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호]

지난 천년 새 천년

정치결산과 전망

디지털 정치시대가 온다

글 / 李淸洙 (이청수 순천향대학교 교수·전KBS해설위원장)

지난 천년의 정치반성

오늘의 인류역사 발전속도는 산술급수적으로만 따져도 천년 전의 천 배, 백년 전의 백 배 그리고 십 년 전의 십 배라는 말이 있다.

지금 여섯 달마다 그 용량과 속도가 두 배씩 늘어나고 있는 컴퓨터를 보면 그 발전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치발전속도는 어느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1331년전인 서기 668년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으나 224년밖에 버티지 못하고 후삼국으로 분열됐다.

천 여년 전인 서기 918년 왕건이 쿠데타로 고려를 개국하고 18년만에 한반도를 통일했다. 1170년부터 거의 한 세기동안은 군사정권이 계속 되기도 했다.

나라정치가 어지러운 가운데 몽고의 침략을 받아 쇠약해 졌다.

드디어 이성계가 1392년 쿠데타로 조선을 개국했다. 1446년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를 비롯한 문치도 얼마 가지 못하고 1455년 세조의 쿠데타를 또 맞는다.

반 천년 전인 1498년 연산군 4년의 무오사화에서부터 1545년 명종 원년의 을사사화까지 반 세기동안 네 차례의 사화를 겪었다.

피의 보복정치가 되풀이 됐다. 이어 선조 때는 사색당쟁을 벌이다가 1592년 임진왜란, 1636년 병자호란(인조)을 각각 당했다.

대원군은 1863년부터 82년까지 19년 동안이나 쇄국정책을 고수했다. 그 때 일본은 1868년 명치유신을 단행해서 해외 문물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개방정책을 썼다.

우리의 개혁과 개방이 일본보다 불과 14-5년 뒤진 이 역사적 지체가 1910년의 한일병탄으로 36년 동안이나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게 했다.

1945년 해방이 되고서도 오늘날까지 일본 경제력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 원인은 여기에 있다.

45년 해방과 분단, 48년 남북 단독정부 수립, 50년 북한의 남침에 따른 동족상잔, 53년 휴전, 60년 4.19 학생혁명, 61년 5.16 군사쿠데타, 72년 유신, 79년 10.26(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12.12사건, 87년 6.10 민주항쟁과 6.29 민주화선언등으로 이어진다.

88년 2월 대통령직선 정부탄생, 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과 97년 11월 IMF사태 그리고 98년 2월 국민의 정부 출범과 햇볕정책, 11월부터의 금강산관광 등으로 발전한다.

지난 천년을 이렇게 볼때 우리의 정치는 적어도 질적으로는 큰 발전이 없어 보인다.

지난 천년의 정치청산

그렇다면 새 천년을 한 달여 앞두고 우리 정치는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모든 공인은 공인다워야 한다.

“공인도 인간이니까”라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 법적인 책임은 없다하더라도 도의적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나하고 가까운 사람들이니까”, “나하고 친한 형님들이니까” 봐 주고 따라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은 공인과 그 관련 인사들에서는 있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자리에 연연해서도 안 되고 또 그대로 둬서도 안 된다.

읍참마속은 제갈공명이 그렇게 아끼던 부하 마속이 잘못을 저지르자 눈물을 머금고 목을 친 데서 나온 말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다. 이런 읍참마속을 흔히 볼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또한 오해를 받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물러나거나 그만두게 해야 할 것이다. 그 오해가 정권의 안정이나 인기를 위협할 정도라면 어떤 형식으로든 일단 문책하는 것이 현명한 통치술이라고들 한다.

둘째, 권력은 스스로를 죽일 때 산다.

옛날 어느 나라 왕이 왕자의 비행을 법대로 다스려야하는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됐다. 사랑하는 왕자의 두 눈을 뽑아야하는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것을 비켜 가면 백성이 법을 지키려 하지 않을 것이고 그 대로 집행하면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차마 못할 일을 하는 것이었다.

결국 왕자와 자신의 눈을 하나 씩 뽑는 것으로 난제를 풀었다.

법치도 살고 덕치도 살 수 있었다.

또 국태민안을 위해서라면 자기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그 무엇도 기꺼이 바친 옛 지도층의 이야기를 비인간적이라거나 어리석다고 타기 하지만 말아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그 정신만이라도 배울 줄 알아야 한다. 신당이나 야당의 새 정치일선에 뛰어 드는 사람들도 이런 기준에서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여소야대도 승복하는 전통

셋째, 정치개혁과 대타협의 새 패러다임을 세워야 한다.

