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5월호]

[원로 정치논객칼럼]

한국정치의 딜레마

공짜 政治學(정치학)公約明暗(공약명암)

포플리즘 추방의 중심은 언론의 몫이다

/ 鄭在虎 (정재호 헌정회 대변인, 9· 10대의원, 전 경향신문 정치부장, 논설위원)

國益(국익)우선과 信賴(신뢰)추구의 價値論爭(가치논쟁)’

한국 정치의 딜레마는 불확실성이다. 예측 가능한 정치의 실종을 의미한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신뢰성의 추락이다. 상수(常數)를 구석으로 몰아붙이는 변수(變數)의 일방적 우위현상이다. 투명성(실현성)이 담보(검증)되지 않은 공약의 남발이 변수의 악순환을 부채질한다. 불신의 담벼락만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론분열과 지역 간의 정서갈등을 심화시킨 여야의 포퓰리즘 경쟁은 이 나라 정치의 후진성을 상징화하는 슬픈 현장이다.

정치는 약속의 공급원()이다. 약속의 생산성과 신뢰성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철저히 검증된 정직한 약속이야말로 정치의 경쟁력이다.

현재진행형인 영남권 신공항 건설 백지화 시비는 선거공약이 함축하는 명()과 암()의 양면성을 동시에 드러낸 대표적인 경우다.

국익우선과 신뢰추구의 가치논쟁이 뜨거울 수밖에 없는 까닭은 명쾌하다. 어느 한쪽만을 치켜세울 수 없는 당위(當爲)의 무게가 똑같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통치를 위임받은 대통령의 결단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선거는 필시 설익은 온갖 약속들을 춤추게 하는 굿판이다. 피할 수 없는 선거 계절풍은 정치권의 뻥튀기를 실어 나른다.

정치는 인기와 흥정하는 작업이다. 표심을 끌어안기 위한 선심공세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장 확실한 밑천이다. 집권당의 참패로 기록된 6.2지방선거는 야당이 들고 나온 무상(無償)의 약효가 제대로 통한 일방적 승리였다. 내친김에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묶는 이른바 무상 3종 선물세트를 앞세워 정국의 주도권을 틀어쥘 요량이다. 무상은 점잖게 분장된 공짜의 또 다른 이름이다.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법.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언이 있지 않은가. ‘공짜의 정치학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판이다.

공짜는 약인가, 독인가

각급 선거현장에는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린다. 공짜의 재미에 길들여진 민심은 그 터널을 빠져나오기 어렵다. 공짜는 약인가. 독인가? 어설픈 질문 앞에 지금 우리는 서있다.

2012년 봄과 겨울. 총선과 대선을 앞둔 마당이다. 특히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등장할 최대 쟁점이 복지로 쏠릴 경우. 부정적 파장은 대단히 심각할 것이다. 나라의 곳간 사정은 뒷전이요 인기몰이에 매달릴게 뻔히 내다보이기 때문이다. 본디 경쟁의 속성은 뒤돌아보지 않는 질주본능으로 장치돼있다. 분단 상황과 휘발성이 예민한 안보환경은 변수의 연속선상에 있다. 한반도 주변 4강국(···)의 정권교체가 소용돌이로 다가서는 가운데 우리의 선택이 나라의 명운과 직결돼있는 판국이다. 복지논쟁이 선거이슈의 맨 앞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의 형편에서 아직은 한가롭고 사치스런 화두다.

지식사회 일각에서는 감히 공짜와의 전쟁을 일찌감치 선포함으로써 복지포퓰리즘은 잠재워야 한다고 들썩인다. 유권자의 경각심을 자극하는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퓰리즘 추방의 중심세력은 마땅히 언론의 몫이라고 재언한다. 여야의 경쟁적인 복지공약은 사회의 활력을 완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게 분명하다. 특히 청년층의 성취욕구와 모험심을 무디게 만들기 십상이다. 급속한 고령화 저출산이 국력의 신진대사 둔화로 연결되어있는 가운데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신세대의 도전정신을 식게 한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따지고 보면 성장과 복지(분배)는 대립개념이 아니다. 분리될 수 없는 상호 의존적 관계다.

성장은 복지 실현의 버팀목이다. 일자리를 넓히고 삶의 질을 높이는 뿌리이기 때문이다. 복지는 빈부격차를 좁히고 사회통합으로 가는 건널목이다. 버팀목과 건널목은 받쳐주고 건너뛰게 하는 상호작용의 차력(借力) 파트너다.

사회학 일각에서 둘의 관계를 궁극적으로 한 목적을 지향하는 동맹’(同盟)관계라고 규정한 것은 시대정신에 걸 맞는 논리의 진화이다.

大統領(대통령) 脫黨(탈당) 시리즈는 不確實性(불확실성)産物(산물)

이명박 대통령(MB)이 신공항 건설 백지화에 따른 대국민 사과 성명을 낸 뒤. 영남권의 반발은 격렬했다.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눈치다. 영남권은 MB대통령 만들기의 모태(母胎). TK(대구 경북)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MB의 탈당을 주문하고 나섰다. 당 최고위원회의 석상에서는 대통령의 인격을 겨냥한 거침없는 투정이 튕겨 나오기도 했다.

