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호]

[원로 정치논객칼럼]

박근혜와 한명숙 한판 승부

여인천하(女人天下) 개막

기백과 굴기의 용의 해 조화의 싹쓸이 바람

글/ 鄭在虎 (정재호 헌정회 대변인, 9·10대의원, 전 경향신문 정치부장, 논설위원)

자고로 남정네는 무쇠를 만들고 아낙네는 비단을 짜지 않았는가.

인류 진화의 중심에 점박이처럼 박힌 유전적 생체 율동(律動)의 내림바탕이다. 남성은 크고 우악스러운 반면 여성은 아담하고 섬세한 성질로 유래했다.

2012년은 용의 해다. 용은 우람한 기백과 굴기하는 비상의 상상 동물이다. 영락없이 ‘남성적’ 조건을 완벽화한 용의 해에 이게 무슨 조화인가.

남성 실망 증후군이 여성 대망론으로

남성들은 거푸 주저앉고 여성 일변도 전승시대가 도래했으니 말이다. 남성 실망증후군이 여성 대망론으로 전이한 대중심리변화의 바람인가?

집권 한나라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60)이, 제1야당 민주통합당은 한명숙 전총리(68)가 지휘봉을 잡았다. 여기에 통합진보신당 역시 여성트리오 이정희·심상정 공동대표 체제로 포진했다.

정치권을 놓고 보면 딱히 ‘여인천하’ 개막이다. 비단은 물론이요 무쇠 만들기도 여성의 몫으로 옮겨 앉은 권력이동현상이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겨냥한 정치권에 불어 닥친 바람은 하나같이 ‘쇄신’ 바람이다. 그 풍력(風力)이 예사롭지 않다. 누구도 감히 거역할 수 없는 도도한 바람이다. 바람에는 풍력에 따라 12가 등급이 있다.

예컨대 ‘실바람’은 초속 0.2~1.5m로서 연기가 모락모락 얌전히 피어오로는 모양새다. 기상학에서는 1등급으로 호칭한다. 국어사전에 등장하는 바람의 맵시는 대충 38개다. 바람 중에서도 최대 풍력강도는 12등급으로 분리되는 초속 32.7m를 넘는 “싹쓸이바람‘이다. 2012-02-06_173027.jpg

공천파동으로 대변되는 각 정당의 선거 계절풍도 바람의 성질머리로 따지자면 ‘싹쓸바람’으로 비견될 수 있을 법하다.

‘박근혜 쇄신’에 보수분열 진화 난제

우선 집권당의 형편을 한번 보자. 보기 나름이지만 이미 기둥뿌리가 반쯤 뽑힐 지경이요 천정에선 물이 줄줄 새고 있는 형국이다. 자력갱생에 몸부림치는 한나라당의 숨 가쁜 현주소다.

거대한 몸집이 기울기 시작하니 몸무게 만큼의 하중속도 탓에 안팎 신음의 음파(音波)도 만만찮을 수밖에. 2004년 노무현 탄핵역풍으로 난파선이 된 한나라호 구조 선장으로 나섰던 박근혜는 각급 재·보선에서 집권당을 40대0 스코어로 잡은 괴력을 발휘했다. 일약 선거의 여왕으로 부상했다.

다시 한 번 구원투수로 등판한 박근혜는 안정권속의 차기 대권유망주다. 찬밥 더운밥 가릴 것 없는 처지가 된 오늘의 한나라당을 껴안고 박근혜는 기회와 위기의 싹이 착 달라붙은 양날의 칼을 불끈 쥐고 있다.

원칙과 신뢰를 으뜸의 가치로 내세워 온 그는 ‘재창당을 뛰어넘는 수준의 혁신. 뼛속까지 체질의 쇄신’을 다짐했다.

박근혜는 자신의 언어를 쉽게 흩뿌리지 않는다. 확신에 찬 말만 한다. 단어 선택이나 어휘구사에서도 스스로를 제어하는데 익숙해 있다. 그가 쇄신을 언급하면서 ‘뼛속까지’라는 부사를 망설임 없이 동원한 것이 흥미롭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정치적 투기(投機)에 나선 단호함과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환골탈태의 결의다. 당의 이름을 바꾸기로 작심한 것도 투지의 일단이다. 박근혜를 견제하는 당내세력과 공천탈락 예상자들의 집단행동이 역풍의 불씨를 키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공천 끝장 뒤에는 늘 있어 왔던 정당주변의 낯익은 풍속도다. 반발의 깊이와 폭이 매우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되는 것은 한나라당의 쇄신을 강도 높게 압박하는 유권자의 시선이 뜨겁기 때문이다.

