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호]

새 천년, 새 정치 출발

글 / 李淸洙 (이청수 순천향대학교 교수·전 KBS논설위원장)

디지털 데모크러시 선언

‘하나의 유령이 세계에 떠돌고 있다.

디지털크러시라는 유령이.’

-2000년 1월 1일 디지털크러시 선언 첫머리

‘하나의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

공산당이라는 유령이.’

-1848년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첫머리

새 천년의 첫 새 세기 또 첫 새해의 첫날을 맞아 이 두 선언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둘 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세계를 놀라게 하는 큰 변화가 있게 했거나 있게 할 것이라는 데 있다. 그러나 이 두 선언은 분명히 다르다. 공산당 선언은 152년 만인 지금 그 유령의 본체가 이미 사라졌고 그 꼬리마저 감춰버릴 찰나에 있다. 오늘 새로 나온 디지털 크라시(Digitalcracy) 선언은 디지털이 앞으로의 세계를 보다 오랫동안 거의 만능적으로 변화 발전시켜 나갈 것으로 실증하고 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앞으로 10년에서 15년 사이에 디지털 데모크라시(Digital Democracy) 시대가 온다고 보고 그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디지털정치 시대는 디지털체제를 통한 직접민주주의 시대를 말한다. 그것은 곧 민주정치의 최고 형태로서 스트롱 데모크라시(StrongDemocracy) 스트롱크러시(Strongcracy)를 실현하게 된다. 스트롱크러시는 간접민주정치 또는 대의민주정치의 제도적 장치인 의회보다는 직접 민주정치의 제도적 장치인 국민총회가 정치를 직접 주도하게 한다. 이 직접민주정치는 D-Net(Democracy Network)나 빌 게이츠가 말하는 DNS(Digtial Nervous System)라는 디지털 신경체제를 통해 모든 국민이 연결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가상 공간에서의 여론주도

그렇다면 그 직접민주정치-디지털크러시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우선 두 천년 서너 백년 전 그리스 시대의 아테네에서 실시된 직접 민주주의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아테네의 직접 민주정치는 모든 의안의 예심 기구로서 500명으로 구성되는 평의회가 있고 최고의결기구로서 민회(民會) 즉 ‘시민총회’가 있었다. 평의원은 시민권을 가진 남자 어른 가운데서 매년 추첨으로 뽑아 번갈아 가면서 맡도록 했다. 시민총회는 노예와 여자를 제외한 남자 성인시민 모두가 직접 참여하는 회의체였다. 시민총회는 평의회의 예심을 거쳐 올라온 모든 의안을 최종심의 확정하는 최고 권능을 갖고 있었다. 조그만 도시국가여서 가능했다. 그러나 평의회의 추첨에 의한 윤번제 구성과 시민총회는 당시 전체적인 민도가 낮은 아테네에서 중우정치(衆愚政治)가 다반사로 일어나게 하는 원인이 됐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면서 독이든 당근 즙 배를 장렬하게 들고 간 것도 바로 이 중우정치를 비판하는 반체제 언론을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디지털크러시는 중우정치의 위험이 없는 것일까. 국회의원은 추첨제가 아니라 선거제로 계속 뽑도록 하고 전체적인 국민의 수준향상과 디지털 컴퓨터의 발달이 동시에 이뤄짐으로써 그 위험은 거의 없어질 수 있다. 따라서 국회는 모든 의사를 정리하고 예비 심사하는 권능으로 격하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총회에서는 국민투표 같은 것은 물론이고 모든 의안에 대한 토론과 표결도 순식간에 해서 정리 집계 결정할 수 있다. 또 디지털 국회와 국민총회를 위해서는 디지털 스페이스에 나타나는 다양하고 무수한 국민 의사를 조직화하는 디지털 정당의 기능이 필요하다.

디지털 정당은 D-Net나 DNS를 통해 자기당의 정강 정책 노선에 맞는 국민의사를 단숨에 정리하고 조직화 할 수 있다. 디지털 정당들은 그 결과에 따라 의회에서 모든 의안들을 예심하고 디지털 국민 총회에 올리게 된다. 이러한 디지털크라시가 이뤄지게 하는데는 지금과 같은 실 공간(Real Space)에서 여론을 주도해온 언론 미디어보다는 가상 공간(Cyber Space)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디지털 미디어 언론이 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국회의원 집단이기 발못붙여

이러한 모든 실험은 이미 미국이나 영국에서 상당 부분 실증되고 있다. 현재 미 정치연구소 CGS (The Center for Government Studies)가 만든 D-Net와 영국의 UKCOD(United Kingdom Citizens Online Democracy)등이 그것이다. 오늘의 ICT (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디지털크라시 시대에는 집회나 시위도 실공간에서 눈물이나 피를 흘리면서까지 할 필요가 없게 된다. 또 무수한 국민의사를 텔리컴퓨터(Telecomputer)로써 단숨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다.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국민 조세 거부운동을 D-Net을 통해 간단하게 해 버림으로써 권력을 굴복시킬 수 있다. 국회의원들의 집단 이기주의적 입법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된다. 국민들이 투표 때는 자유로운 주인이지만 투표가 끝나자마자 노예상태에 빠진다는 빈정거림을 더 이상 받지 않게 된다.

정치인이나 정당들은 그 공약이나 정책을 D-Net나 DNS를 통해 국민 각자의 E-mail에 직접 전달하거나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놓거나 아니면 공동 토론장에 내놓기만 하면 된다. 선거도 디지털 선거가 되고 디지털 선거운동이 된다. 유권자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거나 대중연설을 할 필요도 없이 D-Net을 통해 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선거 비용도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다. 정치자금이 좀 필요하더라도 투명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감추거나 속이려고 할 경우 누군가가 그 사실을 띄워 버릴 것이다. 언론 문건 사건 같은 것도 일어날 필요가 없다.

언론 자유도 아예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디지털크라시 시대에는 어떤 언론도 D-Net와 DNS나 인터네트에 올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언론을 탄압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실효성이 없게 된다. 특히 남북으로 갈려 있는 우리 나라는 실 공간에서의 물리적 통일이 안 된 상태에서라도 또는 그런 통일을 구태여 하지 않고서도 가상공간에서 디지털 통일공화국의 실현이 가능하다. 전쟁도 실전 없이 가상공간에서의 디지털 게임과 같은 것으로 승패를 판가름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정치가 이루어지는 상태가 바로 디지털크라시이다.

미국은 빠르면 앞으로 십 년 뒤에 이런 시대가 온다고 보고 있으나 우리도 의외로 빠를 수 있다. 현재 우리 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핸드폰을 갖고 있고 이 추세대로라면 머지 않아 1인 1대 시대가 될 것이다. 또 이 핸드폰은 곧 컴퓨터 단말기 기능을 거의 완전히 갖춤으로써 D-Net와 DNS 체제 구축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디지털크라시 시대를 앞두고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정직하고 깨끗하고 잔꾀를 부릴 줄 모르면서 국민의 뜻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고속 고도 정치를 하는 것이다. 지난 천년까지의 낡은 달구지 저속 저질 정치에 아직도 젖어 있는 사람이나 생각은 모두 미래 창조적 사람이나 생각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그 개혁에 뒤지지 말아야만 디지털크러시 역사의 선도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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