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호]

시장에 팔리는 상품만 공급한다

영진전문대학. 주문식 교육 혁명 이룩

<영진전문대학 崔達坤(최달곤)학장>

글 / 南東熙 (남동희 매일경제 경제부 차장)

맞춤식 모델이 된

주문식 교육

98년 한해동안 전국의 127개 대학에서 571명의 관계자들이 대구에 있는 영진전문대를 다녀갔다.

대학입시 복수지원에서 2중 합격자들이 4년제 대학 합격을 포기하고 선택하는 대학이 바로 영진전문대다.

영진전문대의 졸업생은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이던 지난해에도 전원 취업이 성사됐다.

영진전문대 출신은 3백만원대의 월급을 받는다.

가까운 시일 내에 재학생 전원에게 학비 없이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 학교는 연봉 5천만원을 보장한다고 신문에 교수초빙 광고를 내보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다소 황당한 이 같은 얘기들의 해답은 ‘주문식 교육’이다.

영진전문대학이 내건 슬로건은 이렇다. “주문식 교육만이 살길이다.”

주문식 교육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살아남는 문제를 언급한 것은 하마터면 죽을 뻔했기 때문이다.

80년대 말 졸업정원제가 채택되면서 전국 4년제 대학의 정원이 크게 늘어나자 그 여파로 전문대학은 입학정원을 채우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별볼 일 없는 지방의 전문대학에게는 이 문제가 존폐의 위기라는 묵직한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당시 영진전문대는 다른 전문대화 마찬가지로 정원미달→학교 재정악화→투자 미흡→교육여건 악화→졸업생의 취업부진→정원이 더 미달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들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주문식 교육은 이처럼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황에서 잉태됐다.

지금은 교육부가 주장하는 맞춤식 교육의 전형적인 모델이 된 주문식 교육이 서울이 아닌 지방의 4년제 대학도 아닌 전문대학에서 시작된 것이다.

기업이 원하는 과목만 가르친다

주문식 교육의 원리는 간단하다.

기업체가 원하는 과정만 가르치고 기업체가 요구하는 기술을 지닌 학생만 졸업시키겠다는 것이다.

처음 손댄 일은 교직원들의 봉급체계를 연봉제로 바꾸는 일이었다.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하고 토론회를 통해 인식을 바꾸는 일이 선행됐다.

전 교직원이 성남에 있는 새마을 교육원에 들어가 분임 토의를 하고 찬반투표까지 했다. 87%가 일련의 개혁 추진을 찬성했다.

당시로서는 “이 일을 제대로 못해내면 학교가 망한다.”는 눈앞의 위기감이 분위기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필요한 과목을 채택하고 필요 없는 과목은 없애는 일이 첫 단추였다.

과거에는 교수가 아는 것만 가르쳤다면 이제는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가르치겠다는 아주 간단한 원리인 셈이다.

필요 없는 교과목은 물론이고 학과마저도 없애겠다는 단호한 자세로 과목과 학과 조정에 들어갔다.

교수들과 학교측이 생존이 걸린 심각한 머리싸움에 들어갔다.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던 과목조정은 교수들이 자진해서 전과목을 모두 학교에 반납하면서 가닥이 잡혀갔다.

과목별로 5개의 등급을 매겨서 하위 등급에 속하는 과목부터 차례대로 잘라나가는 선별작업이 진행됐다.

지루한 전쟁 끝에 나중에는 아예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조사해서 그것만 가르치자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교수가 기업체 수요 방문조사

영진의 교재개발 과정도 독특하다. 교수들이 직접 기업체를 방문해서 필요한 기술수요를 조사하고 나름대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서 교재를 만든다.

주로 방학기간에 진행되는 이 작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학교가 완전히 부담한다.

이렇게 만든 교재는 그 분야에 앞서가는 5개 기업의 기술책임자가 내용을 승인하고 자필사인을 해줘야 비로소 정식 교재로 채택된다.

교재는 매 학기마다 이 같은 방식을 통해 완전히 새로 만들어진다. 새로운 것만을 가르치겠다는 고집이 스며있다.

당시 LG와 삼성이 자체적으로 기술대학을 설립하기 위해 국회에 로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4년제 대학을 나온 엔지니어들도 6개월에서 1년간에 걸쳐 새교육을 시켜야 현상 투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돈이 더 들고 시간도 소모되는 손실을 겪는 셈이다.

95년에는 영진이 앞장서서 전문대도 계열모집이 가능하도록 법을 바꾸는 작업을 추진했다.

노력의 첫 성과는 선뜻 찾아왔다.

