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호]

범죄없는 새 천년 소망

글 / 丁海昌 (정해창 한국범죄방지재단 이사장·전 법무부장관·전 대통령비서실장)

인구증가율 넘는 범죄증가율

희망과 불안이 교차되는 가운데 새 천년을 맞이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달에 힘입어 더없는 풍요와 편안을 기대하게 되었다. 빈곤과 질병은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며 정보화 사회가 꽃을 피우면서 우리의 활동무대는 더없이 넓어지게 되었다. 의식주(衣食住)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일상생활은 편리의 극치를 이룰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장미빛 꿈의 다른 한편에는 불안과 걱정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인구와 노인문제가 그러하고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또한 심상치 않다. 빈부격차의 극복도 쉽지 않은 과제이다. 범죄도 빼놓을 수 없는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새 밀레니엄에는 ‘범죄없는 사회’를 이룩할 수는 없을 것인가.

사실 범죄는 사람이 사회를 이루어 살기 시작하면서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혀온 어려운 문제이다. 특히 전통적인 농경사회를 벗어나 산업화가 진행되고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면서 심각의 도를 더해 가고 있다. 양적인 증가는 물론이고 질적으로도 더욱 포악하고 지능화 되었으며 저연령화 현상까지 동반하기에 이르렀다. 직업범죄인이 생기는가 하면 범죄조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근간에는 국제화 현상도 현저하다. 국경을 넘나들며 마약을 밀매하고 인신매매를 일삼고 있다.

우리 나라의 범죄증가도 심각하다. 검찰 기소사건을 기준으로 1998년의 경우 10년전에 비하여 두배 넘게 늘어난 120만여명을 헤아리고 있으며 교도소 재소자수도 1일 평균 수용인원 기준으로 10년전의 5만여명에 비하여 약 35%가 늘어난 6만7천여명에 이르고 있다. 인구증가율을 훨씬 능가하는 사건의 격증이요 재소자수의 증가이다.

과학이나 논리로도 설명부족

왜 이렇게 되는가? 범죄의 원인은 무엇인가? 왜 범죄인의 길을 걷게 되는가? 과연 범죄없는 세상을 구현하는 방책은 없는가? 이러한 화두를 가지고 많은 형법학자와 범죄학자, 철학자와 종교인이 오랫동안 탐구에 탐구를 거듭하고 사색에 사색을 멈추지 않았다. 숱한 진단과 갖가지 처방을 내놓았다.

정부는 정부대로 또 민간까지 동원되어 많은 노력을 경주하여 왔다. 그러나 호전되기는 커녕 오히려 악화일로를 걷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아마도 불완전한 인간이 모여사는 이 세상에서 범죄는 결코 없어질 수 없는 현상인 듯 싶다. 사실 범죄문제는 인간의 본질과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인간에 대하여 충분히 알지 못하는 만큼 범죄에 대하여도 범상한 과학이나 섣부른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여백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의 생각으로 우리 나라에서 이 문제와 관련하여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폭력 및 흉악범죄, 부정·부패의 문제와 아울러 기초질서의식 내지 공중도덕이라 생각한다.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유난히 폭력사범과 흉악범죄가 많은 편이다. 1998년의 경우만 하여도 강도·강간·살인 등 흉악 범죄로 기소된 자가 1만명에 육박하고 있어 10년사이 두배 가까이 늘어나고 있으며 폭력범죄로 기소된자는 20만명을 넘고 있다.

토막살해, 가정파괴 사범 등 잔인하고 패륜적 범죄는 고사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먹을 휘두르고 폭행과 상해를 일삼는 현상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경찰관에게도 서슴없이 각목으로 폭행을 가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부끄러운 정치인과 공직자 스캔들

교육의 도장인 학원에서 또 사랑을 바탕삼는 가정에서조차 폭력이 문제되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의 폭력이라 할 수 있는 폭언의 문제는 얼마나 심각한가. ‘말’로 문제를 일으키는 이른바 지도층의 탈선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실로 살벌하다는 표현이 과히 틀리지 않는 사회분위기 이다.

날이면 날마다 보도되는 정치인의, 공직자의 또는 기업인의 스캔들은 우리를 질식시킬 정도이다. 1998년의 경우 10년전에 비하여 5배 가까이 늘어난 1천여명의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된 범죄로 기소되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우리 나라를 부패정도가 심한 나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가 사회를 이루어 평화롭게 살기 위하여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상호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문화마다 독특한 에티켓이 있고 지켜야할 공중도덕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초질서의식이 결여된 사회는 존립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밖에 모르는 행동을 일삼는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며 언제나 성숙된 시민사회가 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새천년에는 적어도 기초질서가 확립되고, 폭력과 부패의 문제가 더 이상 우리의 일상 관심에서 사라지는 나라를 만들어야 겠다.

범죄예방의 요체는 교육과 감시 그리고 범죄를 범하지 않아도 될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은 교육이 으뜸이다. ‘기초질서를 지켜라!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 부정부패는 많은 사람에 해악을 끼치는 큰 죄악이다!’라고 되풀이해서 가르쳐야 한다. 가정이, 학교가, 종교가 그리고 사회가 모두 나서야 한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꾸준히 해 나가야 된다. 이 작업은 적어도 10년 내지 30년 앞을 내다보는 것이어야 한다.

범죄는 기회가 주어질 때 범해지는 것이다. 기회를 갖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이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경찰의 순찰활동, 민간의 방범활동은 전통적인 감시 방법이다. 경비산업이나 NGO의 활동을 활성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언론의 부단한 감시활동이 덴마크의 부정부패를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볼 만하다.

부정부패 환경개선이 과제

부정·부패를 범하지 않아도 되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공직자의 처우에 대하여 합리적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싱가포르의 예와 같이 획기적 처우개선과 보다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치개혁과 교육개혁을 통하여 부정의 빌미가 되고 있는 정치자금과 자녀교육비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모든 공직자에게 청백리가 되기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범법자는 빠짐없이 색출하여 응징하여야 한다. 흔히 엄벌이 범죄진압의 요체인양 주장하지만 그보다는 적정한 형벌을 공평하고 일관되게 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범법자는 반드시 처벌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단속기관에 대하여도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기구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기구의 신설보다는 운영의 효율화가 매우 긴요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없애도 될 기구, 줄여도 될 인원이 있을지 모른다. 이와 관련하여 지방자치단체장이 범죄 문제에 나설 것을 제안한다. 범죄의 도시로 악명 높던 뉴욕이 한시장의 노력으로 그 오명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자. 물론 미국과는 제도가 다른 점이 있다 하더라도 경찰과의 협조를 통하여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범죄가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인 만큼 그 대책도 종합적이고 전방위적이어야 한다. 일시적 진압책도 필요하지만 꾸준하고 장기적인 노력이 더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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