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호]

佛혁명과 한국의 개혁

글 / 林春雄 (임춘웅 대한매일신문 논설위원)

아직도 계속되는 혁명논쟁

지금으로부터 211년 전인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국왕이었던 루이 16세는 바스티유 감옥이 습격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 소식을 전하며 몹시 당황해하는 시종(侍從)에게 국왕은 무표정하게 “반란이 일어 났는가”고 물었다. 시종은 “아닙니다 혁명이 일어 났습니다”고 황급히 대답했다. 국왕은 다시 “혁명이 뭔가”고 물었다. 시종이 혁명을 어떻게설명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혁명이 무엇인지를 몰랐던 루이 왕은 단두대에 목을 내놓아야 했다.

초등학교 학생이면 다 들어봄직한 ‘프랑스 혁명’이란 말은 혁명이 난지 2세기도 지난 오늘날 까지도 논란이 계속되는 특이한 혁명이다. 혁명은 과연필요했는가? 혁명은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같은 논쟁이다.

혁명이 필요했는가에 대한 의문은 무엇보다 혁명의 남긴 엄청난 희생과 피해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코뱅당이 집권하면서 이른바 반혁명 혐의자들은 가차없이 처단됐는데 자코뱅 독재가 무너지기 전 다섯달 동안 파리에서만 무려 2700여명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1794년 테러가 프랑스를 휩쓸던 때 반대 지방에서만도 60여만명이 학살됐다고 한다.

혁명은 그렇게 많은 피를 흘려야 할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 많은 살상이 계속되는 동안 온 프랑스를 지배했던 공포정치는 또 무엇을 위한것이었을까 하는 궁금증 들이다.

프랑스 혁명은 못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당시 프랑스는 이웃 영국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아 산업 전분야가 비교적 무난히 발전하고 있었다. 혁명이 오히려 그 발전을 가로 막았다는 관점도 있다. 혁명이 프랑스 근대화를 가로 막았던 봉건제도를 무너뜨렸다고 하나 실은 혁명전에 이미 봉건제도는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 실패했다는 주장은 혁명이 결국 나폴레옹의 군사독재를 불러 들였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혁명을 인류역사의 불멸의 기념탑으로 여기는 더 많은 사람들은 그 혁명의 이상이 근대문명사회의 이념적 원천이 되었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혁명보다 어려운 개혁

프랑스 혁명의 직접적인 계기는 미국독립전쟁에 참여했던 프랑스에 미국혁명의 열기가 옮겨졌기 때문이었다. 프랑스혁명의 자유와 평등 이념은 영국의 명예혁명과 미국혁명에서 이어 받은 것이었다.

어떤 학자는 영국과 미국은 자유와 평등의 두 이념 중 그 우선 순위를 자유에 두었는데 20세기 러시아 혁명은 자유보다 평등에 중심을 두었다고 보았다. 그는 영국과 미국은 자유의 확대를 통해 평등을 실현하려 했고 반면에 러시아는 평등을 통해 자유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는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영국과 미국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통해 점진적인 평등을 실현하는데 성공했으나 러시아는 실패했다. 자유와 평등을 둘다 동시에 추구했던 프랑스 혁명도 실패했다.

1789년 프랑스에 혁명의 열기가 가득했듯이 1999년 한국에는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벌써 2년째다. 개혁은 혁명이 아니다. 그래서 개혁이 혁명보다어렵다는 말이 있다. 혁명은 혁명적 수단을 가지고 보다 단순한 목표를 추구하는데 비해 개혁은 비혁명적 수단으로 혁명보다 광범한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후 2세기가 지난 지금 한국에 부는 개혁 바람의 정체는 과연무엇인가. 바스티유 감옥을 향해 달리던 파리의 혁명 대열은 그들이 왜 분개하고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는 왜 개혁, 개혁 하는지 국민들의 확신이 없어 보인다. 개혁의 동기와 목표를 애써 외면하려는 계층마저 있다.

그것이 김대중 정부 개혁의 아키레스건이다. 개혁이란 잘못된 것을 고치자는 것이다. 개혁은 국가가, 한 사회가 발전하는데 저해되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잘못된 관행, 잘못된 제도, 잘못된 의식, 잘못된 구조를 바로 잡는 작업이다.

제도나 구조가 잘못된 사회에는 언제나 불만과 갈등이 넘치게 마련인 것이다. 그래서 갈등과 불만의 요인들을 개혁하지 않으면 사회갈등과 국민의 불만을 줄일 수 없는 것이다. 개혁이 성공적으로 이행되어야만 사회통합, 나아가 국민통합이 가능해진다. 참된 개혁은 사람을 결합시키고 대립을 해소시키는 커다란 힘을 갖고 있다.

우리사회에는 반세기 동안이나 계속돼온 독재정권이 남긴 적폐, 30여년의 군사정권이 남긴 군사문화 피해, 좌우의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파생된 문제, 지역적 갈등, 날로 심화돼 가는 계층간의 격차, 이른바 기득권 세력의 오만과 이기주의, 재벌중심의 경제 구조, 관치 금융체제 등 개혁의 대상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왜 국민들은 김대중 정부의 개혁에 심드렁해 보이고 애써 외면하려는 세력마저 늘어나는가. 일이 이렇게 꼬이고 있는 것은 우선 개혁의 면역 현상이다. 얼마전 현 정권의 고위인사 한사람이 개혁의 피로현상을 말했다가 혼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엄연한 사실이다.

개혁 실패는 혼란과 갈등 초래

우리 국민은 유독 건망증이 심한 국민이다. 개혁은 김대중 정부 들어와서 시작된 신조어가 아니다. 박정희 정권은 예외로 하더라도 전두환 정권도 개혁을 말했고 노태우 정권도 개혁을 주장했다. 김영삼 정권은 5년을 내내 개혁 구호 속에서 보냈다. 김영삼 정권때 부터만 따져도 개혁은 벌써 7년째다.

국민들은 7년 내내 개혁! 개혁! 구호속에서 살고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7년동안 무엇이 개혁 됐는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개혁의 면역현상을 국민들의 책임이라고 해서는 곤란하다. 김대중 정부 개혁정책의 관건은 바로 이 개혁의 면역현상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

개혁이 지지부진한 이유로 개혁주체 세력의 부재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지역주의가 가장 큰 정치 이데올로기가 돼버린 우리사회에서 진보적 개혁주의가 정치 세력화할 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이 전국정당화를 외치며 신당을 만들고 선거제도를 고치려하고 있으나 그것으로 개혁세력을 결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이 정권은 태생적으로 적이 많다는 점이다. 지역주의와 기득권 세력의 저항 때문이다. 그것은 이 정권의 잘못이 아니지만 이 정권이 이겨내지 않으면 안될 과제다.

문제는 김대중 정부의 개혁이 실패할 경우이다. 그것은 김대중 정권의 실패가 아니라 한국의 실패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더 큰 혼란과 더 깊은 갈등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다. 개혁이 실패하게 되면 우리 사회는 또 한번 보수화의 물결속에 휩쓸리게 될 것이고 앞서 지적한 개혁의 목표들은 저만치 물러 앉게 될 것이다. 새삼스레 프랑스 혁명 얘기를 꺼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금부터라도 개혁의 필요성과 필연성을 차분하게 처음부터 다시 설득해 나가야 한다. 정치세력 없이 추진되는 개혁은 국민설득이 필수적이다. 국민설득의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개혁작업이 과격해서는 안된다.

너무나 많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서도 곤란하다. 실행가능한 개혁부터 확신을 갖고 추진하되 그 성과를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혁의 후퇴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한 인식도 심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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