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호]

경영자의 수난시대

기업의 무한 경쟁이 시작되면서 최고 경영자의 목숨이 파리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김우중 회장을 비롯한 대우 그룹 사장단이 퇴진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세계적 대 기업의 사장이 부실 경영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예는 한 둘이 아니다.

미국 컴퓨터 회사 컴팩의 엑하르트 파이처가 떠났고 영국의 유수한 은행 냇 웨스트의 데레크 왠리스도 목이 잘렸다. 미국 약국 체인인 라이트 에이드의 마틴 그라스는 예고도 없이 해임되었다. 사장의 목을 자르는 일이 결코 즐거울 수는 없다. 이코노미스트 지는 이를 총살대에 발포 명령을 내리는 것에 비유했다.

주주총회가 보스의 해임을 결의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의 대기업에서는 요즘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경영대학?원의 라케시 쿠라나 교수는 1980년부터 1996년 사이 포천 지가 선정한 5백대 기업에서 일하다 최고 경영자 자리를 떠난 1천 3백 건의 경우를 조사했다. 그 결과 3분의 1이 해임된 것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것은 1985년 이후 새로 취임한 경영자가 해임되는 빈도가 3배로 늘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취임 5년 이내에 보스의 목이 잘리는 비율은 1997년의 13%에서 1999년에는 17%로 증가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80년 대에는 보스의 해임은 주로 적대적 기업 합병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법적 장치 때문에 그런 식의 해임은 어려워졌다.

1990년 초 드디어 최고 경영자를 추방하는 새로운 기법이 등장한다. 1992년 제너럴 모터스 주주들은 경영부실로 주가가 폭락하자 로버트 스템펠을 추방했다. 이게 계기가 되어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는 경영자가 속출했다. 93년에는 존 애커스가 IBM에서, 97년에는 로버트 알렌이 AT&T에서 각각 추방되었다. 이들이 물러난 배경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공통점은 주주들의 의지가 작용했다는 점이다.

최근에 와서는 법인 주주들이 무능한 보스 추방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1단계로 자신들의 대표를 이사진에 진출시킨 다음 마음에 들지 않는 경영자 추방 작전을 개시한다. 결과적으로 무능한 경영자는 사장 자리에 잠시도 머무를 수 없게 되었다. 조사에 의하면 포천이 선정한 1백대 기업 중 20개 회사는 보스가 주주의 불신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 경영자의 해임이 일상사가 되다 보니 경영진과 이사회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경영자들은 자기 보호를 위해 이사들에 갈 정보를 적당히 통제하고 조절하는 사태가 생겼다. 이사들을 경영의 동반자가 아닌 적대세력으로 간주하는 경우까지 나타난다.

새 경영자의 등장 환경에도 변화가 왔다. 새로 취임하는 사장들은 해임시의 일정한 보장을 요구한다. 이들은 통상 임기 전에 의사에 반해 자리를 떠날 경우 잔여 임기 급여의 1백85%를 지급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에 취임 시 계약한 스톡 옵션이 추가된다.

IBM의 경우 이런 식의 유인책이 없었다면 건실한 회사에서 일 잘하고 있던 루 거스너를 초빙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경영을 잘 못했다고 해서 최고 경영자를 즉각 추방하는 일이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경영 실패의 책임은 보스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이사들에게도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으니까 말이다. 거대 기업의 최고 경영자.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들의 삶이 추풍낙엽이 되고 말았다.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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