정작 한나라당을 괴롭히는 변수는 보수진영의 분열현상이다. 반 MB정서의 팽배에 따른 정권과의 차별화시도가 섣불리 한계 상황에 이를 경우.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척점을 더욱 첨예화 시킬 수 있다는 시각도 연소성이 민감한 화인(火因)의 하나다. 두 사람 사이의 감정 수위를 적절히 유지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대선 전략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요긴한 과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비대위가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도전이다. 정체성이 실종된 보수의 가치를 재발현(再發現)하기 위한 진정성의 재발굴 작업은 가장 핵심적인 한나라당 재건의 기본 조건이다.

한나라당의 추락위기 요인 가운데에는 MB정권 이후 끊임없이 이어진 친이·친박간의 집요한 힘겨루기 그 중심에 위치한다.

MB의 정치적 부실 탓이 크지만 상대적인 박근혜의 몫도 적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자신의 ‘탓’과 ‘몫’을 놓고 치열한 자기성찰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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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대표, ‘노무현 부활’ 이해득실 얽혀

민주통합당은 한명숙을 대표로하는 지도부 구성을 마무리함으로써 전열정비에서 한 발 앞서나갔다.

한명숙 대표의 취임 일성은 야무지고 단단했다.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다시 쓰겠다’고 했다. 그는 일찍이 재야운동권에 투신했다. 반체제 활동 경력은 야전 투사적 빛깔로 채색돼있다.

박근혜의 단아한 미소에 필적할만한 그의 온화한 표정은 강점이다. 겉 분위기와는 달리 가슴은 결코 헤프지 않고 차돌만큼이나 냉철한 것으로 묘사된다.

민주통합당은 우여곡절 끝에 ‘통합’의 깃발을 게양하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본령(本領)을 달리하는 세력의 집합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는데 숱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짜집기 정당’의 속성이 안고 있는 숙제이다.

한명숙이 압도적 세몰이로 대표자리에 앉자 언론은 일제히 ‘노무현의 부활’에 초점을 맞췄다.

당내 분위기는 언론의 시각에 당혹감을 드러냈다. 일각에선 노골적인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노무현의 ‘실정잔영’(失政殘影)이 신당 출범에 덧칠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심리적 반사현상이다.

재도권과 시민·노동단체를 망라한 재야세력의 혼합이 나름대로의 ‘화음’(和音)을 만들어낸 것과 모바일선거라는 혁명적 발상이 도입된 것은 의미 있는 정치개혁의 단면으로 평가된다. 반면에 모바일 선거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잠재우는 과제도 만만찮다.

당초부터 지도부 경선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후예들이 벌인 ‘색깔경쟁’이었다. 내 몫 챙기기 싸움판이었다.

한명숙과 문성근이 1,2위를 차지함으로써 통합민주당의 색상은 싫든 좋든 노무현 칼라도 신장개업한 셈이다. 민주당의 버팀목인 호남 텃밭이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양대 선거를 앞두고 몇 차례 심상찮은 내전(內戰)징후가 잠복해 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총선공천 경합에서 양대 세력간의 갈등이 불거질 개연성은 충분하다.

보다 큰 고비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태풍의 눈으로 자리잡은 ‘안철수 변수’를 요리하는 길목에서 계파간의 이해득실이 얽혀 엄청난 돌풍이 예견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 진입하려면 종북(從北)·무책임한 포퓰리즘과의 단절을 행동화해야 한다는 보편적 민의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있다.

올해는 한반도 주변 강국의 권력 대이동이 맞물린 가운데 북한 변수까지 함축된 판국이다.

민주통합당이 한·미FTA 폐기를 공언하고 나선 것은 한미간의 전략적 동맹관계를 흔들지도 모를 위험한 도박이다.

노무현 정권의 ‘명품’(名品)으로 평가돼는 한미FTA를 노무현의 정치상속자들이 찢어버리겠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용맹’이 아닌가 하는 성토가 만만찮은 것도 사실이다. 민주당은 당내 화합이란 또하나의 큰 걸림돌과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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