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호]

‘위로부터의 정치개혁’

글 / 李淸洙 (이청수 순천향대학교 교수·전 KBS워싱턴 총국장)

내년 총선 대대적 물갈이 예상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일대 개혁의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제1여당인 국민회의는 당총재인 김대중 대통령의 기본구상에 따라 신당 창당을 통해 정치개혁을 이룩하려 하고 있다.

그 목표는 내년 총선에서의 승리이고 그 다음은 정권 재창출일 것이다. 그래서 모든 기득권을 내놓고 제로 베이스에서 새 피를 수혈하는 새 개혁정당의 창당을 서두르고 있다.

그것은 곧 내년 총선 공천에서 최소 50%이상의 대폭적인 물갈이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집권당총재로서의 강력한 공천권행사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바로 ‘아래로부터의 정치개혁’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정치개혁’이다. 국민회의 현역의원들을 비롯한 기득권세력들이 전전긍긍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공연히 반발할 소지까지 충분히 있다.

‘정치 또는 정당 오너체제의 종식론’이 최근 여당의원연수회에서 크게 튀어나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국회의원공천이 위에서 결정되는 비민주적 절차를 탈피하고 아래의 지구당 대회나 지역구 예비선거에서 명실상부하게 결정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선 겉으로만 볼 때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라는 민주적 명분을 얻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기득권세력의 숨겨진 속셈이 깔려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일선 정당조직 현실상 지구당대회에서 사실상 위원장을 뽑고 공천자를 결정할 경우 현역의원이나 기존 지구당위원장이 훨씬 유리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새 조직책으로 지구당 창당절차를 밟는다해도 조직력과 자금력에서 기득권세력에 밀릴 수 있다.

예비선거제 도입 생각해 볼만

그렇다면 미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일반유권자도 참여할 수 있는 예비선거제도의 도입을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는 각 지역구당원만 참가할 수 있는 폐쇄적 코커스(지구당원대회)가 아니라 당일까지 당원등록만 하면 누구나 투표에 참가할 수 있는 개방적 코커스방식이 있을 수 있다.

또 타당 예비선거에 참가한 사람은 제외하고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제한적 예비선거와 다른 당 당원까지도 참가할 수 있는 개방적 예비선거방식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이런 제도를 채택한다면 우선 개방적 코커스방식이나 제한적 예비선거방식에서 출발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조직력이나 자금력 또는 지명도가 대체로 우세한 기득권자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뿐만 아니라 예비선거가 조직적 동원 등으로 과열되면 금권선거, 타락선거가 재현될 수 있고 선거를 두 번 치르는 것과 같은 낭비적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예비선거의 관리를 중안선관위가 엄격하게 맡도록 하고 새 천년을 맞는 우리 유권자들이 바른 선거행태를 보여주도록 한다면 민주적 절차도 살리고 개혁목표도 이룩할 수 있다고 반론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하원선거의 경우 현역의원 탈락율이 불과 3∼4%밖에 되지 않았다. 의원임기제한론이 계속 나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90년대에 들어와서야 평균 25%로 올라갔다. 특히 지난 92년은 현역의원 탈락률이 45%로 2차대전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그 이후 94, 96, 98년 선거에서는 20%정도의 탈락률을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92년의 45% 탈락률은 전체 하원위원 435명 가운데 196명이나 탈락한 결과이다.

예비선거나 본선거에 끝까지 나서서 패배한 의원은 20명도 안된다. 나머지는 모두 고령이나 건강 또는 정치 싫증 등의 이유로 자진포기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가 50%이상의 대폭적인 물갈이를 하는 정치개혁을 필요로 한다면 예비선거제도를 채택한다고 하더라도 그 보장책은 되지 못한다.

잦은 물갈이도 개혁과제

우리나라의 역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정치변동기의 경우 평균 40% 정도의 물갈이를 했고 특히 92년 선거에서는 그 비율이 55%나 됐다.

이러한 높은 물갈이율은 주로 아래로부터의 선거결과라기보다는 위로부터의 공천결과이다. 곧 ‘아래로부터의 개혁’ 보다는 ‘위로부터의 개혁’이 더 강하게 작용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보다 더 큰 개혁을 하려한다면 이 번까지 만이라도 좋은 의미의 ‘위로부터의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된다. 국민회의가 신당창당 추진과정에서 공천을 전제한 신인들을 많이 영입하려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공동여당인 자민련은 국민회의와의 합당여부에 따른 당리당략을 저울질하느라 개혁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은 3김청산을 내걸고 있는 야당으로서 여당보다는 더 개혁적이라야 할 입장에 있다. 총선을 앞두고 당내에 새 밀레니엄 기구까지 만들어 제2창당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당내 파벌 끌어안기에 걸려 덜 개혁적으로 비쳐지고 있다. 일반적인 현상과는 달리 총선과 관련한 개혁 이미지면에선 제1여당과 제1야당이 뒤바뀐 인상을 아직 주고 있다.

공천 후유증 최소화가 급선무

따라서 국민회의는 신인공천의 위험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민련은 다른 당 공천탈락자들의 집합소가 되는 것을 징계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구태의연성을 씻는 데 유의해야 할 것이다.

특히 여야 정치권이 모두 위로부터의 개혁을 한다 하더라도 아래로부터의 개혁절차를 어느정도 가미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구당에서 복수추천을 하도록 한다든지 반대로 공천내정 탈락자에게 지구당대회나 예비선거에서의 도전권을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방안 같은 것을 말한다. 선거구제도가 어떻게 돼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총선정국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든 진정으로 개혁적인 정치신인으로 자부한다면 누구나 다음의 선례를 한 번 상기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소련의 옐친이 정치신인시절 공산당 지구당대회에서 중앙당공천 서기후보에게 거의 용납 될 수 없는 경선도전을 과감하게 했다.

결과는 그의 승리였다. 중앙당의 승인을 기어코 받아냈다. 엘친의 이러한 패기가 훗날 순탄하게 공산당 정상에 오른 고르바초프를 축출하고 집권하는 원동력이 됐다.

하물며 민주국가인 우리 나라에서는 더 말할 것 없다. ‘위로부터의 개혁’이든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든 그 마지막 열쇠는 결국 우리 국민이 쥐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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