우리의 정치개혁은 돈 덜 들게 하고 바르게 하는 선거개혁과 일하는 정치, 미래 창조적 정치를 하게 하기 위한 국회개혁이 당면 문제로 돼 있다.

선거개혁을 위해 여야 모두 전국정당화가 어느 정도 가능한 선거법의 틀을 갖추는 것은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국민들이 정당과 정책 다음에 인물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투표하는 분위기와 행태의 성숙이 먼저 필요하다.

또 선거가 깨끗하고 바르게 치러진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든 국민의 뜻으로 알고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한다.

여대야소든 여소야대든 그대로 승복하고 그 바탕 위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정치를 해나가야 한다. 비록 지역성향이 뚜렷한 선거결과가 된다하더라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이를 무리하게 고치려 한다면 그 자체가 국민의사의 왜곡이 된다.

국회도 그 결과를 바탕으로 대화와 타협으로 해 나간다면 저절로 개혁이 된다.

여대야소라면 야당의 지나친 견제를 국민이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여소야대라면 여당의 독주를 보다 많이 견제해 주는 것이 좋겠다는 국민의 뜻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법률이나 예산도 미래지향

넷째, 내일을 내다보고 오늘의 나아 갈 방향을 결정하는 미래 창조적 정치(Creative Democracy)를 해야한다.

무너진 아파트, 내려앉은 다리의 사고진상조사를 해서 앞으로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너질 위험이 있는 아파트나 다리를 미리 찾아 내서 사고를 예방하고 인명과 재산피해를 미리 막는 일이 더 중요하다.

정치도 지난 일에 매달려서 헤어나지 못하고 닥아올 일에 미리 대처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 말아야 한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고 과거를 보고 오늘 나아 갈 방향을 결정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 갔다.

오늘을 보고 내일 나아 갈 방향을 결정해도 선진국에서는 늦다고들 한다. 내일 나아갈 방향을 미리 내다보고 오늘 나아갈 방향을 결정해야만 정보화시대의 세계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다섯째, 국회가 법안이나 예산을 심의할 때 관련학자와 전문가들의 의견도 항상 폭넓게 듣도록 해서 정보력과 지식력에서 가장 앞선 결과를 산출해 내야한다.

우리 국회는 국정심의를 할 때 주로 정부쪽 이야기를 듣고 찬반이나 개폐결정을 한다. 현재도 국회 공청회제도가 있긴 해도 절차가 복잡해서 자주 활용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의회청문회를 열 때마다 정부와 일반민간 전문가와 학자들의 이야기를 같은 비중으로 들음으로써 완성도 높은 미래지향적 법이나 예산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여섯째, 어떤 큰 문제가 발생할 때 기존의 통상적 기구의 틀 속에서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시대는 지났다.

특별 임시기구를 수시로 설치해서 특정문제를 종합적 집중적으로 신속하게 처리한 다음 해체한다. 선진국들은 이 방식을 애드호크러시(Adhocracy) 특별 임시 기구적 정치 또는 행정이라고 하고 있다.

최근 우리의 옷 로비사건이나 언론문건사건, 서경원의원사건 재수사문제 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기존기구들이 난맥상을 보인 것은 애드호크러시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하고 있다.

보복정치의 악순환고리 차단

일곱째, 전 현직 대통령 사이의 갈등이 정치에 주름살을 지게 하거나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결과가 되게 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2대 대통령 존 애담스는 후임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과 평생 원수처럼 사이가 나빴다.

존 애담스 대통령 아래 부통령으로 있던 제퍼슨이 애담스의 재선을 저지하고 후임 대통령으로 선출된데서 비롯됐다.

제퍼슨은 대통령이 되자 전임 대통령의 주요 정책들을 잘 뒤집기나 하고해서 더욱 그랬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1826년 7월 4일 미독립 50주년 기념일에 같이 사망했다.

고향인 매사추세츠 주에서 여생을 보내던 존 애담스는 마지막 눈을 감으면서도 “내가 제퍼슨보다 먼저 가다니”라고 탄식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퍼슨이 몇시간 먼저 갔다. 버지니아에 있는 제퍼슨의 부음이 애담스에게 마차로 전달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 이후 미국의 전 현직 대통령들은 아무리 섭섭한 관계라 하더라도 적어도 겉으로는 서로 존경하는 관계를 미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미덕은 정치에서의 갈등을 해소하고 보복 정치의 악순환을 끊는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여덟째, 남북관계를 보는 패러다임도 남북 모두에서 달라져야 한다.

