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호]

[원로 정치논객칼럼]

正體性(정체성) 검색 뒤따라야

安신드롬 오늘과 내일

정치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흔적들

글/ 鄭在虎 (정재호 헌정회 대변인, 9·10대의원, 전 경향신문 정치부장, 논설위원)

경쾌한 탱고 스텝의 안철수 액션

세상을 번쩍 들었다가 놓고선 다소곳이 제자리로 귀환한 안철수 액션(action)은 끊고 맺는 맛이 일품인 리드미컬한 멋진 탱고춤을 떠올리게 했다. 그의 스텝은 경쾌했고 역동적이었다.

짧은 4박 5일의 정치판 나들이였지만 그 파급효과는 깊고 굵직하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출마할 듯 말 듯 내비친 ‘시늉’ 하나만으로 돌개바람을 몰고 온 이른바 안철수 현상의 의미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응당 언론의 시각부터 살필 수밖에 없다. 주요 매체의 압축된 표현들을 골라보면 충격파장의 농도를 가늠하기에 충분하다.

예컨대 ‘신드롬’, ‘태풍’, ‘돌풍’, ‘쓰나미’, ‘지각변동’, ‘쇼크’ 따위다.

언론은 거의 표현의 한계점을 오르내리면서 안철수 띄우기에 매달렸다. 언론의 또 다른 속성인 상업적인 센세이셔널리즘이 경쟁적으로 부추긴 흔적이다.

하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라의 몸집에 걸맞지 않은 낡은 ‘기성복’에 안주해 온 정치권에 던진 경고음의 울림이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안철수의 서울시장 당선 가능성이 압도적 선두로 치고 나가자 여야정치권은 숫제 말문을 닫아버렸다. 제대로 정리된 논평조차 내놓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기습적인 ‘한 방’에 넋을 놓아버렸다.

인구 1천만 수도 시장이 어떤 자리인가. 상징성을 따지자면 청와대 입성을 과녘한 디딤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는가. 더더욱 2012년 총선과 대선의 풍향을 저울질할 수 있는 전초전을 앞둔 마당이다.

안철수 효과의 극적인 클라이맥스는 재야 운동권 변호사인 박원순에게 자신의 확고한 ‘승산지분’(勝算持分)을 조건 없이 넘겨준 후보단일화를 발표하는 순간이었다. 박원순은 타천자천으로 거명된 시장후보군상 중 지지율 하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안철수의 약발은 직방(直放)이었다. 박원순 지지도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해찬 한명숙 문재인 유시민 등 노무현의 정치 상속자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마침내 또 한사람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인 한명숙이 박원순 밀기로 돌아섰다. 사실상 야권의 통합후보가 탄생한 셈이다. 안철수 효과인 너울파도를 차력(借力)한 결과다.

수라상 못지않은 ‘진지상’을 미련 없이 던져버린 안철수는 통 굵은 리더십의 주인공으로 치켜세워졌다.

졸지에 대권후보‘감’으로 급부상한다. 어쨌든 지금 안철수는 꿈길마다 ‘용꿈’꾸는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해 불러일으킨 대통령의 ‘추임새’

안철수의 용비(龍飛)현상은 난공불락으로 치부돼 온 박근혜 대세론을 위협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철수는 박근혜 지지율을 유연하게 넘나들고 있다.

박근혜 vs 안철수 가상대결 조사에서도 지역과 세대·계층별로 엎치락뒤치락 접전 양상이다.

안철수의 일거수일투족은 2011년 한가위 민심 한복판에서 잠시도 뒤처지지 않고 있는 흐름이다.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박근혜 대세론은 뿌리가 단단하고 안철수 대망론은 바람에 휘날리고 가지가 무성하다는 점이다. 바람과 가지의 숭부인 셈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결정적인 안철수 흥행효과를 거들고 나선 사람이 있다.

이명박(MB) 대통령이다. MB는 KBS 특별기획 대담에서 안철수 현상을 언급하면서 “아, 우리 정치권에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정치권에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앞서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확히 짚은 현실진단이다.

그러나 ‘올 것이 왔다’는 주석을 단 것은 길목을 벗어난 실언이다. 안철수를 부추긴 MB의 추임새로 오해받기 안성맞춤이다. 미묘한 기류가 넘실거렸다. 박근혜 ‘견재구’란 말까지 불거졌다. 대통령은 현실정치의 국외자(局外者)인 것처럼 말해버린 것이다.

남의 얘기하듯 너무 쉽게 토로한 것이 논란의 초첨이다. MB는 ‘여의도 정치’를 자신과는 무관한 타인의 몫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졌다.

대통령은 정치의 중심에 좌정한 대본(大本)이 아닌가. 변화를 통한 정치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데 선도적 영향력을 행사하여야 할 처지다.

