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호]

확률 0.025%의 노다지 성공

자동차 회사 순익의 2배 가망

글 / 李漢城(이한성) 전문위원

77억원 들인 금광맥 개발

신약은 이른바 ‘제약산업의 금광맥’이라 불리운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은 물론이고 인력과 장비가 투입되지만 성공확률은 4천건당 1건으로 극히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성공하면 이에 따른 대가는 엄청나다. 부가가치를 차치하고라도 순익만 70∼80%가 넘기 때문이다.

SK케미칼이 개발에 성공한 국내신약 1호 선플라(항 암제)만 해도 10년간에 걸쳐 77억원의 연구개발비가 투입됐다. 여기에 동원된 인력은 연구원과 임상실험에 참여한 의사·환자 등 수백명에 이른다. 성공률도 항암제의 경우 특히 낮아 1만건당 1건으로 중도에 숱한 실패와 좌절을 거듭한다. 만약 실패했다면 이러한 엄청난 경제적 시간적 투자 비용은 모두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다행이 이 신약개발이 성공됨으로써 SK 케미칼은 연간 1억달러(1천2백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매출을 기대하게 됐다. 연구에 투입된 비용과 20%에 달하는 각종 영업비용을 빼더라도 순이익만 7천5백만달러로 9백억원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지난해 현대자동차가 1백27만5천대의 자동차를 생산해 얻은 당기 순이익은 4백65억원. 이 신약 하나로 자동차 생산의 2배에 가까운 순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신약개발은 성공만하면 노다지를 캐는 셈이다. 그러나 SK 케미칼의 신약개발 1호는 경제적 가치보다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도 신약개발국 대열에 끼었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신약을 개발한 나라는 영국·스위스·독일·프랑스 등 유럽 몇몇 나라와 미국·일본에 불과하다. 이들 나라가 세계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선진국이라는 사실은 신약개발의 부가적인 가치위력을 한마디로 대변하는 단적인 예다. 또 국산신약 1호는 우리의 제약산업 수준을 한단계 높이고 해외시장에서의 국산약 신뢰도를 제고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역사가 1백년이 넘었다고 하지만 선진국에서 우리를 보는 시각은 곱지 않았다.

‘복제품의 왕국’. 외국 제약사들이 한국 제약산업을 일컫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다. 한마디로 외국업체가 개발해 놓은 제품을 제조방법이나 제형을 교묘히 바꾸어 복사하는 것이 한국의 제약산업이라는 말이다.

또다른 의미는 우리도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다.

10년전까지만 해도 제약업계는 ‘우리의 능력으로 신약개발은 불가능하다’는 고정관념에 젖어 시도조차 꺼려왔다. 규모나 시설 자체가 취약한데다 자금력이 약한 상황에서 신약개발의 실패는 곧 기업의 끝장이라는 생각이 크게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사진캡션 : 국산신약 1호 선플라 개발주역 김대기 박사.

SK ‘선플라’는 만분의 1에 적중

신약개발이 성공할 확률은 대체로 통계학상 4천분의 1인 0.025%. 신물질 탐색에서 합성 동물실험 임상실험 제품화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보통 10∼15년이 걸리며 여기에 투입되는 비용만도 1억∼ 5억달러에 달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보통 신물질 창출에 걸리는 기간은 2∼3년, 동물실험인 전임상에는 3∼5년,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단계는 1차 1년, 2차 2년, 3차 3년 등 6년이다. 따라서 신약 하나가 탄생하려면 최소한 10년 이상이 걸리는 셈이다. 또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연구개발비와 인력 연구 장비 등도 기업으로서는 부담이 크다. 거기에 반해 성공률은 4천건당 1건으로 매우 희박하다. 신약개발은 한마디로 인간생명존중이나 성공에 따른 부가가치 기대 없이는 시도하기조차 어려운 불가능에 대한 도전인 셈이다.

