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호]

IMF위기 극복과 사회융합

사람 줄이고 돈 풀어 되살린 경제

안전망 확충 사회위기 극복해야

글 / 李弼商 (이필상 고려대 교수)

IMF위기 극복의 허상

경제가 차츰 회복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이제는 IMF체제의 졸업은 시간 문제이고 IMF이후의 시대를 대비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부도 각종 지표를 들먹이면서 개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경제가 도약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가 외형적으로 다시 활력을 회복한 것처럼 보이나 내면적으로 건전성을 회복한 것은 아니다.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내세워 정리해고와 감봉을 통해 몸집을 줄이면서 다시 살아났다. 이 과정에서 실업자 급증과 임금하락은 근로자들에게 고통을 집중시켰다.

반면 긴축과 팽창의 냉탕온탕식 정부정책은 고금리와 주가폭등을 교차시키면서 고소득층의 수입을 증가 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좌절과 상실감은 심각한 사회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실 채권과 외채에 눌려 기업과 금융기관의 동반붕괴가 계속 진행중이다.

대우그룹의 위기가 바로 대표적 증거이다. 이 가운데 외국 자본과 부유층들이 벌이는 투기와 소비잔치가 경제를 거품으로 들뜨게 하고 있다.

결국 현재의 경제 회복이라는 것은 경제구조를 개선하고 경쟁력을 강화시켜 살아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덜어내고 돈을 풀어서 고장난 경제를 다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신 자유주의의 무모한 모험

우리 경제는 구조와 체질을 바꾸는 근본적인 개혁이 없이는 원천적 회생이 어려운 경제이다. 지금까지 정부개혁정책은 이러한 개혁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국민의 정부 개혁정책은 신자유주의의 무모한 모험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신자유주의 개혁은 적자생존의 미명하에 약자에게 고통을 떠넘기고 강자가 이득을 꾀하는 약육강식의 개혁이다.

IMF위기의 주요 원인 제공자들은 정경유착을 주도한 비리정치인, 부패관료, 그리고 부도덕한 재벌 등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개혁과 고통분담은 없었다. 결국 힘의 논리에 따라 고통을 약자에게만 전가하는 맹목적 시장 논리가 무자비하게 강요되었다.

이에 대한 수용능력이 없었던 우리 경제는 혼란과 불안이 가중되었다.

여기서 더욱 문제는 정부는 경제를 시급히 살려야 한다는 정치논리에 밀려 추진하던 구조개혁을 중도에 포기하고 경기활성화 조치로 돌아선 것이다.

이는 병든 경제에 대한 수술을 멈추고 진통제를 투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후 개혁은 방향감각을 잃고 표류상태가 되었다.

이처럼 원칙과 철학이 없는 개혁정책은 이미 64조원에 이르는 국민의 혈세를 부실채권 정리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퍼부었다.

아직 부실채권 규모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기업과 금융기관의 동반붕괴를 계속 압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 발전의 허리역할을 하는 중산층이 붕괴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상위 부유층의 재산이 증가하고 있는 상태에서 나타나고 있는 중산층 붕괴 현상은 사실상 사회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경제와 사회의 자생적 복구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치는 개혁의 치외법권지역

정부개혁정책의 근본적인 방향선회가 필요하다. 어설픈 신자유주의 논리를 지양하고 국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 시장경제의 패러다임을 경제운영의 근간으로 삼아야한다.

고통을 공평하게 부담하고 모두가 위기해결에 자기 몫을 다 할 수 있는 희망적 경제의 틀을 만드는 개혁의 청사진을 다시 그려야 한다. 이런 견지에서 무엇보다도 우리 경제의 목을 조이고 있는 정경유착의 비리 구조부터 먼저 혁파해야 한다.

정경유착의 고질적인 병폐를 해결하지 않고는 천문학적인 부도사태는 얼마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정경유착을 척결하고 건전한 경제발전을 위해서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경제를 정치의 지배형틀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돈 안 드는 선거와 투명한 정치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중차대한 과제이다. 또 시장경제를 정치에서 보호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필수 불가결하다. 새정부 들어서 정치는 개혁의 치외법권지역으로 남아있다.

경제위기의 극복을 위해 다음으로 시급한 것이 정부부문의 개혁이다. 경제를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부는 행정규제를 양산했는데 금융기관들과 기업들은 거미줄처럼 쳐진 규제의 망에 걸려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다.

