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호]

대형 합병의 함정

메가 급 기업 합병이 유행병처럼 세계를 휩쓸고 있다. 미국 의회마저 기업 합병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조치를 잇따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은행, 자동차, 석유, 전화, 제약 업계 회사들이 대형화되면서 경쟁력은 떨어지고 고객의 이익은 무시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지적한다.

합병에 의한 기업의 규모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공룡 같은 기업이 행사하는 영향력에 우려의 눈길이 쏠린다.

지난 수년 간 모든 산업에 걸쳐 메가 급 합병이 이루어졌다. 시티뱅크와 트레블러스, 뱅크 옵 아메리카와 내셔널뱅크, 도이체뱅크와 뱅크트러스트 등의 합병은 금융계의 지도를 바꿔 놓았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다임러 벤츠가 크라이슬러와 손을 잡았고 통신 업계에서는 AT&T가 미디어원과 제휴했다.

또한 석유업계에서는 영국석유(BP)와 아모코, 엑슨과 모빌이 통합했다. 이 밖에도 당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합병사례는 허다하다.

주로 미국과 유럽에서 불기 시작한 합병 바람은 이제 일본, 한국, 브라질 등 전 지구촌으로 확산되고 있다.

과거에는 합병에 수반되는 대량 해고로 사회적 갈등이 심했으나 미국의 경우 30년이래 최저의 실업률 속에서 합병에 대한 저항마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합병이 글로벌화 되다 보니 독점 문제도 거의 없다.

합병의 덕분에 미국 소비자들은 더 좋은 제품을 더 싼값에 구입할 수 있게 되었는가. 당연히 이렇게 돼야 하는데도 그렇지 않다.

합병된 기업의 경쟁력은 어찌 되었는가. 나아졌다고 장담할 수 없다.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정치제도이다. 현재의 미국 정치제도로는 골리앗이 된 메가 급 합병 기업의 영향력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기업은 전체 지구촌을 상대로 움직이는데 정치는 미국 대륙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간 기업과 공권력의 대결에서 공권력 측이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시티그룹이나 새로 탄생한 뱅크 옵 아메리카는 이제 너무 커져서 쉽게 망할 이도 없겠지만 이들이 무너질 때는 지구촌 전체의 금융제도가 한꺼번에 추락할 수 있다.

많은 메가급 기업들은 이미 법의 태두리 밖에 있다. 이들은 거대한 자금력으로 수많은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고 설사 소송에서 패배해서 벌금을 물더라도 기업활동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 기업의 로비는 지금은 차원이 달라졌다.

참으로 웃기는 일은 정부가 오히려 기업의 로비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공룡 기업들은 미국의 외교·무역 정책을 좌지우지한다. 록히드 마틴 같은 방산업체들은 무기 판매시장을 원하는 대로 확대하는가 하면 맥도널 더글라스를 합병, 미국 유일의 항공기 제작사가 된 보잉은 중국에 대한 정책을 입맛대로 조종한다.

엑슨 모빌은 정부를 제치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직접 협상을 벌인다. 경제가 잘 되고 만사가 순조롭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불상사가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 기업은 지구촌 차원에서 움직이는데 일개 국가 차원의 정부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건 진정 심각한 문제다. 메가 급 합병? 바로 여기에 메가급 함정이 있다.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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