대구 경북 지역에서 처음으로 들여다 놓은 CAD장비를 이용해 가르친 학생들을 포항제철 납품업체들이 앞다투어 데려갔다. 취직이 쉽지 않았던 여학생들까지 모두 취직이 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눈물겨운 성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영진 졸업생은 아예 다른 전문대 출신과는 다른 대접을 받는다. 다른 대학의 졸업생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것이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4년제 대학 졸업생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기계계열의 어느 코스 출신들은 입사 초봉이 3백만원에 달한다.

주문식 교육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98년에는 교수 전원이 6개 팀으로 나눠 일본 도요다자동차의 주문생산라인을 견학하고 돌아왔다.

요즘은 이처럼 다져진 주문식 교육의 현장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다른 대학의 손님들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에만 2백43개 기관과 단체에서 9백여명의 방문객이 다녀가는 바람에 의전을 위한 별도 인원이 배치됐다.

<캡션 : 학생이면 누구나 컴퓨터 입·출력 장비를 활용할 수 있는 오픈 룸>

기업이 설비, 장비도 기증

지난해 영진의 입시 경쟁률은 7대1을 넘겼다.

복수지원으로 다른 대학에 합격하더라도 상당수의 학생들이 4년제 대학을 포기하고 2년제인 영진을 선택하고 있다.

커트라인이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구의 다른 4년제 대학보다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영진전문대학의 교수들은 ‘독일 병정’이라는 소리를 곧잘 듣곤 한다.

그리고 모든 업무수행에는 인센티브제가 적용된다.

외부 사람들을 위한 위탁교육과정이나 직업교육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진행하는 당사자들이 학교측과 함께 수익을 나눠 가진다.

이외에도 거의 모든 업무의 예산 배정에는 성과에 따른 차등 지원이 이뤄진다.

명성이 알려지면서 정규과정이 아닌 기업의 위탁교육 수요도 크게 늘어났다.

기업들이 필요한 기술자를 키워주는 영진에 새로운 장비를 보내주면서 사용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외국업체들까지 국내에 새로운 장비를 판매하고 알리기 위해 최신 소프트웨어와 장비를 기증해오고 있다.

기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들여다 놓은 설비와 장비가 지난 한해 동안에만 8백억원 상당에 달했다.

세계적인 회사들이 자사 제품의 국내 진출을 위해 신제품 장비나 소프트웨어를 들고 영진을 찾아오는 이유는 그 기계나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곳을 찾아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파라매트릭사가 최근 영진에 5백억원 상당의 소프트웨어를 기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진에 가면 국내에 몇 대 없는 최신형 쾌속조형기나 3차원 스캐너와 같은 고가 장비들도 들어와 있다.

영진 졸업생은 틀림없다

최달곤(崔達坤) 학장은 이제 질적인 면도 따져야 할 때가 됐다고 되짚는다. “졸업생 중에서 ‘쓸만한 사람’만 취업시키겠다”는 말도 그런 의미다.

학교가 정한 수준에 미달한 학생은 아예 기업에 보내지 않겠다는 것은 영진 졸업생은 ‘틀림없다’는 뚜렷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수업료를 전혀 받지 않고 기업체에 철저히 서비스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이 최 학장의 꿈이다.

실현성이 없는 단순한 꿈이 아니라 내년쯤에는 신입생부터 전원에게 아예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영진전문대는 원래 지난 77년 영진공업전문대로 개교해 지난 85년 영진전문대학으로 교명을 바꾼 후 현재 7개 계열 4개학과 26개 전공팀에 입학정원이 3천명이다.

가장 인기 높은 학과는 컴퓨터정보기술계열과 기계계열, 전자정보계열, 전기계열 등이다.

컴퓨터정보기술계열은 멀티미디어 전공과 데이터베이스전공, 데이터통신전공, 사무정보전공 등으로 나눠진다.

기계계열은 정밀기계설계전공과 CAD설계전공, CAM전공, 공장자동화전공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밖에 환경조형계열과 산업정보계열, 관광계열, 산업디자인과, 패션디자인과, 유아교육과, 간호과 등이 있다.

영진전문대가 스스로 선정한 영진이 돋보이는 이유는 7가지이다.

1. 검증받은 대학이다.

2. 입학이 곧 취업이다.

3. 정보화된 인력을 기르는 대학이다.

4. 국고보조금을 가장 많이 받는 대학이다.

5. 국제화된 인재를 키워낸다.

6. 국제적 수준의 기자재와 실습실을 갖춘 대학이다.

7. 신바람나는 대학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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