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호]
[한자도 우리민족이 만든글(19)]
「蟹(해」)字와 게
글/ 陳泰夏(진태하 인제대학교 석좌교수)
우리 속담에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는 말이 있다. 「마파람」이란 말은 뱃사람들이 남풍(南風)을 일컫는 말이다.
이 속담을 가장 잘 인용한 것은 춘향전(春香傳)에서 이 도령이 거지 행색을 하고 장모 월매(月梅)의 집을 찾아 밥을 허겁지겁 먹자, 보다 못한 월매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하는구나.”라고 한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이 밖에도 ‘게도 구럭도 다 잃었다’, ‘게도 구멍이 크면 죽는다.’, ‘게 잡아 물에 넣는다.’, ‘게 새끼는 집고 고양이 새끼는 할퀸다.’ 등과 같이 「게」에 대한 속담이 많다.
게로 만든 요리 중에서도 참게장에 대한 특이한 조리법과 만인에게 회자(膾炙)하는 기호식품(嗜好食品)임을 보아도 「게」와 우리 한민족은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에 대한 방언으로는 「거이, 거, 개, 고이, 괘, 궈이, 궈, 궤, 귀, 그의, 그이, 긔, 기, 기에, 깨, 께, 끼」 등과 같이 많은 형태가 있으나, 어두에 「ㄱ」자음(子音)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어휘의 음운변천에 있어서 모음은 매우 유동적이기 때문에 어두 자음(子音)의 유지가 매우 중요하다.
한자에서 「게」에 대한 글자로는 「蟹」(게 해)가 있다. 은대(殷代) 의 갑골문(甲骨文)이나, 주대(周代)의 금문(金文)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진대(秦代)의 소전체(小篆體)에 「」의 형태로 처음 나타난다. 곧 「」(벌레 충)과 「解」(풀 해)의 합체자로서 형성자(形聲字)이다. 그러므로 「解」(해)의 음이 곧 명칭으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解」의 고음(古音)을 찾아보면, 운서에 「佳買切, 擧解切」로 표기되어 있다. 이 반절음(反切音)으로써 「解」의 고음이 「해」가 아니라, 「개」였음을 알 수 있다. 스웨덴의 한학자(漢學者)인 칼그렌(高本漢)은 「解」의 상고음을 [ai]로서 「蟹, 懈」와 동일하게 보았다. 또한 일본에서 「解」의 한음(漢音)은 [kai]이고 오음(吳音)은 [ge]이다.
현재 북경 음으로는 「解」를 「지에」, 「蟹」를 「시에」처럼 달리하고 있지만, 이상으로 볼 때 중국에서도 고대에는 어두음이 「k」였음이 확실하다.
이렇게 볼 때 「蟹」자는 동이족(東夷族)의 말, 곧 지금 우리말의 「게」에 유사한 형태를 표음한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역으로 「蟹」의 자음을 통하여 우리말 「게」의 고대어를 추찰하면 [ki]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혹자는 우리말의 「게」라는 말이 한자 「蟹」의 고음에서 유입된 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우리말의 「게」는 진대(秦代) 이후에 형성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게」는 진대 이전부터 존재하였음을 것이며, 이른 시대부터 동이족의 구어(口語)로서 써 내려오던 말을 적기 위해서 「蟹」와 같은 형성자를 만들었음을 생각할 때, 결코 우리말의 「게」가 「蟹」자의 음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없다.
더구나 「懈」(게으를 해)의 고음도 「解, 蟹」와 동음으로서 어두자음이 「k」였고, 또한 「懈」에 대한 우리말이 「게르다, 게으르다」로서 역시 어두자음이 「k」인 것으로 보아도 우리말에서 한자의 음이 취해진 것이지, 한자음에서 우리말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
고대 한자음에는 「k」의 어두 자음(子音)이 뒤에 「h」음으로 변한 것이 많다. 예를 들면 「汗」(땀 한), 「旱」(가물 한), 「」(우리 합), 「虹」(무지개 홍), 「峴」(고개 현) 등에서 볼 때 「干(간), 甲(갑), 工(공), 見(견)」의 [k] 어두음이 [h]음으로 변음 되었다.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河」(물 하)자는 「(水)」와 「可」(가)의 합체자로서 형성자이다. 「可」(가)의 음(音)이 「河」에서는 「하」로 발음되어 본래의 [k]의 음이 [h]의 음으로 변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보면 고대 동이어(東夷語)에 있어서 [k]와 [h]는 상호 통음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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