SK케미칼이 개발에 성공한 국산신약 1호인 ‘선플라’는 어떤 약인가? 전문용어로는 헵타플라틴 성분의 백금착체 항암제로 성공률은 1만분의 1이며 구미선진국에서조차 개발하지 못했던 약물이다. 지금까지 사용해온 백금착체 항암제로는 1세대인 시스플라틴과 2세대인 카보플라틴 등 2가지 종류가 있었다. 시스플라틴은 항암효과는 뛰어나지만 신장독성 신경독성 탈모 구토등 부작용이 심한 단점이 있었다. 이러한 부작용을 개선한 것이 카보플라틴. 하지만 카보플라틴은 부작용은 덜하지만 항암범위가 좁고 효과가 떨어진 것이 흠이었다. 이와같이 기존의 2가지 항암제의 단점을 모두 해결하고 장점을 살린 것이 헵타플라틴 성분의 제3세대 항암제 ‘선플라’인 것이다.

개발책임자인 김대기(金大起) SK케미칼생명과학연구소 신약개발실장은 “서울대병원 등 9개병원에서 진행한 후기임상시험에서 헵타플라틴은 시스플라틴과 동등한 항암효과를 보이면서 각종 부작용은 카보플라틴보다 적게 나타났다”며 “앞으로 용법과 용량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항암적응부위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는 위암환자에게만 탁월한 임상효과를 확인했으나 앞으로 대장암이나 폐암 등 다른 부위의 항암작용도 높이겠다는 설명이다.

2호 개발 6사 각축… LG는 마지막 임상 단계

“국내신약 2호는 우리 몫이다”. SK케미칼의 1호 신약개발을 계기로 최종임상 단계에 있는 제품들이 2호를 목표로 시험을 서두르고 있다. 현재 마지막 임상단계에서 신약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업체는 LG화학을 비롯 동화약품, 대웅제약, 동아제약, 중외제약, 유한양행 등 6개. 이들 업체들은 비록 신약1호는 SK 케미칼에 뺏겼지만 2호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각오로 임상시험 마무리에 한창이다.

LG화학은 퀴놀론계 항균제의 3단계 임상시험을 현재 영국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늦어도 올해 안에 시험을 끝내고 미 식품의약국(FDA)에 허가를 신청할 방침이다. LG화학은 연초 영국의 세계적 제약회사인 스미스클라인비참社와 신약개발단계에서 상품판매까지 공동 추진하는 전략적 제휴를 맺은 바 있다.

LG화학은 신약개발 대가로 비참社로부터 1년치의 순이익 4천만달러와 매출액의 일정비율을 매년 로열티로 받기로 했다. LG화학이 개발중인 신약은 항바이러스제와 퀴놀론계 항균제다.

동화약품은 지난 6월부터 간암치료제의 2단계 후기 임상시험을 5개병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동화는 10월중 임상시험을 끝내고 연내 판매허가를 받을 예정이다.

대웅제약도 상피세포 성장인자인 이지에프(EGF)의 대량생산기술개발에 성공, 최종 임상단계에 있다. 이 신약이 개발되면 당뇨병에서 오는 발부위의 궤양성 상처나 각막손상을 부작용 없이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유한양행이 개발중인 간장치료제(YH439)도 2천년 출시를 목표로 2차임상단계를 진행하고 있다. 61억원의 연구개발비가 투입된 이 간장치료제는 88년부터 개발에 착수했으며 제품화되면 국내외에 연간 1천억원의 매출이 예상된다. 간장질환 치료효과가 탁월한데다 안전성이 뛰어난 것으로 판명돼 기술수출로 인한 고액의 기술료 수익도 기대하고 있다.

