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호]

국감에 대한 기대와 실망

그래도 국감은 필요하다

글 / 林春雄 (임춘웅 대한매일 논설위원)

여야 격돌의 총선 전초전

제15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끝났다. 지난 9월29일부터 10월18일까지 20일 동안에 걸쳐 실시된 이번 국감은 15대 국회의 마지막 국감이기도 했지만 내년 4월 총선거를 앞둔 것이어서 총선의 전초전 성격마저 없지 않았다.

이번 국감에서도 여야간 정치공방이 예외없이 그것도 극렬하게 전개됐다. 그대표적인 사례가 중앙일보 홍석현(洪錫炫) 사장의 구속사태가 빚은 여야간의 격돌이다. 이번 국감이 민생문제나 정부정책을 따지는 국감다운 감사가 되지 못하고 다시 예의 병폐인 정쟁의 도구화 한 전형적인 예이다. 국감 시작 전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돌출사건으로 문광위는 물론 상당수 상임위가 국감은 제쳐놓고 한동안정치공방으로 일관했다.

보광그룹에 대한 탈세여부 수사로 시작된 이 사건은 언론탄압 문제로 비화돼 여야간에 격렬한 정치공방 거리가 됐다. 정부여당 쪽은 홍 사장의 구속은 중앙일보와는 무관한, 홍 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보광그룹의 단순한 탈세사건이라는 주장이었고 야당측은 ‘보광’을 빙자한 언론탄압이라 맞섰다. 여기에 중앙일보와 다른 언론사들까지 제가끔 자기 시각에서 가세해 국감뿐 아니라 한동안 온나라에 떠들썩한 화제를 제공했다.

다음으로 여야간 정쟁 거리가 됐던 이슈는 도청·감청문제.

법제사법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행정자치위원회, 정보위원회 등 4개 위원회에서 예외 없이 여야간 전방위 공방전이 벌어졌다.

시민단체의 국감모니터 논란은 국회와 시민단체가 맞붙은 예. 경실련·참여연대 등 40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정감사 시민연대’와 ‘정치개혁 시민연대’(정개련)가 국감 모니터를 본격적으로 하려들자 의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 16개 상임위중 국감 모니터를 불허한 상임위는 처음에는 통일외교통상위와 국방위, 건설교통위 3개였다. 그러다 복지위와 재경위가 가세하면서 분위기가 급전, 일부 상임위를 제외한 대부분의 상임위가 시민단체의 방청을 반대하고 나섰고 일부 상임위에서는 모니터요원들을 국감장에서 강제로 밀어내는 물리적 충돌사태로까지 확대됐다.

시민감시 연대와의 몸싸움

이번 국감에 국감시민연대와 정개련은 각각 17만여명의 자원봉사 모니터 요원을 감사장에 투입해 감시활동을 펼 계획이었으나 의원들의 반발로 여의치 못했다. 이런 결과는 시민단체들이 전혀 예기치 못했던 사태다.

그러나 의원들의 열성은 비교적 높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국감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다음 선거에서 득표를 하는데 유리하다는 계산 때문이었을 것이다. 평소에는 좀처럼 국회에 나타나지도 않던 의원들 마져 자주 얼굴을 내밀었고 질의나 감사내용도 과거보다는 나아졌다는게 일반적인 인상이였다. 의원들의 국감에 임했던 태도 또한 전보다는 진지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이번 국감에서도 우리나라 국감이 지니고 있는 고질적인병폐들은 고스란히 되풀이 됐다. 국회가 됐건 국감이 됐건 ‘수준’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하루 이틀에 시정될 성질의 것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이번 국감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국회의 가장 큰 문제는 입법 기능이외에 국회가 행사해야할 가장 큰 권능인 정부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에 대한 국회와 의원들의 망각현상이다. 이승만(李承晩) 정부 때는 물론 역대 군사정권을 거쳐오는 동안 우리 국회는 행정부에 대한 견제 기능을 망각해왔고 그런 증상은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오늘날까지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국회의 행정부 견제 역할은 여전히 ‘잊혀진 기능’이 돼버렸다. 오랫동안 쓰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굳어져버린 하나의 퇴화현상이다. 국회는 언제나 여와 야로 갈라서서 여당은 맹목적이다시피 정부를 비호해야하고 야당은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고 비판하는 일에만 익숙해져 있다. 때문에 의원들의 의식도 국회 본래의 기능이나 권능에는 심히 무감각 해있다. 물론 여당의원도 가끔은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행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의식의 소멸이라고 할까, 감각의 마모현상이라고 할까. 국회가 민생·정책국회가 되지 못하고 항상 정치국회에 머물러 있는 것은 국회만이 아니라 이나라의 정치현실, 나아가 우리의 국민수준과도 무관치 않다. 때문에 이런 문제가 조만간에 시정되길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국회가 언제까지 이런 구시대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체해 있을 것인가. 21세기를 목전에 두고있는 지금 국회와 국회의원도 이제는 껍질을 부수고 새로운 세상으로 과감히 뛰쳐나오는 자기 변신의 아픔이 있어야한다. 그것은 이미 지적했듯이 우리 정치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기인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방치하거나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개혁의 시발은 역시 의원 개개인의 각성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권력 영역 넓히는 집단이기주의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라는 국회본래의 역할과 기능을 다음 16대 국회에서는 필히 회복하겠다는 일대 각성운동이 국회내에서 일어날 법하다. 이번 국감에서도 똑같은 행태 그대로 였지만 정부 관리들을 감사장에 불러다 놓고 여야 의원들끼리 서로 언성을 높혀가며 언쟁을 벌이는 추태를 더 이상 국민 앞에 내보여선 곤란하다.

