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5월호]

국제질서 제3의 길

독일의 배은망덕

리비아 군사작전 이탈, 신의 버렸다

/ 趙泓來 편집위원 (조홍래 언론인)

2차 대전의 폐허에서 마셜플랜으로 소생한 독일이 리비아 공습과 일본 지진을 계기로 고립의 길을 선택했다. 외교적 수사로 고립이지 미국과 서구동맹의 은혜를 외면하고 자국 이익만 챙겼다. 2차 대전 이후 굳건히 유지해온 서구 동맹에서 이탈하는가 하면 유럽 동맹들에 등을 돌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도 결별했다. 나아가서는 미국과의 결별도 불사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메르켈 총리의 이단적 노선파장

독일의 파격적 변신은 리비아 민간인 보호를 위한 유엔안보리 결의안 표결에서 기권하면서 시작되었다. 리비아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치하는 국제회의에도 불참했다. 영국, 프랑스, 미국이 주도한 리비아 군사개입에 정면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선언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이 이단적 노선 때문에 리비아 사태에 대한 단일 외교노선을 구축하려던 서방의 노력은 무산되었다. 리비아 반군세력을 맨 먼저 합법적 정부로 승인한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독일이 자초한 고립은 원전정책에서도 나타났다. 메르켈은 원전 의존정책을 철회함으로써 전력수요의 75%를 원전에 의존하는 프랑스와도 차별화를 선언했다. 독일과 유럽 동맹들과의 갈등은 그리스와 아일랜드처럼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한 나라에 유로화 구제 금융을 제공하는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유럽에서 재무상태가 가장 양호한 독일은 금융 지원에 앞서 해당 국가의 엄격한 자구책을 먼저 요구했다. 2차 대전 이후 서구동맹의 강력한 주축이었던 독일의 이탈은 서구 동맹국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독일은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과 함께 안보리 표결에서 기권했다. 프랑스에 소재한 전략연구재단의 선임연구원 프랑솨 하이스부르크는 독일이 이 그룹에 가담한 행동을 두고 딴 나라”(another country)가 되었다고 비꼬았다. 그는 독일의 선택에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으나 유럽 및 서구 동맹을 배신하고 국제신의를 경시한 것은 독일의 세계사적 위상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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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경제침몰 상주되려나

메르켈의 결정은 국내에서도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1 야당인 녹색당은 독일이 유엔과 중동에서 신의를 저버렸으며 이로 인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려던 꿈은 영영 사라졌다고 개탄했다. 전 독일군 사령관 클라우스 노이만은 메르켈 정부가 용납할 수 없는 소극”(笑劇, farce)을 연출했다고 말했다. 슈피겔지는 집권 기민당(CDU) 중진의 말을 인용, 독일에 파국의 신호가 왔다고 전했다. 쉬드도이체 짜이퉁 지의 외신국장 스테판 폴렌츠는 독일이 어쩌면 유럽동맹의 붕괴와 유로경제의 침몰을 상징하는 상주(喪主)”가 될지 모른다고 전망했다.

독일이 리비아 관련 표결에서 기권한 것은 반전주의(反戰主義), 예외주의 그리고 대내적인 정치 환경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메르켈은 가장 타이밍이 나쁠 때 애매모호한 선택을 함으로써 국가와 자신의 정치적 위상에 치명상을 입혔다. 리비아의 카다피를 응징하는 국제여론의 무시와 일본의 원전사고에 따른 불안감은 327일 실시된 주 의회 선거에서 기민당 연정에 참패를 안겨주었다. 기민당이 비록 지방 선거이긴 하나 야당에 패배한 것은 58년 만에 처음이다. 더구나 공산당에 뿌리를 둔 녹색당과 사회민주당(SPD)에 패배함으로써 독일의 진로에 수많은 억측을 자아냈다. 보수와 진보가 역할 교대를 했다는 풍자마저 뒤따랐다. 익명의 정부 관리는 독일이 정치적 쓰나미를 만났다고 말했다. 이 관리는 9.11, 베를린 장벽 붕괴, 케네디 암살,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차원에서 역사는 기록될 것이라면서 2년 후의 총선에서 지각변동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일의 고뇌가 그만큼 깊다는 시사이다.

게르만 민족의 우월감 표출인가

뉴욕타임스는 독일이 냉전 이후 고착된 국제질서에서 제3의 길을 찾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이 길이 당장은 불편하지만 장기적으로 독일에 이익이 될 것으로 메르켈은 보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리비아2011-05-12_220217.jpg 에 대한 군사개입은 의회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는 궁색한 이유를 들어 지중해에서 해군병력을 철수했다. 그러면서 이 결정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듯 아프가니스탄 주둔 나토군에 병력 3백 명을 증파한다고 발표했다. 의회의 야당 지도자들은 그러나 옹졸한 처사라고 일축했다. 메르켈은 결국 우방과 야당으로부터 동시에 버림을 받은 꼴이 되고 말았다.

메르켈이 자초한 전환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선거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모순을 드러냈다. 이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기민당을 버리고 녹색당을 선택했다. 이 주는 전후 독일 부흥을 이룩한 보수의 보루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준다. 이제 옛날 공산주의자들이 이끄는 녹색당은 창당 이래 처음으로 주 총리를 배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1945년 이후의 독일의 소멸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기존 원전정책의 폐기를 상징한다. 메르켈은 선거결과에 대해 이 고통을 극복하는데 많은 세월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2차 대전 이후 독일을 지배해온 중도 우파의 기민당 시대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셈이다.

독일의 변신은 국내 정치논리로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변신이 초래할 수많은 갈등과 마찰을 순탄하게 극복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총체적으로 독일의 외로운 선택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게 중평이다. 혹시 게르만 민족의 우월감이 예외주의로 또는 서구동맹과의 결별로 표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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