에서 한가지 사실만은 영원히 진리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부와 기업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미는 협력적인 관민(官民)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을 때 우리경제가 고도성장을 실현했으며 이제 그것이 서로를 불신하고 견제하는, 다분히 적대적인 민관(民官)관계로 어순을 바꾸면서 경제적 후퇴와 외환위기의 파국을 맞았다는 사실이다.

정부와 민간기업이 지금처럼 서로를 개혁대상으로 지목하고 갈등과 긴장의 관계를 지속하는 한 한국경제에는 희망이 없다. 관민관계이든 민관관계이든 그 순서와 명칭에 상관없이 정부와 민간기업을 든든한 신뢰와 협력관계로 묶는 것이 21세기 한국경제 모델의 요체이며 새뮤얼슨의 소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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