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호]

전문직 몸값 올라간다

구조조정에 회계사·세무사 역할 늘어

글 / 金喆秀(김철수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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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투명성 지키는 자본주의 파수꾼

회계사와 세무사는 자본주의의 파수꾼으로 불린다. 자본주의가 기업을 축으로 지탱되고 기업활동은 회계사가 심사하는 재무제표를 통해 일반에 공개되기 때문이다. 세무사 역시 세금제도를 통해 기업의 자금흐름에 깊숙히 관여하고 개입, 그들의 선명도에 따라 기업의 투명성도 달라진다.

이들이 제역할을 못할 때 나타나는 사회적 부작용은 엄청나다. 기업의 장부조작과 음성거래가 일상화되어 사회의 기본 질서가 혼돈되고 결과적으로 재정이 흔들리면 나라가 파탄의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다. IMF를 촉발시킨 한보나 기아사태도 회계사나 세무사들이 제역할을 했다면 그들의 파행이 사전에 경고되고 국민적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회계사들의 기본 역할은 무엇보다 ‘감사(audit)’를 하는 것이다. 기업의 기초 데이터인 회계장부(매출 경상이익 순이익 부채 자본금 자산 등)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공인해 주는 작업이다. 회계사가 그 장부를 인정해 주면 장부는 대외적으로 합법성과 공신력을 얻게 된다. 상장기업의 경우 회계사가 장부를 확인만 해주면 일단 감독당국이나 금융기관에도 떳떳이 제출, 다양한 자료로 사용된다.

따라서 기업이 작성한 재무제표에 문제가 있음에도 회계사가 이를 눈감아 주면 그 피해의 불똥은 엉뚱한 데로 튄다. IMF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금융기관 부실도 여기서부터 출발했다고 말할 수 있다.

회계사 자격 따면 세무사도 자동 취득

IMF 이후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상장사 결산기일이 되면 분식결산을 한 기업들의 비리 관련 기사가 여전히 터져 나오고 회계사들이 도매금으로 욕을 먹는다. 과거에는 결산기일이 되면 아예 기업 재무담당자와 관계 회계사들이 분식결산을 하느라 머리를 맞대기 일쑤였다.

회계사들은 기업의 세무 관련 업무도 취급한다. 세무관련 신고대리, 기장업무, 세금에 대한 구제(불복청구)대행 등이 구체적인 세무 관련 역할이다. 이는 세무사 업무의 영역이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회계사도 이 업무를 취급할 수 있다. 이처럼 중복되는 업무영역을 둘러싸고 회계사와 세무사들 간의 마찰이 해묵은 갈등이지만 일단 회계사 자격증을 따면 자동적으로 세무사 자격증도 획득하는 셈이다.

세무 신고대리는 기업이나 개인이 국세청에 세무자료를 낼 때 장부를 대신 작성해 주가나 신고를 대행해 주는 것을 말한다. 구제업무는 기업이나 개인이 세금을 제대로 냈는지 확인해주고 더 많이 냈을 경우 이를 반환받을 수 있도록 법률적 자문을 대행해 주는 역할을 말한다. 구제업무는 회계사나 세무사들이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구석이다. 기업이 필요 이상의 세금을 낸 것으로 밝혀져 돈을 돌려 받게되면 이에 대한 수수료 수입이 크기 때문이다. 수수료는 변호사 사건 수임처럼 착수금과 성공보수로 나누어지는데 각각의 금액은 미리 계약을 통해 결정된다.

회계사들은 기업이나 개인의 장기적인 ‘세금전략(tax planning)’도 수립해 준다. 기업의 경우 주로 전속 회계사들이 이 업무를 대행한다. 내야할 세금액수가 큰 돈 많은 개인들도 회계사나 세무사들에게 세금전략을 짜주도록 요청한다. 몇 년전 국내에서 소개된 미국 영화 ‘쇼생크 탈출’에는 누명을 쓰고 감옥생활을 하는 주인공이 간수의 세금을 줄이는 재테크 전략을 짜주면서 그의 호의를 얻어 결국 탈출에까지 성공한다. 그만큼 세금을 내야할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구조조정기 몸 값 치솟아

경영자문도 회계사들의 빼놓을 수 없는 업무 가운데 하나다. 최근처럼 기업간 빅딜이나 M&A 등 구조조정이 활발할 때는 이들의 경영자문이 더욱 중요하다. 기업을 팔거나 살 때 관건은 기업의 가치이다. 가치를 얼마로 매기느냐에 따라 성사여부가 결정된다. 기업의 자산가치를 매길 때는 현재의 자산가치와 미래의 수익가치 등 각종 변수를 감안해야 하는데 회계사들이 이 가치평가를 하게 된다.