()에서 탄생시킨 대통령이 임기 중에 당을 떠난다는 것은 선진국 정치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지만 한국정치에서는 다반사처럼 되풀이돼온 대통령의 초상이다.

민주화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을 잇는 대통령은 하나같이 당을 떠났다.

탈당의 변은 거의가 선거중립으로 포장됐으나 속사정은 달랐다. ‘타의반 자의반’ (他意半 自意半)의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워져 있다.

노태우의 탈당 이유는 관권선거의 단절이었다. 19929월 김영삼(YS) 당시 자민당 대선후보는 한 지방군수가 폭로한 관권선거의혹과 관련, 기자회견에서 중립선거관리내각 구성을 위한 개각을 요구한다.

대통령 고유 인사권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투영됐다. 뜬금없는 개각요구에 노태우는 격노한다. 이틀 뒤 탈당을 발표. 두 사람은 결별한다. 노태우와 사돈관계인 SK의 이동통신사업 허가문제를 놓고 김영삼과 빚은 끈질긴 마찰이 또 다른 원인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YS의 탈당 또한 당의 차기 대선후보인 이회창과의 갈등에 기인했다. 김영삼에 의해 국무총리로 기용된 후 이회창은 총리의 업무한계를 놓고 청와대와 자주 충돌했다.

끝내 일방적인 총리 해임이란 수모를 당한다. 이회창은 집권당의 대권후보 선출과정에서 YS로부터 일체의 지원을 받지 않았다. YS는 이회창과의 대선후보 경쟁에서 패한 뒤 당을 이탈, 국민신당을 창당하여 대선후보로 나선 이인제를 물밑 지원했다는 의혹에 사로잡혀 매우 운신의 폭이 좁혀졌다.

이회창은 YS의 탈당을 줄기차게 요구했고, YS는 탈당의 변에서 정치권의 근거 없는 주장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응수한다.

김대중(DJ)20025월 세 아들의 각종 비리 의혹으로 물의가 확산되자 대국민 사과와 함께 민주당을 탈당했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노무현에게 부담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설명됐다.

노무현의 경우는 다분히 정치공학적인 탈당으로 볼 수 있다.

집권여당의 내부분열을 빌미로 분당을 위한 계산된 탈당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개혁파와 구주류간의 갈등으로 분당되자 대통령 임기 개시 7개월만인 2003년 탈당한다. 그 뒤 자신의 후원으로 창당한 열린 우리당에 입당한다.

그러나 임기 종반의 급격한 지지율 하락과 열린 당내의 반노(反盧)정서 팽배가 겹친 탓에 마침내 당이 해체된다. 노무현은 무당적으로 임기를 마감한다.

MB朴槿惠(박근혜)關係定立(관계정립) 서둘러야

역대 대통령의 파행적인 당적 이탈은 큰 흐름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차기 대권 후보와의 인간관계가 매끄럽지 못한데서 오는 불협화가 작용한 흔적이다. 또 하나는 임기 말의 지지도 냉각과 권력 누수현상이 맞물려 국정 통제력이 약화되는 틈새에서 현직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부각시키려는 차기 후보의 전술적인 선택의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2011-05-12_221413.jpg

아무튼 최고 권력의 탈당시리즈는 한국정치의 불확실성과 신뢰빈곤이 복합적으로 빚어낸 대통령 잔혹사의 한 단면이다.

여기에서 MB와 부동의 차기 대선 유력후보인 박근혜의 관계를 잠시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두 사람 사이가 반드럽지 못하고 껄끄럽다는 정도는 정치권은 물론, 저잣거리 민초들도 웬만큼 눈치 채고 있는 터다. 뜨거웠던 대선후보 경선과정은 접더라도 국회의원 공천에서 불꽃 튀긴 친이(親李) 친박(親朴) 갈등은 한때 파국 일보직전까지 치닿았다. 세종 시 사태에서 격돌했던 두 사람은 관계개선을 위한 물밑접촉으로 겉보기에 소강상태를 유지해왔다. 이번의 신공항 건설 백지화 파동으로 긴장감이 불거졌으나 서로가 신중하게 대처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완연했다. 이런 와중에 박근혜가 MB 특사로 유럽 순방길에 오르기로 했다는 발표는 두 사람의 관계 재정립을 꾀하는 의미 있는 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우호적인 접근은 이 땅의 정치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불확실성을 거둬들이고 신뢰회복으로 발돋움하는 지름길이 될 법도 하다.

정권 재창출을 겨냥한 두 사람의 생각이 맞아떨어진다면 물은 트는 쪽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이를 역류하는 변수도 만만치 않다. 갈 길은 멀다.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도 전적으로 두 사람의 몫인 것만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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