더구나 인사조치, 세무조사. 행정제재 등을 통해 수시로 금융기관과 기업들을 위협하고 있어 사실상 자유롭고 창의적인 활동은 어려운 상태이다.

관치금융에 공적 자금만 투입

정부는 규제개혁을 주요 국정 과제로 추진해 왔으나 정치구호 이상 다른 의미가 없다. 실상 관료주의는 경제의 목을 더 조이고 있다. 국민을 위해 작은 정부로 다시 태어나는 행정개혁이 시급하다.

이어서 경제개혁조치로 필히 취해져야 할 것이 금융개혁이다. 그동안 정경유착비리의 근본적인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 금융제도이다.

중앙은행과 산하 금융기관들은 권력과 재벌이 돈을 마음대로 발행해서 나누어 갖는 비리의 하수인 역할을 하며 보호막까지 제공한 것이다.

정치권력의 지배를 거부하고 국민경제차원에서 돈의 흐름을 유도하는 금융제도의 자율화가 국민경제를 정경유착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본장치가 될 것이다.

그 동안 진행된 금융개혁은 부실 금융기관의 퇴출과 인수 합병 그리고 부실 채권을 해소하기 위한 공적자금의 투입이 전부이다. 그동안 금융을 병들게 한 관치금융의 지배는 전혀 해소되지 않고 거꾸로 강화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라는 무소불위의 권력부서가 등장하여 비틀거리는 금융기관들의 목을 조이고 있다. 이런 견지에서 관치금융의 고리를 끊는 정부측의 개혁이 금융기관들의 구조조정에 앞서 선행되어야 한다.

재벌 지배구조 개혁은 필수

정경유착의 파트너였던 재벌기업들의 개혁은 필수적이다. 이제는 대기업집단이 고도성장을 주도하는 경제주체가 아니라 경제를 무너뜨리는 원인 제공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재벌기업들은 갖가지 특혜와 정치비리자금을 교환하는 이른바 권력형 비리를 통해 몸집을 키워왔다.

그동안 정부의 재벌개혁은 부실 계열기업을 정리해주고 다시 팽창 정책으로 지원을 해준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IMF이전 보다 경제력 집중이 더 심화된 것이 현실이다. 재벌개혁은 법과 제도를 통한 개혁을 전제조건으로 해야 한다. 정부가 자의적으로 개혁을 주도할 경우 정치논리에 의한 재벌재편이나 재벌길들이기로 끝난다.

이제 재벌기업들의 지배구조와 사업구조를 과감히 뜯어고치는 일은 우리 경제의 선진적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재벌기업들은 자율적으로 계열기업의 독립경영체제를 구축하며, 전문 경영제도를 도입해야한다.

사업교환과 부실계열기업처분을 서둘러 전문계열화를 이루어야 하며 세계화에 보다 박차를 가해야 한다. 여기서 회계제도와 감사제도를 개혁하여 투명한 경영을 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재벌기업들의 소유분산과 소유와 경영의 분리도 필요하다.

우리 나라의 경우 그동안 재벌기업들의 소유가 대부분 창업주와 친인척에 집중됨으로써 기업활동이 사적이익의 극대화에 치중해왔다.

과감한 기업공개 정책에 입각하여 소유를 분산하고 전문 경영체제를 도입할 경우 기업이 소유주의 사금고라는 인식이 불식되며 이때 비로소 기업은 기업주를 위한 독과점행위 대신 국민을 위한 투명한 경제 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

사회융합으로 새천년 도전

우리는 IMF위기를 넘었다고 하나 경제위기가 사회위기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경제의 구조개혁은 국민 누구에게나 희망을 주고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사회적 기회 확대를 위해서 필수적 과제이다.

사회가 다시 융합하고 경쟁력을 발휘하기 위해 사회 안전망의 확충이 시급하다. 조세의 획기적인 개혁을 통하여 부유층에게 조세부담을 증가시키고 중산층과 서민들을 보호하는 사회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21세기를 여는 기본적 조건일 것이다.

새 천년은 지식이 국부와 경쟁력을 창조하는 기반이 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 높은 교육열과 풍부한 인적자원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게 있어 분명 새로운 도전과 기회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일련의 개혁이 새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정부의 굳은 개혁의지 속에서 실천될 수 있다면 우리 경제는 세계속에 다시 태어나는 제2의 도약을 꾀할 수 있다.

즉, 지식과 기술 개발에 선도적 역할을 하는 창조적 경제구조의 확립을 통하여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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