남쪽에 좋으면 북쪽에 나쁘고 북쪽에 좋으면 남쪽에 나쁘다는 제로섬 게임적 패러다임에서 탈피해야 한다.

남쪽에 좋은 것은 북쪽에 좋고 북쪽에 좋은 것은 남쪽에도 좋다.

즉, 남북 모두에게 다 좋은 정화게임적 파지티브 섬 게임적 패러다임으로 나가고 있다.

우리는 햇볕정책이 언젠가는 북한을 굴복시켜 흡수통일 시키게 될 것이라는 속셈으로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북한도 햇볕정책을 역이용해서 위기를 탈출하고 몰래 힘을 기른 다음 언젠가는 남한을 무력통일할 수 있다는 속셈으로 대북포용정책을 악용해서는 안된다.

새 천년의 정치, 직접 민주정치시대

세계는 이미 매스 데모크러시(Mass Democracy : Masscracy) 시대에서 미디어 데모크러시(Media Democracy : Mediacracy)시대로 발전했다. 이제는 사이버 데모크러시 (Cyber Democracy: Cybercracy)시대를 거쳐 디지털 데모크러시 (Digital Democracy : Digitalcracy)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새 천년에는 디지털크러시 (디지털정치시대)가 곧 실현된다고 보고 있다. 이 때는 직접민주정치시대가 열리는 것 이다.

새 천년의 첫 10년에서 15 년 사이에 온다면서 그 준비에 골몰하고 있다.

매스크러시는 언론이 대중 또는 국민의 의사와 여론을 잘 반영하면 되는 정치시대를 말한다.

이 단계에서는 국민의 여론을 조직화해서 국정을 끌고 나가거나 반영하는 정당과 대의기관인 국회가 정치를 주도한다. 언론은 정당정치와 의회정치를 따라가면 되는 시대이다.

그러나 미디어크라시는 언론이 정치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끌고 나가는 시대이다.

우리는 지금 매스크러시에서 미디어크러시로 넘어와 있다. 언론정치의 절정기라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정당의 기능이 약화된다. 최근 언론 문건 사건이 발생한 근본적 원인도 영향력이 큰 언론을 끌어들어지 않고는 정치를 주도할 수 없다는 데서 빚어진 정치의 왜곡 현상이다.

사이버크러시는 컴퓨터 등의 뉴 미디어와 사이버 스페이스를 통해 정치가 이루어지는 시대를 말한다. 일반국민이 언론이라는 매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정당등과 쌍방향적으로 정치 의사를 교환하는 단계를 말한다.

미디어크러시시대 때의 언론의 기능이 약화된다. 우리는 이 사이버크라시의 초입단계에 있고 선진국들은 활성화 단계에 있다.

디지털크러시 스트롱 데모크러시

정치선진국들은 새 천년을 앞두고 사이버크러시를 넘어 디지털크러시 시대의 개막 준비에 한창이다. 디지털크러시는 모든 국민과 정부를 비롯한 사회 체제가 디지털 신경망으로 연결돼서 직접 민주정치가 이루어지는 시대를 말한다.

국민이 정당이나 언론을 거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의 대표 기관으로서 간접 민주정치의 상징인 국회까지도 거치지 않고 직접 국사를 결정하는 정치단계를 말한다.

국민투표는 물론 국회가 심의 표결해오던 각종 법안 등도 국민이 실시간으로 직접 심의 표결 처리하는 시대라고 보면 된다. 국회가 존재하더라도 디지털 국민의회와 병존하거나 그 권능이 축소조정 또는 변경된다.

민주정치의 이상형태는 직접민주정치이고 그것은 곧 스트롱 데모크라시(Strong Democracy : 강한 민주정치)를 실현하게 된다.

지금 정보화 시대, 지식 시대에서 스트롱 데모크러시의 정치력을 선점하는 나라가 새 천년의 세계 정치와 역사를 주도해 나가게 된다. 선진국들은 이미 그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새 천년이 오기 전에 묵은 천년의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강한 민주정치를 향해 앞서 달려 나아가야 한다.

과거지향적 저속 정치가 아니라 피터 드러커가 말하는 미래지향적 고속 정치가 돼야 한다. 그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그리고 콘텐츠웨어(Contentsware)를 동시에 갖추어 나가는 일이 핵심이다.

우리 정치권은 이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모르고 있다면 우리 국민이 먼저 직시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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