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호]

TV 정치뉴스 왜 안보나

글 / 具本弘 (구본홍 MBC보도제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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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와 흥미의 조화가 관건

TV 뉴스를 제작하는 방송사 기자와 간부들의 가장 큰 고민은 시청률이다. 아무리 특종 보도를 하고 흥미로운 기사를 다루더라도 보는 사람이 적으면 의미가 없다. 간혹 학자들이 “TV 뉴스와 드라마나 쇼프로그램처럼 시청률만 의식한다면 뉴스의 연성화를 초래하거나 선정주의에 빠지기 쉽다.”면서 뉴스의 정도를 걷기를 충고한다. 정말 저널리스트의 양심으론 그러고 싶지만 자신이 애써 제작한 뉴스를 봐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자존심의 상처를 감당해 내기 어렵다.

‘신문이 구독률과 열독률에 구애받지 말고 신문의 정도를 걸어라’고 한다면 신문사나 제작진들이 승복하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신문이나 TV 뉴스가 보게하기 위해서 마냥 흥미 거리나 눈요기거리를 제공하기는 더욱 어렵다. 결국은 조화다. 뉴스로서의 품위를 지키면서 흥미거리를 적절히 배합하는 길 뿐이다. 문제는 신문의 경우는 분야별로 페이지를 달리하는 섹션편집이 가능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好惡에 따라 보고 안보고 하면 되지만 TV 뉴스는 그런 섹션편집이 불가능하다는데 있다. 그리고 신문은 싫은 뉴스는 안보더라도 일단은 구독한다. 구독률 자체엔 큰 지장이 없다. 그러나 TV 뉴스는 큰 지장이 아예 채널을 돌려 버리면 시청률 저하란 직접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문제다. 시청률은 방송사의 위상 뿐 아니라 상업방송의 경우 유일한 수입원인 광고에 직접영향을 미치는 관계로 시청률 저하는 매출에 큰 타격을 주게된다. TV뉴스 제작진들의 고민이 거기에 있다.

관심속 무관심 정치뉴스

그런 뉴스 제작진들에겐 참으로 어쩔 수 없는 골치덩어리가 있다. 시청률을 갉아먹는 정치뉴스다. 각 방송사의 Main News인 밤 8시나 9시뉴스를 예로들면 뉴스 시작과 끝까지 시청률그라프가 전체적으로 山 모양의 곡선을 유지하지만 정치뉴스 부분에 이르면 어김없이 분화구처럼 푹꺼졌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모양새를 보인다. 정치뉴스가 나오면 「TV리모콘」으로 다른 채널로 돌렸다가 정치뉴스가 끝났으리라 짐작되면 다시 돌아온다는 얘기다.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

더구나 그라프가 가라 않는 분화구가 워낙 깊어서 가파른 상승곡선이 탄력을 잃어 원상회복은 커녕 오히려 그때부터 하향곡선을 그림으로써 전체 평균시청률에 막대한 피해를 준다. 잠시 떠났던 시청자들이 다시 돌아와 주기만 해도 괜찮겠는데 돌아오지 않고 그게그거라는 인식으로 타방송 뉴스를 그냥 본다는 것이다. 때문에 뉴스 편집회의에선 늘상 시청률을 고민하는 편집부서와 정치부간에 작은 논쟁이 일곤한다.

왜 이런가. 외국의 TV 뉴스를 보면 대통령이나 수상의 얼굴들이 뉴스의 첫머리에 등장 하고 또 그것이 시청자들의 관심사가 되곤 하는데 왜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가.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인가.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우리 국민들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은 국민도 드물지 않을까 생각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TV정치뉴스를 아예 안본다. 관심이 없다”면서도 한자리에 모이기만 하면 정치얘기로 수근거리는 모습을 흔히 보게된다. 또 일단 정치가 화두로 오르면 모두가 정치전문가로 돌변해서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논쟁도 가관이 된다. 그래도 20여년 정치판에서 눈칫살이 꽤 굳어진 기자로서 논쟁의 가닥을 잡아 줄려고 하면 그렇게 정치판을 취재 했으면서도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핀잔을 주고, 자기논리가 정답인 것처럼 우겨댄다. 내 논리가 진리라는 것이다. 그토록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자기논리로 무장하고 있는지 영 알 길이 없다.

구태의연한 정치행태 신물

관심이 있으면서 정치뉴스는 안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한마디로 정치판의 구태의연한 행태가 보기 싫다는 것이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고함을 지르고 멱살을 잡고, 삿대질 하는 모습이 방영되면 방송사 보도국은 빗발치는 항의전화로 일손을 놓게된다. 최근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시청자들의 항의전화가 많았다. 자신들의 변신을 촉구하는 정치개혁은 2년 가까이 묵혀두고 있으면서 정부나 공공단체, 기업의 개혁이 더디다고 윽박지르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속을 뒤집는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우리 국민들은 자기주장이 워낙 분명하고, 시청자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한다. 정치인들의 꼴불견이 시야를 오염시키는 뉴스를 가만둘리가 없다. 뉴스제작진들로서는 이런 현실에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 되지만 재밋는 것은 그래도 제작자들은 시청자들이 항의전화가 고마울 따름이란 것이다. 이들은 시청률그라프가 밑바닥까지 꺼지지 않게하는, 그래도 봐주긴 하는 시청자들인 까닭이다.

16대 총선을 앞두고 방송뉴스제작자들은 긴장한다. 국민들의 정치혐오가 총선이 열기를 뿜기 시작하면 점차로 관심으로 옮겨가리라 기대하지만 지금 여야가 어지럽히고 있는 정치판의 행태를 보면 지금보다 나아질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여당에 대해 이반된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신당을 창당 한다고 선언했으면 그걸로 매진 하든지 아니면 처음부터 합당을 하겠다고 할 일이지 신당창당을 발기하고 창당준비위원 까지 영입해서 발표하는 상황에서 느닷없이 합당을 하겠다고 우왕좌왕 하는 모습은 아무리 마음을 열어도 이해의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특히 김종필 총리의 태도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 국민들은 이미 그 수를 훤히 읽고 있는데, 인 듯 아닌 듯 선문답으로 눙칠려고 하는 모습은 정치혐오를 임계점까지 중폭시킬 만하다.

예측 가능한 정치 펼쳐야

정치란 예측가능해야 하고 상식적이어야 한다. 애매모호한 레토릭을 구사함으로써 국민들이 그 수를 읽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정치9단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 된다. 우리국민들은 이제 복잡하고 분명치 않은 것을 싫어 한다. 책 읽기도 그렇고 TV 보기도 그렇다. 복잡하고 골치아픈 것은 읽지도 보지도 않으려고 한다. 하물며 제대로 해석되지 않은 선문답을 짧은 TV 뉴스에서 “시청자들이 알아서 해석하라”는 식으로 보도 한다면 시청자들이 인내하면서 봐줄리가 만무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정치뉴스를 보도하지 않을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 못지않게 TV 정치뉴스도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보도 할려면 단순 현상보도에 그치지 말고 밑바닥 속셈까지 파헤쳐 시청자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내용을 속시원하게 알려 주든지 해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TV 정치뉴스도 보게 되리라 본다. 왜냐하면 우리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 만큼은 엄청나기 때문이다. 특히 TV 정치뉴스가 정치인의 구태를 질책하고 정치개혁을 앞장서 외치고, 또 그길로 몰고간다면 정치뉴스를 보지 않을리가 없는 까닭이다. 뉴스제작자의 한사람으로써 부끄럽지만 이제 정치인과 함께 정치뉴스도 반성해야 시청자가 리모콘을 잡지 않게하는 길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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