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호]

뉴밀레니엄 걱정과 안도

글 / 兪炳弼 (유병필 매일경제TV 보도국장)

아시아 각국의 생존 몸부림

새천년… 뉴밀레니엄 시대는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새로운 물결에 맞춰 격동의 파고를 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선진국은 선진국대로 아성을 지키고 보다 강력한 나라가 되려고 힘쓰고 후진국은 후진국대로 강점을 살려 보다 밝은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함께 국경없는 글로벌시대가 실감나는 형국이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First in the World’를 내세워 미국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경제 대국을 이끌고 있다.

유럽은 이미 EU(유럽연합)를 실현해 블록시스템을 다지고 있는 중이다. 이미 유럽통화를 탄생 시켰고 이제는 언어의 장벽을 깨려하고 있다.

다시 눈을 돌려 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제갈길을 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중국은 실용주의 노선을 내세워 이데올로기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고 모양새는 자본주의의 강점을 상당한 부분 접목해 실현해 나가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아시아의 경제대국 일본의 사정은 어떤가. 미국의 견제 속에 내실을 한층 다지면서 동양적 가치를 한층 꽃피우며 외풍과 적절한 조율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마에겐이치는 오히려 우리경제 운용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서슴없이 일침을 가하고 있다. 다시말해 무작정 미국의 노선을 따르는 듯한 우리경제 운용정책에 경고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수상은 비록 장기집권의 후유증을 앓고 있지만 아시아적 가치를 계속 주창하고 있는 터이다. 이렇듯 우리 주변국가들은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나름대로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자국의 진로를 설정하기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자본주의 종주국인 영국마저 토니 블레어 수상을 중심으로 복고풍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정하고 있지 않은가. 더욱이 프랑스는 다가오는 밀레니엄 시대에는 서구식 자본주의에 집착하지 않고 동양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인간위주의 복지를 추구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는 논의가 한창이다.

환란 극복뒤엔 또다른 구조적 모순

그러면 우리의 사정은 어떤가.

비록 IMF(국제통화기금) 위기는 넘겼다고 하나 경제구조의 왜곡과 함께 누적되는 재정부담으로 예측할 수 없는 난기류를 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일구어낸 성장의 신화가 깨지고 어찌보면 앙상한 뼈대만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엄청난 유동성 살포로 급한불은 껐지만 중산층의 몰락과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얼마전 엷어진 중산층 구조속에 부의 양극화가 지난 85년이후 최고치에 달했다는 ‘지니계수’를 발표한바 있다. 여기에다 투명성이니 공정한 룰의 게임이니 해서 기업이 몸살을 앓고 있지 않은가.

물론 환란을 교훈으로 삼아 우리가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차입경영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의 자세도 시정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허겁지겁 환란을 이겨내다 보니 부작용 또한 적지않은게 사실이다. 우선 물리적인 구조조정속에 수많은 기업들이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가 있고 대기업마저 제자리를 버티기 힘들게 됐다.

부채비율을 2백% 이내로 일괄 축소하라든지 기업과 기업사이에 빅딜을 강요받는다든지 해서 자율의 운신폭이 거의 없었던게 사실이다.

사실 부채비율 축소는 버블경제의 최대과제이긴 하다. 그러나 기업규모간 업종간 특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패키지식 정책을 편 결과 예기치 못할만큼 커다란 진통을 수반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 또한 IMF가 요구한 액면 그대로 BIS(국제결제은행) 기준인 8%의 자기자본 비율을 강요하면서 초 강경책을 편 것이 우리정부의 태도이다. 부실은행에 수십조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헐값에 외국에 내다 팔아야 하는 모순을 낳고 말았다.

이러한 와중에 실업자는 눈에 띄게 줄지 않고 근로자의 실질소득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절대빈곤층이 1천만명에 달한다는 여론조사도 나와 있다. 다시말해 환란은 어느 정도 이겨내 국가신인도는 다소 상향됐다고 하나 내부사정은 호전되기는커녕 구조적인 모순을 더욱 잉태시키고 말았다. 특히 부패지수가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가맹국 중 상위에 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자화상은 내놓을게 없다.

여기에다 수출을 늘려 무역대국을 어느 정도 실현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1등을 자랑하는 기술수준은 1%도 안된다. 종교계·교육계·정계 어느 분야도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자괴감만 줄 뿐이다.

사이비 종교가 판을 치고 교육계의 비리가 속출해 이른바 정신적 공황에 몰려 있다. 특히 어두운 시절을 지나 ‘문민정부’ 나아가 ‘국민의 정부’를 세웠지만 정치권은 이전투구의 연속이다. 더욱이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는 마당에 ‘총풍’에서 ‘세풍’ ‘옷풍’으로 이어지는 정국의 꼬임새는 바람잘 날이 없다.

세계 어느 나라가 과거사를 정리하는데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쏟은 경우가 있는가.

과거사정리로 정국 꼬임새 꼴불견

요즘에는 이른바 제4부라고 할 수 있는 언론계 마저 치부를 드러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정치와 언론의 상관관계속에 유착이니 탄압이니 논란은 있었지만 두 가지 모두 사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어찌보면 그동안 덮어두었던 치부가 드러나 새로운 진로를 여는데 도움이 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우리의 장래를 설계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다시말해 아는자 힘있는자 가진자들의 리더들이 자각증세를 일으켜야 한다. 국민들이 너무 지쳐있다. 지금과 같은 형국이 지속되는 한 우리의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지도그룹이 국민 앞에 사죄하는 자세를 보여야 되고 여기서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그러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자면 이제까지 갈등의 구조를 화해와 화합의 무드로 바꿔야한다.

언제까지 이대로 갈 수 있으며 그렇게 할 것인가. 우선 영호남의 지역정서에 연연하지 말고 우리모두 화합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정치적으로 대타협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타협이 민주주의의 묘미이다. 지금 상처받지 않은 계층이 어디 있는가. 개발독재과정에서 군인을 비롯 정치인·공무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 누구하나 이사회의 버팀목을 할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는가.

따라서 대타협을 일구어낸 다음 화합의 장르를 열어야 한다. 과거사에 연연하다보면 우리의 미래를 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국민적 에너지를 응집할 수 없다. 이것이 풀리지 않고 우리가 미래를 얘기할 수 있겠는가. 에너지가 모아질 때 새로운 밀레니엄을 능동적으로 맞이할 수 있다고 본다.

다행히 우리는 남의 나라가 갖지 못한 장점도 있다. 5천년을 자랑하는 문화 민족이다. 여기에 신세대들이 많은 용기를 주고 있다. 세계 유수대학에 수석입학이나 졸업자가 줄을 잇고 있고 젊은 낭자들이 선진국 독무대인 골프계를 흔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2의 빌게이츠를 꿈꾸는 수많은 인재들이 포진하고 있다.

다시말해 세계적인 두뇌집단을 무기로 신 산업혁명시대인 정보화사회를 꽃피울 수 있다.

지도그룹을 중심으로 의식의 대전환, 그리고 실천에 대한 열망을 지닌다면 그렇게 우리의 미래가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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