다음으로는 20일 이라는 짧은 국감기간이다. 이번 국감은 16개 상임위원회가 정부와 산하단체 및 지방자치단체 등 모두 354개 기관에 대해 감사를 벌였다. 피감기관 수는 작년의 329개보다 10%가 늘어난 수치다. 해마다 피감기관은 늘고 감사기간은 20일로 제한돼 있고 보면 그 감사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피감기관을 계속해서 확대해가고 있다. 그것은 국회의원들이 권력영역을 넓혀가려는 집단이기주의 이외에 달리 설명이 가능하지 않다.

방대한 정부조직을 그짧은 기간에 감사한다는 것은 우선 물리적으로 무리한 일이다. 국감 기간동안 논의된 문제의 검증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 이려니와 감사장서 지적된 일이 어떻게 시정되고 있는지 확인마져 불가능하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피감기관을 반으로 나눠 격년제로 감사를 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국회쪽에서는 그렇게되면 피감기관은 한번만 치르면 2년은 무사히 지낼 수 있다는 안일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반대로 감사기간을 늘리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으나 이는 정부가 펄쩍 뛰는 사안이다. 20일로 제한된 국감에도 국감 때가 되면 정부가 제할 일은 미뤄두고 온통 감사에 매달리는데 기간이 길어지면 그때는 또 정부기능이 마비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우리 국회와 국회 의원들의 수준으로는 충분히 그럴법한 얘기다. 국감 때만 되면 고위공무원들을 불러다 놓고 호통치고 하인 부리듯한 의원님들 때문에 정부가 견디어 내지 못할 것 또한 빤한 일이다. 어느 나라든 국민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마련이라는 말이있다. 어느 나라든 국민 수준에 맞는 국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상임위의 상설화를 주장하고 있다. 상임위와 소위원회를 수시로 운영해서 정부에 대한 견제가 수시로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상임위원회를 상설화하자는 얘기는 국회 개혁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나오는 얘기이나 국정감사 기능의 보완을 위한 상임위의 상설에는 앞서 지적한 문제가 또 따르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국정감사 대신 청문회나 국정조사 발동요건을 완화해서 상임위 결정만으로 국조권 발동이 가능하도록 하고 상임위가 상시 열리도록 국회법을 개정하자고 주장한다. 앞서 지적한 부작용들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다면 상당히 근사한 개선책일수 있을 것이다.

하루 국감용 자료비 5천만원

국감의 진행방식을 바꿔 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현재는 위원회마다 편의상 의원끼리 차례로 돌아가며 발언하게 하다보니 중복 질문이 많고 백화점식 나열발언이 계속되는 폐단이 생겼다. 그러니 사전에 간사들이 협의해서 의원끼리 주제를 나눠맡아 심층 질의를 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좋은 발상이나 의원들이 좋아할리 만무하다. 국회 속기록에 내가 이러이러한 발언을 했다고 남겨야 선거구민들에게 내세울게 있는데 몇 가지만 중점적으로 하게되면 여러 계층의 선거구민들의 구미를 맞출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다. 중점적으로 하게 하다 보면 능력 있는 의원들이 발언을 과점하게 되는 현상도 생긴다. 따라서 무능한 의원들은 설자리가 줄어드는 문제도 파생하는 것이다. 또 모든 기관에 비슷한 시간을 배정할게 아니라 의혹이 있거나 문제가 있는 기관에 집중적으로 시간을 배정해 그 기관이나 부서에 충실한 감사가 되도록 해보자는 제안도 있다. 일괄질의, 일괄답변 형식도 1대 1질의 응답 방식으로 바꿔 보자는 안도 수 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아이디어에도 비숫한 부작용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국감 때만 되면 피감기관들은 의원들의 자료요청에 골머리를 앓는다. 올해의 경우 국감 직전인 9월27일 현재 국회의원들이 요구한 자료건수가 무려 5만1,387건에 달했다. 금년 처음으로 5만건을 돌파했다. 의원 1인당 무려 171건의 자료요청이 있었던 셈이다. 국감 중에 추가 요청된 자료건수를 보태면 이 숫자는 물론 더 늘어난다. 작년에 요청된 건수가 4만9,000여건. 해마다 자료 요청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자료요청 자체가 나쁠리야 없는 것이지만 문제는 그많은 자료가 의원들에게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국감 하루 받는데 드는 자료인쇄 비용만도 5,000여만원이 든다고 밝힌 바 있다. 자료준비에 소모되는 인력과 시간은 또 얼마나 되는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압력용으로 특정 분야나 특정문제의 자료를 요정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국정감사의 효율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도의 보완, 국회의원들의 자각과 노력, 국민의 감시가 필수적이다. 국민의 감시는 언론의 감시가 물론 핵심이지만 시민단체의 감시 기능도 매우 중요하다.

