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호]

삼천갑자 동방삭

(三千甲子 東方朔)

글/ 盧癸源 편집위원(노계원 전중앙일보논설위원)

생명에 대한 강한 애착

사람들은 오래 살기를 원한다. 간혹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자기 삶의 고통에 견디다 못해서 내린 스스로의 결단일 뿐이다. 젊은 베르테르는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안나 카레니나는 파탄에 이른 가정 때문에 자살한 것이지 모든 인생을 부정해서는 아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 생명에 대해 어느 무엇보다도 강한 애착을 갖는다.

‘황금가지’의 기록에 보면 중국 사람들은 장수를 위해 생전에 수의(壽衣)를 장만해 둔다. 이때 수의는 나이 어린 소녀를 시켜 만들게 한다. 이유는 이들 소녀가 오래 살 가능성이 많고 그 가능성이 수의에 전이될 것이며, 그 결과 수의가 사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물과 사물에서 발산되리라고 생각하는 주술적 효과를 노린 것이다.

수의는 특히 윤달이 든 해에 만든다. 한달이라도 목숨을 더 연장시키려는 비원의 집착이 아닐 수 없다. 이토록 수명에 대한 주술적 비방을 강구하는가 하면 도가(道家)적 달관의 숙명론도 있다.

지봉유설 수천편(芝峰類說 壽天篇)을 보면 “우박(虞搏)이 말하기를, 사람이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은 모두 천명이 있는 것이다. 소위 천명이란 것은 천지와 부모의 원기이니, 아비를 하늘이라 하고 어미를 땅이라 한다. 아비는 정(精)이고 어미는 혈(血)이니 그 왕성하고 쇠약한 것이 서로 같지 않은 까닭에 사람의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도 역시 다름이 있다.

아이를 낳는 처음에 모두 왕성한 양쪽 기운을 받은 자는 중상(中上)의 수를 얻을 수가 있고, 한쪽만 편벽하게 왕성한 기를 받은 자는 중하(中下)의 수를 얻을 것이며, 양쪽 기운이 모두 쇠약한 것을 받은 자는 잘 보양하면 겨우 하수(下壽)를 얻을 수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일찍 죽는 자가 많다”고 했다. 사람의 수명은 부모의 건강상태에 따라 애당초 타고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인간수명 1천살 보장?

이렇듯 중국의 수명관이 숙명론적이고 이를 연장하려는 방편 또한 주술적인 데 비해 우리는 좀더 현실적이고 과학적이다.

조선조 인조 때의 문신 이덕형(李德馨)은 난리를 피해 깊은 산골에서 살 적에 마을에 90세 이상의 노인이 많은 것을 보고 ‘깊은 산골에서 담담한 음식을 먹는 사람이 높은 수를 누리는 자가 많다’고 죽창한화(竹窓閑話)에서 갈파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필자미상의 해동잡록(海東雜錄)을 보면 “수를 연장하는 방법은 언어를 삼가고, 음식을 절제하며, 탐욕을 줄이고, 잠을 가벼이 하며, 희노(喜怒)를 적중히 하는 것이다.

대개 언어에 절도가 없으면 허물과 걱정이 생기고, 음식에 절제를 잃으면 몸이 허약해진다. 탐욕하면 위란(危亂)이 일어나고, 잠이 지나치면 게으름이 생기고, 희노가 적중함을 잃으면 성명(性命)을 보전하지 못한다”고 했다. 검박한 식생활과 생활의 절도를 건강의 비결로 하는 현대의 섭생방술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장수를 위해서라면 주술이나 절제와 검박 따위도 모두 필요없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지놈’인지 ‘게놈’인지 명칭도 헷갈리는 인간의 유전정보를 과학적으로 규명했고 이를 완벽하게 재조합하는 기술도 터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난치병도 정복하고 망가진 장기도 마음대로 새것으로 갈아치우며 아예 임신 때부터 질병이 영구히 면제된 태아를 주문 출산할 것이므로 인간은 최소한 평균 1천살의 수명은 보장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전 인류가 3천갑자 동방삭이 팔자를 향수할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인구가 무한정 늘어나고 소비도 비례해서 무한정 늘어날 때 그 많은 인류가 무엇을 숨쉬고 마시고 먹으면서 살아갈까에 생각이 미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바로 이 시간에도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과 식량부족 현상으로 세계 도처에서 많은 인구가 고통받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미구에 과학기술이 다 해결해줄 것이라고 무작정 기대하란 말인가.

하루를 살아도 가치있는 삶을

그 문제는 비껴두고 장수의 의미에 대한 중국의 우화를 하나 들어보자.

한 신선이 산속에서 아름드리 나무 한 그루와 마주쳤다. 그 옆에는 벌목꾼이 도끼를 나무에 기대놓고 앉아있었다.

신선이 벌목꾼에게 “이 나무는 왜 자르지 않소?”하고 묻자 벌목꾼은 “이 나무는 질이 나빠서 집도 못 짓고 배도 못 만들어 쓸모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신선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 저 나무는 질이 나빠서 장수하는구나. 세상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정력을 소비하여 수명이 길지 못하지 않는가. 이 나무처럼 무지몽매하여 아무 쓸모가 없으면 오래 살 수 있는 것을.’ 이 때 나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보시오, 신선어른. 난 장수를 원치 않소. 나의 벗들은 베어져 사람의 보금자리가 돼주고, 배가 되어 사람들을 강을 건너게 해주고, 바퀴가 되어 천리만리를 달리게 한다오. 내가 1만년을 산다해도 어차피 한번은 죽게 마련이요. 나는 아무 쓸모없이 산 것이 한심스럽고 부끄럽기 한량없소.”

늙은 나무는 벌목꾼에게 “날 가엾게 여겨 땔나무로라도 써주시오. 사람들이 나를 태울 때 나게 될 휘황한 빛과 뜨거운 열 속에서 나는 웃으며 죽을 수 있을 거요.” 벌목꾼이 도끼를 번쩍 들었다. 신선은 낯을 붉히며 자리를 피했다. 불로장생을 누리는 자신은 빛과 열도 못내는 폐물이라고 자각하면서.

‘사람이 1백년을 살더라도 사특하고 거짓되며 지혜가 없으면 하루를 살아도 한마음으로 바른 지혜를 배움만 못하다.’ 법구경의 한 구절이다. 사람은 세상에서 쓸모가 없어질 때 사라지는 것이 은혜를 입은 세상에 대한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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