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호]

짜고 치는 인사청문회

글/ 宋孝彬 편집위원(송효빈 한국기자협회고문)

청문회의 목적은 ?

이한동 총리 임명동의안의 표결 결과는 이만섭 국회의장의 선출에 이어, 다시 한번 반 한나라당이 뭉친 ‘범여권의 DJP 연대’의 위력을 과시했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는 말할 것도 없고 민정당과 신한국당까지 포함한 범여권 연합세력의 구축에 일단 성공함으로써 국회의 판세는 1백40대 1백33의 ‘여대야소’의 구도로 굳어진 셈이다.

집권당이 4·13 총선에서 만들어준 여소야대를 인위적으로 여대야소로 뒤바꾼 것도 문제거니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제16대 국회에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도입된 인사청문회를 대통령이 지명한 자를 인준해주는 요식 절차로 떨어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죄가 있느냐 없느냐를 가리는 ‘조사청문회’와는 달리,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지명한 인물이 그 자리에 합당한 사람을 천거했는가를 따져 보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당론과는 무관하게 각자 소신껏 투표하는 것이 원칙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국무총리를 인준하기 위한 이번 청문회의 근본 목적은 말하자면, 국회가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에 대한 인사권의 전횡을 견제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 여야의 힘 겨루기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대의기구인 국회가 인준대상자의 신상과 정치 경륜을 꼼꼼히 따져서 언론을 통해 소상히 알려주어 국민으로 하여금 대통령이 적합한 인물을 천거했는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들은 이 총리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그의 방어작전에 여념이 없었다. 이종우 의원은 “땅 투기를 하려면 강남에다 하지, 왜 접적지역인 포천에다 했느냐”고 유도질문을 했는가 하면, 더욱 가관인 것은 김학원 의원은 “요새 무슨 책을 읽고 있는가” “첫사랑 얘기를 들려 달라”고 말해 실소를 자아냈다.

한나라당의 안상수 의원과 원희룡 의원 등이 이 총리의 말바꾸기와 땅 투기를 위한 위장전입과 ‘검은 10월단 사건’ 등을 캐물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비록 이한동 총리에 대한 인준동의안은 야당에서 3명의 이탈표가 있었지만 인사청문회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여야가 당론에 따라서 일사불란하게 투표를 마쳤다. 더욱이 민주당의 개혁세대를 자처하는 소위 386 의원들도 한사람 빠짐없이 가표를 던진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

이 총리가 5공때 공안검사로서 활동했고 또 ‘검은 10월단 사건’의 담당 검사로서 피의자가 안기부에서 가혹행위를 받았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386세대의 민주당 의원중 단 한사람도 투표를 던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입만 열면 내세웠던 소신 투표를 하지 않고 당명 즉 당 지도부의 지시에 순종했음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났다

이 총리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정치인이면 흔히 범하기 쉬운 말바꾸기와 토지 매입을 위한 부인의 위장전입문제 그리고 권위주의 시대인 5, 6공을 거치면서 원내총무와 여당의 당 사무총장, 내무장관을 두루 거치면서 때묻었던 그가, 과연 개혁을 내세우는 김대중 정권의 내각을 통괄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치명적인 결점인 변절과 말바꾸기에도 화살이 꽂혔다. 한나라당에서 자민련에 입당한 이 총리는 총선과정에서 민주당 정부와는 결단코 공조를 하지 않겠다고 확언했으며 선거가 끝난 뒤에도 민주당과의 매별을 되풀이 주장했다.

그런데 이 총리는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총리서리로 지명되고 난 순간부터 태도가 1백80도 표변했다. 김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했는가 하면 개혁완수를 위해 신명을 바쳐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언감청이언정 고소원이지, 누군들 감투를 싫어할 사람 있겠느냐 마는, 그의 말바꾸기에 대한 해명이 너무 솔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구차스럽고 궤변적이었다.

“총선거때는 민주당과 자민련과의 공조는 없다고 호언했는데 그땐 자민련이 참패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죠?”라는 김학원 의원의 유도질문에 대해 이 총리의 답변은 솔직해서 좋았다.

“예상치 못했다. 오늘과 같은 청문회가 있을 줄 알았으면 말을 더 조심했을 것을 하고 후회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의 바로 이 한마디 답변이 인사청문회가 시청률이 뚝 떨어질 정도로 시시껍절하다고 해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응변으로 보여준 셈이다.

조사기간 늘리고 자료제출 의무화

헌정사상 처음 도입된 인사청문회가 민주정치형태로서 착근하려면 다음 세가지점을 유념해서 보완해야 할 것이다.

첫째 이번 청문회에서 보여준 것처럼 여권은 감싸주고 야당은 헐뜯는 창과 방패의 구도로 운영돼서는 곤란하다.

유세장이 선거직 공무원의 공약 발표장소인 것처럼, 인사청문회가 임명직 고위공직자의 임무 수행에 관한 몸가짐과 직무수행에 따른 대국민 공약을 받아내는 자리가 돼야 한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 중심제의 나라에서만 있지 내각책임제의 정부에서는 없다. 그것만 보더라도 인사청문회의 목적이 대통령의 인사권에 관한 국회의 견제기능에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둘째 조사기간이 10일로서는 너무 짧다. 적어도 15일은 돼야 한다. 국회의원 각자가 대통령이 시명한 고위공직자의 자질을 검색할 수 있도록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행정부의 각부처는 국회가 요구한 자료제출의 의무규정을 둬야할 뿐만 아니라 최소한 추천자의 범법사실과 재산 형성에 관련된 납세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바르고 충실한 조사를 위해서다.

셋째 인사청문회는 철저히 공개원칙으로 운용돼야 한다. 회의의 공개는 물론이고 본회의에서의 찬반 투표에 대한 공개도 최종 단계에서는 실현돼야 한다. 아무리 인사청문회가 인기가 없다하더라도 적어도 공영방송만은 생중계를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인사청문회가 제구실을 다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한발 한발 전진해 나가는 것 이외에 다른 왕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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