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월호]

김용준 교수 회고록 읽고

다시 춘원을 생각한다

/ 宋貞淑 편집위원 (송정숙 전 장관,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김용준 교수의 회고문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모았다. 개인적으로 나도 오랫동안 원인 모르게 괴어 있던 응어리 하나를 이 글이 풀어준 느낌이 든다.

春園을 어떻게 해야 하나. 설쳐대고 있는 그들과 함께 이 친일파 문인을 짓밟아 버려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응어리처럼 고여 있었다.

春園 李光洙의 이름을 안 것은 해방 전이다. 한글은 근처에도 못 가고 전쟁 중이라 일본의 히라가나라는 것도 배우지 못한 채 소학교 1,2년을 보낼 때 부모님들은 춘원을 돌려 읽으며 독후감을 나누곤 했었다. 새로 접하는 현대소설의 맛, 그 문화의 목욕물에 씻긴 정신을 그 분들은 개운해 하며 즐기시던 어른들을 통해 간접으로 들었던 이름이다. 그런 어간에 춘원 소설은 일본 놈한테 떨어질 게 없어…』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던 아버지의 인상이 어린 내게는 진하게 물들었다. 집안에서 일본 사람일본 놈이라고 부르는 것 정도를 겨우 용기 내던 어른들의 이 은밀한 모의에 혼자서 몰래 가담하고는 두려움 비슷하고 자부심 비슷한 것에 내 영혼은 물들어갔다.

그러다가 광복이 되고, 한글을 깨치면서 탐욕스럽도록 읽어냈던 어린 날의 난독 속에서 춘원은 초기의 주조였다. 소설은 물론돌벼개같은 수상이며 고백록들도 읽었다.

생각해 보면 언필층 億兆蒼生인 백성도 지켜주지 못해, 식민지로 내주고 그 통치 아래 수모 받고 핍박받는 국민을 만들어 놓은 못난 나라에 태어났어도 이런 정신적 다원성과 지성들을 길러 우리의 정신을 너무 무참하게 만들지 않도록 기여한 작가며 문인이 있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식민지 국민으로 살면서도 조금이라도 머리를 들고 생각을 하며 작은 자부심이나마 지니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땅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었다는 일은 그래도 고마워할 일이 아닌가. 김 교수의 글은 이런 마음을 양지에 내놓게 한다.

춘원이 일본의 패전을 보고 아주 많은 충격을 받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가지고 사람들은 여러 해석을 한다. 어차피 일본이 그렇게 쉽게 망할 것이 아니므로 일본 세상에서 영화나 누리며 평안을 약속 받기 위해 변절한 것이라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말도 한다. 어차피 그렇게 쉽게 망할 일본은 아니고 그 밑에 식민지 상태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 당분간의 우리 운명이라면, 조금쯤 지혜로운 식민지 백성이 되어 살게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우리가 흔히 매국노 이완용과 함께 열거하는 또 한사람의 매국인사가 있다. 이용구라는 사람이다. 건국이후 우리의 교과서에도 그의 매국행적은 올라 있다. 최근에 일제하의 신문을 읽고 있는 선배 언론인 한 분이 이런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일어(日語)로 된 신문 지면에 그 이용구라는 사람의 부음(訃音)을 전하는 글이 있더라는 것이다. 신문기사는, 그가 한일 합병의 주역이었지만 끝내 어떤 고위 관직도 또는 작위도 거절했으며 그대로 한 사람의 야인처럼 살다가 죽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것으로 미루어 보면 그가 한일합방을 주도한 것은 개인의 영달이나 출세 또는 안위를 위해서 한 것은 아니었음이 확실하다는 내용도 기사에는 덧붙여 있었다. 이 기사의 발견이 화제가 되자 좌중의 다른 원로 언론인이 이런 것을 첨가해 말했다.

그 이 아무개라는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기 의하면 자기 아버지 이용구는, 한일 합방 교섭을 할 때 일본 측이 제시한 유나이티드 킹덤 오브 저팬 코리어같은 것을 믿고 추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그 약속을 어기고 최악의 식민지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주변의 강대국 앞에 풍전등화 같은 나라의 운명을 보며 그 중에서 가장 덜 불행한 민족의 운명을 선택하는 것을 모색했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하는 것. 속아서든 알고서든 민족을 식민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일에 나선 것은 잘못 된 선택이다.2011-05-10_220713.jpg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한데 몰아 밧줄로 엮어서 끌고 다니며 수모 주는 일을 하필이면 김정일 부자의 세습 독재를 정당화시키려는 듯이 구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은 서글프다. 지난날의 불행에서 가르침을 받으려면 거기 담긴 여러 가지 형태의 진상과 의미 같은 것을 깊이 있게 천착(穿鑿)할 수 있어야 한다. 독립군 잡으러 다니는 일이 본색이었다는 의심을 받는 후손까지 주축이 되어 벌이는 이 이상한 과거사 청산 굿은 우리 입맛을 소태처럼 쓰게 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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