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호]

아직도 겉도는 지방자치

글 / 黃鏞周 (황용주 충남발전연구원장)

아직도 요원한 자치행정

지난 2000년간 인류가 쌓아 올리고자 몸부림 쳐온 것은 국가권력으로부터 시민사회로의 의사결정의 자유, 시민의 다양한 직업선택 그리고 평등한 복지사회 건설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오늘날 복지사회를 가름하는 척도가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어떠한가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시민의 삶의 질을 보장하고 의사결정권 행사에 시민의 자유로운 참여를 제도적으로 가능하게 만들고자 한 것이 바로 지방자치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민선 지방자치를 실시한지 만 4년을 넘기고 있지만 그동안 외형적인 제도운영의 그늘 뒤편에 감추어져 아직도 변치 않은 정치인과 행정관료들의 사고의 틀과 행위의 양태를 보느라면, 아직도 우리의 지방자치는 본질과 현상이 분리되어 심히 겉돌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력한 중앙집권체제 속에서 나라 전체가 획일적으로 통치된 결과, 고도산업사회로 이행해 가는 시대적 요구에는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자율성은 전혀 담보되지 않았다.

더욱이 보스 중심의 정치구조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참여와 개방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이는 행정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것이 더 심화된 형태로 나타난 행정구조는 지방자치라는 제도 도입에도 불구하고, 단지 한 사람의 책임자 뒤만 쫓는 형국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지방자치가 갖는 본래의 의미는 퇴색하고 아직도 전시행정과 같은 외양 갖추기에 매달리는 모습들을 보게 되면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다.

시민사회 논리와 관료집단의 논리

아직도 바뀌지 않은 보스중심의 정치현실과 중앙부처의 기능중심주의가 빚어내는 이기주의는 지방자치의 실시라는 개선된 제도 도입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런 기득권의 방어로 인해 아직도 지방자치제도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를 보면, 다양한 생산과 다양한 소비활동이 이루어지는 고도산업사회에서는 고도의 직종분화와 넓은 선택의 폭으로 빠르고 복잡한 인간활동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사회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능률적인 협업이 강조되고 이를 지탱할 수 있는 사회적 신뢰성이 구축되어야 한다. 결국 시민활동의 다양성은 직능분화와 기능적 협업을 요구하고, 이를 사회적 신뢰가 뒷받침할 수 있을 때만이 고도산업사회는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구조의 변화는 곧 시민생활을 윤택하게 하여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국가의 발전목표를 여기에 두고 있는 것이다.

즉, 고도산업사회는 시민사회로 정의되는 것이며, 그 까닭은 사회를 운영하는 기초가 관료주의가 아닌 시장주의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역사회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반영한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로 발전해 왔다. 시민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마찰도 있으며, 특히 전문화·계열화를 통해 산업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엘리트의 독선이 많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런데 사회구조변화에 둔감하고 변화와 개혁을 생래적으로 멀리하려는 엘리트·관료집단은 그들이 지녀왔던 관행과 문제풀이방식대로만 행동할 따름이다.

결국 지방자치를 실시했으나 관료집단에 의해 다양한 시민의 욕구나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는 데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겉도는 우리의 자치현실을 필자가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지방자치가 실시된 이래 지금까지 시민을 위한 봉사행정을 펼치고자 각급 자치단체별로 노력하는 모습을 적잖이 보아왔다. 그래도 지방자치라는 제도 도입으로 이만큼이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행정을 펼칠 수 있는 단초를 열어준 것만 해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어찌하여 아직도 전시행정이 계속되고 각 기능 부서간 협업이 이루어지지 않아 시민과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는가를 알아야 한다.

의사결정권이 한 사람 책임자에게 집중되어 있는 정치현실과 행정구조하에서는 다양한 시민사회의 필요를 도저히 충족시킬 수 없다.

시스템을 갖추는 길

흔히 제도 도입의 효과를 놓고 볼 때, 제도는 있으나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 형식주의를 말한다. 전혀 지켜지지 않는 제도, 있으나마나 한 제도는 형식주의의 극단적인 실례이다. 死文化되었다고 할 때 형식주의는 극명해 진다.

경우에 따라서 어떠한 제도 도입으로 다분히 상징적 효과를 겨냥할 때는 이를 통해 앞으로 잘될 것이라는 기대, 곧 심리적 만족감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제도운용의 실제 효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렇지만 정치인이나 행정책임자들은 이 부분을 매우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비록 실체는 없지만 제도 도입 자체가 갖는 상징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단기간의 실적쌓기에 몰두하는 책임자들은 이것이 전시효과나 單發性 행사에 그치고 만다는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단발성, 획일성, 전시성에 정책의 목표를 둔다면 우리의 지방자치 정착은 요원할 뿐이다.

필자는 전환시대의 국가사회적 난제들을 근본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방법 중 그래도 지방자치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다.

현재 우리의 지방자치는 본질과 현상이 따로 따로 겉돌고 있다. 지방자치를 운영해 가는 정치·행정책임자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틀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특히 엘리트의 독선과 관료들의 고정관념은 시스템운영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제기는 종래 의식이냐, 제도냐 하는 식의 이분법적 논쟁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어느 것이 더 근본적이냐를 따지는 문제도 중요하겠으나, 분명한 사실은 의식이든 제도든 간에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기본적인 가치체계와 윤리관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분명 지방자치는 중앙집권의 폐해를 제도적으로 막는데 있다.

이는 지식정보산업으로 발전하는 현대사회가 겪는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다. 그러나 아직도 한 사람의 책임자를 쫓는 보스중심의 정치운영과 행정현장에서 관료제에 매료되어 시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는 현실에서는 새로운 대책을 하루속히 도입해야만 열린사회에서 또 다른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우리는 분명 찬란한 문화민족이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여 이와 같은 문제에 슬기롭게 대처함으로써 더 이상 우리 후손들에게 역사의 오점을 남겨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는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그러나 시민들도 문제를 정확히 보고 대안을 찾아가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 진솔한 자아발견, 냉철한 자기인식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지방자치의 자리매김은 요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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