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호]

신분위장 ‘악마의 제국’

김일성(金日成) 17주기 斷想(단상)

북 초대내각 17명중 12명 피의숙청

김영주, 강양욱 등 친일경력자 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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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동복((재)한국통일진흥원 자문교수, 前 남북고위급회담 대표)

1945년 9월19일 함정 편으로 함경남도 원산항에 상륙한 소련군의 일원으로 북한에 도착한 약관 33세의 김일성(金日成)의 신분은 소련군 대위였다. 그 김일성이 10월14일 평양에서 있었던 ‘조선해방축하집회’에서 북한 동포들 앞에 첫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스티코프 소련 점령군사령관이 그를 ‘김일성 장군’이라고 소개했을 때 이 자리에 참석했던 많은 북한 동포들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일성’이라고 소개된 이 청년은 조선 사람들이 일제 강점 하에서도 오랜 기간 전설의 인물로 전해 듣고 있었던 고령(高齡)이었어야 할 ‘김일성’이라는 이름의 무장(武將)과는 결코 동일인물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짜 김일성 장군의 ‘악마의 제국’

이 김일성은 국내 공산당의 괴수(魁首)였던 박헌영(朴憲永)과 선두를 다투어야 했고, 고(故) 황장엽(黃長燁) 씨의 증언에 의하면, 결국 소련 공산당의 스탈린 서기장 앞으로 불려가서 일종의 심사를 거쳐서 박헌영을 제키고 북한의 독재자로 간택(揀擇)되었다. 그 뒤 김일성이 남북한의 한민족 전체는 물론, 특히 북한 동포들에게 안겨준 고통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대목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한 김일성이 1994년 7월8일 죽었다. 그러나 그가 세워 놓은 ‘어둠의 제국,’ ‘악마의 제국’이 철권으로 통치했던 북한은 그의 사후(死後) 17년간 그를 능가하는 독재였던 그의 아들 김정일(金正日)에 의하여 전혀 회생 능력이 없을 정도로 거덜 난 국가로 전락한 가운데 이제 다시 3대째의 권력세습이라는 악몽(惡夢)이 펼쳐지려 하고 있다.

그런데, 김일성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악명 높았던 독재자의 사망 17주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상념(想念)이 있다. 그것은 해방 이후의 혼돈과 6.25 전쟁의 참상을 극복하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마리 토끼를 함께 포획하여 오늘날 세계 G-20의 반열에 우뚝 서 2011-08-06_103440.jpg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엉뚱하게도, 김일성에 대한 왜곡되고 오도된 인식이 팽배하다는 사실이다. 이 같이 우려스러운 사실을 한꺼번에 해소시킬 방도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오늘 두어 가지 사실(史實)을 거론함으로써 우선 일부 국민들의 그 같은 왜곡, 전도된 역사 인식이 바로 잡아질 수 있는 기회로 삼아 볼까 한다.

초대내각 12명이 피의숙청으로 제거

우선 한 가지 사실은 북한에서 1945년9월 9일 출범한 북한 정권의 ‘내각수반’으로 김일성이 조직했던 초대 내각 구성원들의 그 뒤 운명이다. 북한 정권 초대 내각 구성원 17명 가운데 ‘자연사’로 와석종신(臥席終身)한 사람은 김일성을 비롯하여 홍명희(국내파, 부수상), 최용건(빨찌산, 민족보위상), 백남운(국내파, 근로인민당, 교육상), 허정숙(연안파, 문화선전상)의 5명뿐이다. 나머지 박헌영(국내파, 남노당, 부수상, 외무상), 김책(빨찌산, 부수상, 산업상), 박일우(연안파, 내무상), 최창익(연안파, 재정상), 이승엽(국내파, 남노당, 사법상), 장시우(국내파, 북노당, 상업상), 주영하(국내파, 북노당, 교통상), 허성택(국내파, 남노당, 노동상), 김원봉(임정계, 국가검열상), 이용(국내파, 신진당, 도시경영상), 박문규(국내파, 남노당, 농림상), 이병남(국내파, 월북자, 보건상) 등 12명이 ‘숙청’을 통해 목숨을 잃었다. 이밖에도 중국에서 공산당 8로군의 명장(名將)이었던 김무정(민족보위성 부상), 국내파, 남노당의 허헌(최고회의 의장), 연안파의 두목이었던 김두봉(최고회의 상임위원장)이 숙청을 통해 제거되었다.

이같은 사실은 김일성의 정권 장악이 얼마나 ‘피’로 얼룩진 것인가를 말해 주거니와 그 뒤 정권 유지 과정은 문자 그대로 ‘시산혈하(屍山血河)’를 방불케 하는 권력 투쟁의 역사임을 보여준다. 김일성은 ‘남노당’ 계열을 시작으로 ‘연안파’, ‘소련파’에 이어서 국내파 가운데서 이른바 ‘갑산파’를 대상으로 조직적인 ‘피의 숙청’을 단행하는 한편 북한 전역에 여러 곳의 ‘정치범 수용소’를 운영하는가 하면 1990년대에 와서는 경제정책의 실패로 수백만 명의 북한 동포들이 굶어 죽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지옥도(地獄圖)를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남북한 내각 친일파 비교해 보라

또 한 가지는 김일성의 북한이 입만 열면 대한민국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친일 시비’의 허구성(虛構性)에 대한 상념이다. 엄연한 사실은, 초기 김일성 정권에는, 2011-08-06_103448.jpg 김영주(김일성의 동생, 부주석, 일본군 헌병보조원), 장헌근(임시인민위원회 사법부장, 일본 중추원 참의), 강양욱(김일성의 외종조, 목사, 일제 도의회 의원). 이승엽(사법상, 일제 시 친일단체 ‘대화숙’ 가입), 정국은(문화선전성 부상, 아사히신문 기자), 김정제(민족보위성 부상, 일제 양주군수). 조일명(문화선전성 부상, 일제 시 친일단체 ‘대화숙’ 가입), 홍명희(부수상, 일제 시 ‘임전대책회의’ 가입), 이활(초대 공군사령관, 일본 육군항공대 출신), 허민국(인민군 9사단장, 일본 육군항공대 출신) 등 허다한 친일 경력자들이 참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조직한 초대 내각에는 이시영 부통령, 신익의 국회의장, 김병로 대법원장, 이범석 국무총리, 국방장관, 장택상 외무장관, 윤치영 내무장관, 김도연 재무장관, 이인 법무장관, 안호상 문교장관, 조봉암 농림장관, 임영신 상공장관, 전진한 사회장관, 민희식 교통장관, 윤석구 체신장관, 이청천 무임소장관, 이윤영 무임소장관의 면면이 보여 주는 것처럼 단 한 명의 ‘친일’ 인물도 포함되지 않았었다. 다만, 미 군정당국과 대한민국 건국 직후 이승만 정권은 ‘공산당’이라는 특수 집단의 국가건설 방해 내지 파괴활동에 대처하는데 불가피하게 과거 일제시대의 일본 고등계 경찰 요원들을 활용하는 편법을 구사함으로써 ‘옥(玉)의 티’를 남겨 놓았다는 점을 지적해 두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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