‘올 것’을 일찌감치 눈치 챘다면 서둘러 생산적 대책까지도 폭넓게 강구했어야 옳았다.

안철수의 현실 비판은 맹랑하고도 야멸차다. 한나라당을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세력으로 몰아붙였다.

민주당도 강도는 약했지만 한 묶음으로 돌려 세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오늘의 정치를 향해 ‘응징의 대상’이라고 거침없이 돌을 던졌다.

행보와 수사(修辭)는 다채롭다. 끊임없는 변화 추구만이 시대 정신의 알맹이라고 내세운다. 그는 변화 완성의 주체는 청년의 몫이라고 믿는다. 청춘콘서트라는 이색적인 이벤트를 통해 익히 ‘우상화’ 된 자신의 존재감을 그들 ‘청춘’의 생태계 깊숙이 각인시키려 하고 있다.

청춘콘서트는 안철수의 ‘제3의 정치무대’일 수도 있다. 안철수는 지난 9일 대구 경북대에서 열린 순회 마지막 청춘콘서트에서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나는 그런 생각 해 본적이 없다”고 출마 가능성을 차단했다.

그러나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의 이름은 이미 대선후보 대열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분명 그런 쪽으로 ‘군불’을 때는 사람들이 있다. 판이 커지면 불청객이 몰려드는 법이다. ‘군불에 밥 짓기’를 꾀하는 모리꾼들이 주변을 맴돌고 있는 낌새도 엿보인다.

본인의 말처럼 안철수에게 훈수 역할을 하는 멘토는 300명 선이다.

이제 어떤 길을 찾아 나설 것인가는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에 달렸다.

질문공세 앞에 설 안철수의 선택

교수 안철수는 다방면에서 아주 특별한 경험을 쌓은 이 시대의 준재(俊才)임에 틀림없다. 유복한 가정, 명문대 출신, 의학과 공학, 경영학을 두루 섭렵했다. 3차례의 미국 유학과 컴퓨터바이러스 백신 연구 전문가. 게다가 벤처기업 CEO로서 장사속도 꽤 밝은 사람이다.

화려한 영역에서 자신의 실험공간을 성공적으로 넓혀 온 그는 실패의 쓴 잔을 들이킨 적이 없다. 지금까지는 외견상 ‘순풍에 돛 단 배’다.

세속적인 감상 포인트에 집착한다면 그는 영락없는 행운아다. 햇살 가득한 양지쪽에서 생육했다. 그늘진 응달을 체험할 겨를이 없었다. 세상 물정의 구석구석을 살필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점이 그의 취약점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온실화’(溫室花)라고 꼬집는다. 진흙탕 정치판에 뛰어들기에 앞서 보다 치열한 야성(野性)을 자신의 안쪽으로 진하게 빨아들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아마추어의 유약함이 묻어있다는 지적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안철수론’의 한 자락이다.

우호적인 사람들도 인간 안철수의 내면을 지배하는 곱살스러운 성정을 들어 정치 입문을 막아선다.

동료교수들의 공개적인 우정표시다.

전 자유선진당 대표 이회창의 ‘대쪽’같은 충고 일석은 인상적이다. “간이 배 밖에 나온 모양세다. 자신의 귀중한 재능을 전공분야에 잘 살려 국가에 기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좀 유명해졌다고 모두 정치하겠다고 나서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안철수는 그의 정체성을 검색하고픈 사람 앞에 제대로 노출된바가 거의 없다.

그가 산발적으로 떨어뜨린 언어의 조각들을 엮어보면 그의 내심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다. 중도 성향이면서도 왼쪽으로 비스듬한 좌경(左傾) 냄새도 난다. 시민운동가 박원순에게 미련 없이 배턴을 넘겨준데 서도 안철수의 사유세계 일단을 읽을 수 있을법 하다. 그를 ‘강남좌표’로 찍는 이유다.

아무튼 그의 한국 현대사관은 격렬한 비판의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1962년생인 그는 지구촌에서 가장 낙후한 최빈국이 역경을 뚫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압축 성장을 완성한 이 땅의 현대사를 평가함에 있어 굉장히 인색한 것으로 알려진다.

나라 똑바로 세우기에 진력한 오늘의 아날로그 세대를 당혹케 하는 대목이다. 그는 정치를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문제를 포함하여 안철수는 그가 원하지 않거나 기피하고픈 까다로운 질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안철수 신드롬의 끝은 어딘가?

단막극으로 끝날 것인가? 대하연속드라마로 이어질 것인가? 그의 선택을 주시하는 사람들의 눈매는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다.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의 화살이 과녘에 제대로 꽂힐 것인지에 따라 안철수 신드롬의 오늘과 내일도 크게 좌우될 것은 확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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