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호]

개각설도 청문회인가

글/ 閔丙文(민병문 내외경제신문주필)

연중 지속되는 개각설

개각설은 연중 끝이 없다. 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자리는 적으니 무슨 핑계든 대서 흔들기 때문이다. 물론 개중에는 업무 처리나 사람 됨됨이에서 장관감이 못되는 인물도 없지 않다. 그렇더라도 지금처럼 끊임없이 개각설이 나와서는 어디 해당 장관이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개각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6월말 이한동 국무총리가 우리 헌정 사상 첫 청문회 대상이 돼 곤욕을 치렀다. 말바꾸기는 정치인의 소신 바꾸기로, 위장 전입에 의한 토지 투기 혐의는 처음에 몰랐다가 나중 위법 시인으로, 최근 2년간 소득세 납부 실적 없음은 소득이 없었다 등으로 넘어갔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은 능숙한 솜씨라고 칭찬까지 했다. 아무튼 국회가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준을 했으니 이제 더 말해 무엇하랴.

문득 청문회가 고도로 발달한 미국의 예를 찾아보고 싶었다. 2차대전후 클린턴 행정부 1기까지 청문회를 거쳐야 할 미국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 관리는 250여명-이중 상원 표결을 통해 인준이 거부된 사람은 7명에 불과했다. 그럼 우리 국회가 흠집난 총리를 인준한 것도 별게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실은 그게 아니었다. 상원 표결까지 오기 전에 상임위 단계에서 미리 거르거나 대통령이 임명을 자진 철회하기도 하는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87년 로버트 게이츠의 CIA국장 임명을 중도 철회했다. 상원 정보위원회의 인준 과정이 순탄치 않자 알아서 철회한 것이다. 철회 이유는 ‘본인 고사’였지만 실제 본인은 열렬히 그 자리를 원해 의원들에게 로비를 벌이려던 참이었다. 93년초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 이틀만에 기자회견을 연 것은 이례적이나 조 베어드의 법무장관 임명을 철회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베어드가 불법 이민자를 보모로 채용한데다 그에 따른 사회복지세를 탈루한 혐의가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된 까닭이다.

오락가락하는 청문회제도

불법 이민자 채용은 미국내에서 관례화된 것이다. 불법 행위로 말하기에는 경미한 사항이었으나 ‘법무장관은 모든 법을 준수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논리로 두손은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 임명 전 단계에서 상원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많다. 대통령이 미리 운을 떼어 상원의 눈치를 떠보는 까닭이다. 미국 청문회가 이처럼 위력을 보이다보니 다른 현안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는 비난도 나왔다. 장점보다 결점을 부각시킨다는 역기능을 걱정하는 소리가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 청문회 제도는 시행착오를 막고 최선의 인물을 선택하는 방안으로 오늘날까지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

7월 6일, 7일 이틀간 우리는 또 대법원 판사 후보 청문회를 열었다. 여·야가 청문회 특위 위원장 감투를 놓고 격돌을 벌이다 증인 참고인도 없이 청문회를 개최했다. 국무총리 때 위원장을 여당이 맡았으니 이번에는 야당 차례라고 주장하는 한나라당이나 그게 될 법이나 하냐고 끝내 거부하는 민주당이나 오십보 백보다. 몸체는 저리 가고 다리를 붙들고 설쳐대는 모습이었다.

시중 비판이 심해지자 본인이 원하면 참석시킨다는 편법이 또 등장했다. 인사 청문회법에 규정된 5일전 본인에 출석 요구를 송달해야 한다는 조항을 도저히 충족시킬 수가 없어 나온 편법이다. 도대체 청문회는 왜 하는가. 흠집있는 고위직 후보를 미리 골라 행정 로스를 막자는 취지 아닌가. 야당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수사 검사시절 불법 사실이 있었는지, 재벌의 부당한 상속을 도와준 사실이 있었는지 알아보자는데 위원장 감투가 이런 기회를 유명무실하게 만든 것이다.

지난 청문회가 잘 운영되었다면 미국처럼 그 대상에 장관급들도 포함시키자는 주장이 만만치 않았다. YS정권 때는 1주일 장관, 몇 달 장관이 수두룩했다. 한국경제를 총괄하는 부총리겸 재경장관이 7명씩 선을 보인 게 바로 이런 검증 절차없이 임명했다가 뒤늦게 하자가 드러나면 갈아치우는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관이 소신있게 일할 수 있어야

그러나 문민정부 시절 한사람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오인환 전공보부장관이 그 당사자다. 그는 지금 어디서 무얼하나.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을 거쳐 YS정부 출범과 함께 입각한 오 장관은 정권 종료시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의 5년 장관 수명이 문민정부 단명장관의 평균 수명을 그나마 늘려놓았으니 그로서는 꽤 보람을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정권 교체와 더불어 세인의 눈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 흔한 어느 대학 겸직 교수, 연구원에 소속됐다는 언론의 인물 동정란에도 일체 비치지 않는다. 그는 조용히 사라졌으나 각료로서 성공한 사람, 공인의 처세로도 성공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렇게 긴 세월의 장관을 이 정부는 갖을 법 하지 않다. 시도 때도 없이 나도는 개각설 때문이다. 아니, 역설적으로 개각설을 통해 여러 인물을 흘려 적격 여부를 검증하는게 아니냐는 빈축도 가능하다. 여기에는 물론 언론의 잘못이 크다. 별로 신빙할 만한 위치의 사람이 말하지 않았어도 개각에 관한 것이면 무조건 받아쓴다. 거기다 자신의 짐작까지 곁들여 이른바 초른 친다.

대상은 당과 가까운 비경제팀은 아예 거론 대상에서 제외다. 재경장관, 경제수석, 금융감독위원장 등이 단골 메뉴다. 거기다 무역적자가 심해지면 산업자원부가 또 속죄양으로 오른다. 직제 개편으로 곧 부총리로 격상될 재경장관은 특히 관심이 크다. 여기에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합쳐진 태생적 한계도 작용한다. 기획원과 재무부 출신이 각각 그 쪽에서 자란 사람이 장관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경제기획원 출신들은 이기호 경제수석이나 진념 기획예산처장관,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 가운데 한사람이 될 것이라고 희망반 가능성 반으로 얘기를 흘린다.

반면 재무부 출신들은 현 이헌재 재경장관의 유임을 희망하며 그렇지 않으면 금융학 전공인 박영철 전경제수석까지 무난하다고 본다. 이 장관의 유임은 구조조정의 틀을 짜고 금융감독위원장으로 이를 진두지휘해온 사람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박영철 외환은행 이사회의장은 실무와 국제통이라는 점에서 점수를 준다.

그러나 지금 급한 것은 누가 장관이 되든 소신있게 일 좀 하게 하는 것이다. 청문회를 통하든, 개각설을 통하든 일단 임명된 현직 장관이 산적한 금융구조조정, 무역수지 개선 등에 최선을 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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