동아제약이 개발중인 항암치료제(DA-125)도 2단계후기임상시험이 진행중이어서 시판을 목전에 두고 있 다. 이 약은 그 동안 백혈병에 널리 사용해온 아드리아마이신계 항암제의 심장독성과 내성을 개선한 것으로 백혈병 치료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신물질 연구개발에만 8년간 65억원의 비용이 투입됐으며 제품화되면 연간 1백억원의 국내매출과 함께 80억달러 규모에 달하는 세계 항암제시장의 진출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외제약도 퀴놀론계 향균제인 큐록신정에 대한 마지막 임상단계인 3단계 임상시험을 서울대병원과 삼성병원등 13개병원에서 진행중이다. 이 제품의 임상시험은 미 식품의약국(FDA)의 공인 임상프로그램에 맞추어 진행 중이어서 구미선진국에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1,2단계 임상시험에서 90%의 유효율이 나타난데다 광범위한 항균효과를 보여 치료가 어려운 요로감염증과 호흡기계통의 감염에도 뛰어난 효과가 기대된다.

총 84건 진행… 아직은 걸음마 단계

현재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신약은 모두 84건. 이 가운데 71건이 신물질개발이나 합성 동물실험등 임상 전단계에 있고 13건이 임상시험 단계에 있다. 임상시험이 진행중인 13건의 신약은 대부분 최하 7년에서 11년까지 연구기간이 소요되고 있으며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언제 끝날지 미지수다. 성공여부도 장담할 수 없다. 일본이나 미국 유럽 등 기존의 신약개발국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96년까지 최근 10년간 가장 많은 신약을 개발한 나라는 일본으로 무려 1백35건이나 된다. 다음이 미국으로 1백22건이며 영국, 스위스, 프랑스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신약개발의 역사만 해도 유럽이 1백년, 미국은 60년이나 된다. 일본은 30년정도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10년으로 매우 뒤져있다. 개발실적이나 역사는 그만큼 기술과 노하우의 축적을 의미한다.

그러나 결코 기죽을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제약산업이 발전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신약개발외에 다른 방도는 없다. 물질특허가 국내에 적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복제생산도 불가능해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다.

오로지 자구적인 노력으로 신약개발경쟁에 적극 나서는 길이 우리 제약산업을 살리는 길이다. 국산신약1호에 이어 2호탄생의 예고는 우리 제약산업의 새로운 지평이라 할 수 있다.

중복 투자 경쟁 막아야… 정부 지원 시급

뒤늦게 신약개발 대열에 끼어들긴 했지만 우리 제약환경으로선 세계 굴지의 제약사와 경쟁하기엔 모든 면에서 역부족이다.

우선 같은 제품을 놓고 국내업체끼리 치열한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은 세계시장을 겨냥한 신약개발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자금력이 취약한 국내 제약산업으로서는 업체간 중복투자로 인한 비용의 낭비를 줄여야한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인곤 의원(金仁坤. 국민회의)은 중복투자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김 의원은 당시 제약협회의 조사내용을 토대로 항암제는 13건, 항생제는 12건이 신약개발에 중복투자되고 있다고 따졌다. 특히 퀴놀론계 항균제의 경우 중외제약, 대웅제약, 제일제당, 동화약품등이 45억원을 중복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개발비 투자규모도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 제약업체의 연구비 투자율은 매출액 대비 4.3%수준. 미국 21.2%, 일본 12.4%에 크게 못 미친다. 국내 1백대 제약업체의 연구개발비 총액이 2천억원인데 비해 영국 그락소웰컴 1개사는 20억달러(2조4천억원)로 무려 12배 수준이다. 연구인력도 마찬가지다. 국내업체의 연구개발인력은 모두 4천9백여명으로 업체당 평균 38명에 불과하다. 미국과 일본의 평균인원 2천명과는 비교가 안되며 국내 전체인원 조차도 그락소웰컴사의 5천명에 못 미친다. 연구시설은 말할 나위 없다. SK케미칼도 신약1호 개발과정에서 대부분의 첨단 시험장비는 국내외 아웃소싱 형태로 활용했다. 특히 임상시험기준도 국제기준에 맞추기 위해서는 상당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제 기준에 따르지 못하면 제품화가 된다해도 해외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국내제약산업을 첨단의 생명과학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장치가 큰 과제로 남아 있다.

사진-1 캡션 : SK케미칼 연구소는 국내 신약개발의 산실로 부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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