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호]

기자는 언관이자 사관

역사의식 갖고 비판해야

관훈클럽언론 역할세미나를 보고

글 / 宋孝彬 (송효빈 전 기자협회 회장,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기자는 권력의 영원한 감시자

기자란 무엇인가? 오늘 처럼 이 원론적인 물음에 매달리게 하는때가 또 있을까 싶다. 왜 그럴까, 두 말할것도 없이 그 어느 독재 정권때 보다도 기자 정신과 기자 윤리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도대체 아무리 권력에 눈이 멀었다 치더라도, 기자가 자기가 몸담고 있는 언론사의 눈과 귀와 입을 틀어 막고 통제하는 방편을 ‘소신이라는 이름’하에 여권 실력자에게 만들어줄 수가 있느냐 말이다. 또 취재기자가 이 언론대책문건을 여권에서 훔쳐다가 야권에 넘겨주는 이중 첩자같은 짓거리를 아무 꺼리낌없이 자행했다는 것은 이미 기자이기를 포기한 파렴치한 행동이다.

더욱이 두기자가 이렇듯 기자도에 어긋난 작태를 저지르고 있는데 대해서 소속 언론사에서 직속 담당 차장이나 부국장, 편집국장 등 , 감독자(gate keeper)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단 말인가 만일 언론사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IMF사태 이후 기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서 기자정신을 헌신짝처럼 팽개쳐 버리고 불나비처럼 권력이란 집어등에 스스로 몸을 불사르고 있다면 더욱 큰 문제다.

신문기자는 진실을 보도하는 사람이지 뉴스원이 아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뉴스를 캐내기 위해 뉴스원과 친할 수는 있지만, 결탁해서는 안되며 뉴스원에게 무례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비굴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기자는 모름지기 보도자라는 자긍심과 비판자라는 의연한 자세로 국민의 알권리를 충실히 펼쳐나가야 한다.

권력이란, 원래 속성상 언론을 통제하려들기 마련이다. 권력은 끝없이 지배하려는 본성 때문에 감시자인 언론과는 숙명적으로 맞서 있을 수밖에 없다. 기자는 이같은 소명감을 갖고 진실보도에 힘써야한다. 이런 관점에서 기자는 국민의 눈이요, 귀요, 입이다. 역사가 과거의 기록이라면 신문기자는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이며 오늘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사간원이다.

사간원이나 사관은 이러나 저러나 욕먹게 돼있다. 신문은 여론을 무시하고 존립할 수가 없다. 민심은 곧 천심이고 천심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기자가 아세곡필하면 하늘이 죽일것이요, 기자가 파사현정 정필을 휘두르면 권세가에세 곤욕을 당하게 돼있다. 이것이 언관이며 사관인 기자의 숙명이다.

창조를 위한 반성과 자율규제

언론의 직업윤리와 책임이 무엇보다도 강조되고 있는 이때 관훈클럽(총무 朴紀正)은 한국언론학회(회장 朴英祥)와 함께 11월 5일 춘천 두산리조트에서 「2천년의 정치 발전과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 세미나를 가졌다. 방송인인 광운대학교 奉斗玩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역대 통치자들은 국민의 입을 막으면 세상이 조용해지리라고 믿었지만 오히려 패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보아왔다면서 몸에 혈기가 넘쳐야 건강하듯, 언로도 강물처럼 넘쳤을 때 사회가 건강해 진다고 주장했다.