LG그룹과 현대그룹의 반도체 빅딜이 한창 줄달이기를 할 때 각각의 회계사들이 양쪽의 편에 포진, 치열한 대리전을 펼쳐 화제가 된 바 있다. 삼성그룹이 자동차 사업진출 여부를 놓고 내부에서 진통을 겪을 때 그룹 내 재무 담당자들의 반대가 특히 심했는데 이 역시 회계업무를 주축으로 하는 팀들이 제동을 걸었다는 후문이다. 회계사들의 파워가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실증이다. IMF 이후 유명 회계법인들이 떼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나도는 것은 그들의 몸값이 그만큼 비싸졌기 때문이다.

영국 미국에서는 직업인기도 10위 이내

회계사들은 기업의 심장부에 깊숙히 들어가 내면을 보기 때문에 그들이 역할을 제대로 해준다면 기업의 경영투명성 실현은 충분히 가능하다. 자본주의의 순기능이 그대로 살아날 수도 있는 것이다. 증권투자자들이 특정 기업의 회계장부만 보고 투자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고 정부 역시 정확하게 세원을 포착할 수 있다. 금융기관들도 공인회계사가 심사한 회계장부를 참고로 대출여부를 착오없이 결정할 수 있다. 기업의 재무정보를 필요로 하는 쪽에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동안 금융기관이나 납품업체 혹은 원청업체들은 어떤 기업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할 때 대부분 이면정보나 외곽정보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정확한 회계장부만 있으면 이런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영국이나 미국 등 자본주의가 이미 뿌리를 내린 나라에서는 이런 회계사들의 순기능이 정착돼 회계사들은 사회적으로 상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이들 국가의 회계사들은 수입과 대우면에서 전체 수만개 직업 가운데 항상 10위권 이내에 든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들 나라에 비해서는 회계사의 수입과 대우가 매우 낮은 편이다. 기업에서 회계사에 업무를 맡기는 순간부터 기업이 주도권을 잡고 우월적 지위에 서는 게 보통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회계사들이 따라가야 하는 현상도 여전하다. 기업의 밀실경영이 잔존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아직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것과 대내적으로 보유하는 기업정보가 달라야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회계장부를 비밀로 취급하는 기업문화가 이런 풍토를 만든 것으로 해석된다.

5공들어 회계사 기업종속 현상 심화

회계사들의 기업에 대한 종속현상은 5공화국 때부터 심화됐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상장사인 경우 증권감독원이 기업과 해당 회계사(회계법인)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짝을 지어 주었기 때문에 회계업무의 칼자루는 회계사들이 쥐고 있었다. 그러나 5공화국부터는 이러한 조치가 풀려 회계사들이 경쟁적으로 기업의 회계업무를 대행하기 위해 치열한 유치작전을 벌여야 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일이 생겼지만 이제는 발로 뛰지 않으면 뒤쳐지게 돼있다. 갑의 입장에서 을의 입장으로 상황이 바뀐 것이다. 설사 올해 어떤 기업의 회계업무를 맡았더라도 그 기업과 마찰을 빚으면 내년에는 거래가 끊어질 수도 있다.

회계사나 세무사들이 기업과 마찰을 일으켜 법적송사까지 가거나 함께 파산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경우 기업측이 무리한 요구를 해 회계사들이 소송을 거는 경우가 허다하고 국내에서는 한보사태 후 회계를 맡았던 청운회계법인이 청산되는 등 기업과 운명을 같이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만큼 기업과 회계사의 관계가 밀접하면서도 미묘한 사이임을 말해준다.

회계사들의 수입은 일반 샐러리맨에 비해서는 월등하다. 대형 회계법인 소속의 경우 회계사로 처음 발을 들여놓으면 기본급에 성과급을 합해 3백만원 정도를 받는다. 물론 성과급은 해당 회계사가 얼마나 사건을 많이 유치하느냐에 따라 달라 일률적으로 정하기는 힘들다. 법인소속의 경우 대부분 자신이 일을 유치해야만 인정을 받는다.

결국 법인소속 회계사의 경우 자신의 업무 유치능력과 해결능력이 있어야 실력을 인정받고 돈도 그만큼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일반기업의 이사급에 해당하는 ‘파트너’ 지위를 따면 삼일회계법인 정도의 대형 법인인 경우 연봉이 8천만원을 웃돌고 각종 인센티브를 포함하면 1억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대부분 승용차도 주어진다.

이처럼 법인에 들어가더라도 업무 유치능력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기 때문에 차라리 개업을 하는 회계사들이 늘고 있다. 어차피 사건을 따서 소속회사에 바칠 바에는 차라리 자기사업을 하자는 것이다.

회계사 연간 5백명씩 탄생

한국 공인회계사협회에 따르면 회계사 가운데 개업 회계사가 30∼40% 정도에 이르는데 이 비율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현재 회계사는 연간 5백명 정도가 배출되며 총 인원은 5천명 수준이다.

그러나 개업을 하더라도 뿌리를 내기기가 쉽지는 않다. 대형 물량의 경우 유명 회계법인이 싹쓸이를 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자산규모 8천억원 이상인 기업은 인원 1백명 이상의 큰 회계법인이 맡도록 돼있다. 중소 회계법인은 자신의 규모와 능력에 맞는 중소기업 물량을 따내는 수밖에 없다. 이들 중소 회계법인에 어쩌다 큰 물량이 걸려도 소화가 힘들어 규모가 큰 법인에 넘겨야 하는 경우도 있다.