의원 평가방식에도 문제

시민단체의 감시에 대해서는 그것이 잘만 되면 정치발전에 순기능을 하게 될 것이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문제는 시민단체의 감시기능이나 의원평가가 공정하냐 하는데 있다. 이번 감사에서 충돌이 일어난 것도 의원들이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인데 의원들의 항변에도 이유가 있다.

시민단체의 모니터 요원들이 얼마나 훈련되고 국회의원들을 진단 할만한 전문적 지식을 갖추고 있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의원 개개인에 대한 평가의 기준에 대해 의원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모니터 요원들이 전문화 돼있지 않다는 점은 시민단체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또 평가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어느 기관감사가 다끝난 다음이랄지, 감사가 모두 끝난 다음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그런대로 납득할 수 있으나 매일매일 그날에 있었던 발언이나 질의 내용만 갖고 그때그때 평가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의원들의 항변에는 이유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시민단체의 감시기능이 원천봉쇄 돼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역기능보다 순기능이 더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민의 알권리를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단체가 됐든 개인이 됐든 국민의 대표인 의원이 국회에서 어떻게 활동하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몇몇 부족한 부분과 부작용은 개선 돼야겠지만 시민단체의 감시기능이 원천봉쇄 돼서는 곤란하다.

신문보도를 보면 이번 국감에서 시민연대의 방청을 봉쇄한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다른 의원이 질의하는 동안 휴게실에 나와 바둑을 두고있었다고 보도됐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국민의 감시기능이 보다더 강화돼야할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낭비, 비효율은 개선 과제

국회의 국정감사권이 부활된지도 1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자리를 잡을만한 시간도 됐다. 그러나 우리 국회의 국감은 정치현실의 덫에 걸려 좀처럼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치개혁이 생각만큼 쉬운 것도 아니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개선해 나가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감사는 없는 것보다 낫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국감은 존속돼야 하고 존속되는 한 개선을 거듭해 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앞서 지적한 여러 가지 문제점외에 국감 개선책으로 몇 가지만 첨언 해두고자 한다.

첫째 과다한 자료요청문제와 관련해 교섭단체별로 혹은 상임위원회별로 자료를 공동으로 요청하는 방안이다. 이렇게만 되어도 피감기관의 자료준비 부담이 한결 손쉬어질 것이고 낭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자료가 공동으로 요청되면 자연스럽게 중복 질문도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둘째로는 질문시간도 교섭단체별로 총량제를 도입해볼 필요가 있다. 총량제는 교섭단체의 간사 중심으로 의원끼리 주제를 나눠 맡게 하는 효과가 생길 것이다. 이는 의원들의 심층질문을 유도하게 될 것이다.

국감이 끝난 후 각 상임위별로 국감백서 발간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백서에는 각의원의 발언요지와 각주제별 국감 내용을 명시해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아울러 국감에서 지적하거나 시정을 요구한 문제의 확인절차가 필히 따라야 한다.

공영방송에서 국감을 가능한 소상히 중계방송하는 것도 검토해 볼만하다. 생중계는 힘들 것이나 시차를 두고 녹화방송이라도 많이 해주는 것이 국감의 질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국감의 질과 관련해 의원 보좌관 확충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극히 비생산적인 국회에 대한 우리사회의 생리적 거부감 때문에 국회가 돈을 쓰는 일에는 국민들이 반대부터 하게돼 있으나 의원보좌관이 터무니없이 모자라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의 경우 유급 보좌관이 의원 1인당 20명인데 우리는 여비서까지 합쳐 4명이다. 이래가지고는 좋은 국감이나 바람직한 의원상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나라 연간 국회예산이 1개 군의예산과 비슷하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국회에 들이는 돈이 1개군의 예산이라면 처음부터 국회가 잘 되길 바라는 나라가 아니다. 국회에 돈을 쓰지 말라고 할게 아니라 돈을 들여 국회가 국회 노릇을 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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