한양대학교의 오진환(吳鎭煥)교수는 언론이 재정적으로 독립되고, 기자가 국가와 민족 공동체를 위한 투철한 직업의식과 「기자도」가 확립됐을 때 비로서 언론이 정치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吳교수는 지금부터 5백28년전 조선왕조시대 사헌부의 역할에 주목, 공정하고 공명하며, 공평한 비판과 감시기능을 강조한 언관의 전통을 오늘의 우리 언론이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吳교수는 경국대전의 법제화된 사헌부의직무 규정에 정치의 시비에대한 언론활동과 백관에 대한 규찰, 풍속을 바로 잡는 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풀어주는 일로 돼 있다고 지적하고 이것을 오늘에 맞게 옮겨보면 정치의 시비에 관한 보도와 논평, 공직자와 공공기관의 비행의 적발과 감시하는 일이된다면서 조선조의 언관정신을 오늘의 기자도 정신으로 이어 받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선조들이 5백여년전에 이미 기자정신을 정확히 갈파한 것 같아 숙연해진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국가권력을 입법 행정 사법으로 분립, 공권력이 하나의 공권력에 집중되는 것을 막고 있다. 그래도 모자라서 언론이 제4부로서 감시자로 자임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기관의 필요성을 실감했던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제퍼슨도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에는 신문을 비판하고 나선 것을 보면 권력과 신문과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과거 언론사를 돌이켜 보면 영광과 곤욕으로 점철돼 왔다. 권력은 언제나 언론을 통제하려 들었다. 권력은 끝없이 지배하고자하는 속성 때문에 비판과 감시자인 언론을 싫어한다. 권력이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언론자유는 권력으로부터 거저 넘겨받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 언론자유가 확보되지 않고서는 고질적인 부정부패의 척결도 민주발전의 장미꽃도 피울 수가 없다.

독립신문 이후 저항정신으로 일관해 왔던 우린언론은 권력으로부터 오는 외부적인 도전에 두렵지 않다. 일제 강점기의 언론은 독립지사였고, 자유당 독재밑에서의 언론은 민권투사였으며, 군사독재하의 언론은 민주투사였다.

경영내부의 도전에 취약

이렇듯 과거 한국언론의 전통이 반항과 투쟁의 고난으로 점철돼왔기 때문에 권력으로부터의 탄압을 물리칠 패기와 용기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경영내부로부터 오는 도전엔 기자들에게는 취약하다.

6.29 민주화 선언으로 언론은 자율경쟁시대에 돌입했다. 경제성장의 확대와 재생산속에서 언론기관도 양적발전을 가져 왔다. 따라서 경영주의 신문제작관여가 극심해졌고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위해 전국 일일권의 신문제작에 착수, 지방에 분공장을 세웠고, 색도고속윤전기를 빚으로 들여왔다. 때마침 외환위기기 닥치자, 신문사들은 수천억의 빚더미에 올라 앉게 됐다. 빚에 몰린 경영자들은 구조조정이란 이름하에 겁없는 일선기자들은 길거리에 내몰았다. 아무 허물없는 8천명의 기자들이 졸지에 실업자가된 언론상황에서 남아있는 후배기자들에게 너희들만이라도 사명감을 갖고 기자도를 지키라고 말하기에는 언론상황이 너무나도 참담하다.

주제발표자인 吳교수는 재충전을 위해 학교에 중견기자들이 기자를 그만뒀을때를 대비해서 하루빨리 학위를 따려한다고 밝혔다. 吳교수는 이것을 기자직업에 대한 불안한 마음의 표출이라고 진단했다.

무엇보다도 하루빨리 신문사의 재정이 건전해져서 일선기자의 신분보장이 확립돼야겠다. 이에따라 언론내부의 기강확립과 함께 윤리실천 요강을 강화하여 이를 위반한 기자에 대한 엄격한 제재를 단행해야한다.

우리는 언론자유가 신장됐던 90년대에 들어서서, 오히려 권력유착과 일선기자의 몰염치한 타락을 보게된 것을 주목한다. 97년 대통령선거때의 「선거대책문건사건」이나, 92년 대통령선거때의 YS 장학생사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언론을 출세의 징검다리 쯤으로 여기는 기자는 일찌감치 물러나라. 그렇지 않으면, 멀지않아 소속사가 가려내어 퇴출시킬 것이다. 이를위한 언론개혁은, 어렵겠지만 반드시 자율적으로 이룩해내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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