중소 회계사무소의 경우 일단 회계업무를 맡으면 부실회사인 줄 알면서도 클레임을 걸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사무소도 일단 기반을 구축해 놓으면 수입이 괜찮다. 서울 강남의 J회계사무소 원장인 J회계사는 “개인 사무소의 경우 법인에 밀려 수주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성장성 있는 회사를 맡아 신뢰를 받으면 그 회사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덤핑을 하지 않고 제값에 업무를 수임하다 몇 개 확실한 고객을 잡는 게 효과적이라 말한다.

개업한 지 5년 정도 된 그는 처음에는 고객확보를 위해 주로 동문이나 고향 사업가들을 찾아다녔지만 이제 고객이 고객을 물고 오는 단계로 서서히 접어들고 있다. 손익분기점을 넘어 이 추세대로면 3년 후 월 1천5백만원의 수입은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일 따려고 치열 “고달픈 직업”

회계사들의 일상생활은 매우 분주하며 고달픈 측면도 있다. 다른 사무소의 기존 고객을 자신의 고객으로 돌리는 데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의 경우 가능하면 회계심사업무를 다른 데로 돌리려 하지 않는다. 그 회사의 내부기밀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은 건수라도 올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로비를 해야 하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녀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업무에 있어서도 치밀함과 정확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직접 회사에 가서 실사를 해야 하므로 어떤 때는 10일 이상 집을 떠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공인회계사의 길을 택했다가 후회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무작정 회계사 길로 접어들었다가 후회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아직도 공인회계사는 우리 사회에서 선망받는 자격사 중 하나이다. 그러나 자신이 사업능력과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자격증 소유자에서 끝난다는 게 회계사들의 자평이다.

세무사 업무여건도 회계사와 비슷

세무사의 경우도 업무 해결능력과 수주능력에 따라 성공이 좌우된다는 점에서는 회계사와 다를 바 없다. 편법이나 탈법 혹은 불법으로 세무업무를 대행해 주고 음성 수입을 올리지 않는 한 실력이 없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요즘에는 세무사 업무에서 음성적인 관행도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세무사들은 주로 납세자들이 세금을 필요 이상으로 냈을 경우 국세청을 통해 이를 돌려받게 해 준 후 보수를 받아 수입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이때 착수금과 성공보수를 두둑히 챙겨 때로 회계사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경우도 있다.

세무업무는 자칫 무언가 은밀한 작업을 하기 쉽지만 선진국에서는 재테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율이 높은 선진국에서는 돈 많은 개인의 ‘세테크’를 대행해 주는 전속 세무사가 일반화 돼 있다.

권위와 역할, 명예의 불균형

부가세 신고와 납세 불성실?

그 동안 전문직종에 대한 인식은 평소의 권위와 역할에 비해 납세 성실도가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었다.

그래서 탈루소득조사때면 언제나 전문직종이 대상으로 꼽혔다. 국세청이 많은 논란을 겪으면서 이들 전문직 종사자들을 부가세 과세대상자로 전환한 것이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올 상반기 중 신고납부액은 당초 예상보다 높았다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다. 전문직종의 명예를 생각하며 납세 불성실의 불명예를 씻고자 신고납부액을 점차 현실화하기 시작했지 않느냐는 평가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상반기중 전문직 종사자들은 총 3조4천억원의 수입을 올려 1천7백억원의 세금을 물게 되었다. 1인당 수입금액 1억6천만원, 월평균으로는 2천6백70만원을 벌었다는 계산이다.

전문직종 가운데 가장 많은 수입을 신고한 분야는 변리사로 상반기중 1인당 평균 2억7천5백만원을 벌었다. 변리사들은 외국에서의 특허출원이 증가했기 때문에 많이 번 것으로 보인다.

관세사도 수출입 통관업무가 늘어나면서 1인당 1억8천만원을 벌었고 변호사는 1억2천6백만원으로 세 번째를 기록했다.

공인회계사의 경우 올 상반기 평균 수입액이 1억2천만원으로 지난 97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두배나 늘었다고 신고했다. 이는 IMF이후 금융기관이나 기업의 자산실사 등 일거리가 크게 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비해 건축사와 기술사의 수입은 97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역시 IMF체제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전문직종의 1인당 납세액으로 보면 관세사 1천6백만원, 변리사 1천4백만원, 회계사 1천60만원, 변호사 9백40만원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변호사 가운데는 간이과세자로 신고한 사람이 전체 2천3백여명의 15%가 넘는 3백99명에 이르렀다. 세율이 낮은 간이과세자가 많다는 것이 수입액을 성실히 신고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부가세 신고자료와 재산보유현황 등을 누적 관리함으로써 불성실신고자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그래서 전문직종에 누리고 있는 권위와 역할에 비해 명예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사회적 평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좀더 적극적인 신고납부자세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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