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호]

[권력실세와 오찬 합석]

호가호위(狐假虎威)

연줄 과시만해도 이권 굴러오는 세태


글/張洪烈 (장홍렬 한국기업평가원이사회회장)

지난 해 12월, 참여정부 시절의 정부요직에 앉았던 사람들이 국민의 혈세로 마련된 저택 공관에서 비싼 나랏돈이 지급된 밥 먹는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도한 사진 한 장을 보면서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일반서민들이 생각하기에는 언감생심(焉敢生心 : 감히 그런 마음을 먹을 수도 없음)지체 높은 벼슬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다. 높은 벼슬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 만해도 속된말로 폼 잡는다고 할 수 있다.

참여정부시절의 호가호위

권력의 속성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자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엿가래처럼 꼬이고 뭉친 그들의 스캔들에 대해서 법이 판단할 것이므로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지난날에도 권력자와 함께 찍은 사진이나 그림, 그리고 휘호를 받아들고 행세한 사람들의 일화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사진을 보면서 나에겐 문득 떠오른 것이 넉자로 된 옛날 고사성어(故事成語)인 호가호위(狐假虎威)다. 원뜻은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다는 뜻이다. 현실사회에서는 남의 권세를 등에 얹고 위세를 부린다는 비유말로 쓰이고 있다.

사실 나는 몇 년 전에 경제풍월 공직자 골프칼럼을 통해 호가호위에 대한 이야기를 쓴 일이 있다. 우리는 권력 행사자가 바뀔 때마다 호가호위라는 사자(四字)성어가 가르치는 깊은 뜻을 다시 한번씩 재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 전국시대(BC 403 ~ BC 221)에 중원 대륙을 누비며 세치 혀로 유세했던 책사(策士)의 변설과 권모술수를 기록한 전국책(戰國策)이 있다.

사마천도 사기(史記)를 집필할 때 이 책에서 많은 자료를 얻었다고 한다. 비교적 짧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호가호위는 전국책 초책(楚策)에 나오는 이야기다. 초(楚)나라 선왕(宣王)이 신하들에게 “북쪽의 여러 나라들이 재상 소해휼(昭奚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것이 사실인가?”하고 물었다. 여러 신하 중에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호랑이 거느린 여우보고 도망

이때 위(魏)나라 출신의 변설가 강을(江乙)이 다음과 같은 비유로 대답했다.

옛날에 여우가 호랑이에게 붙잡혔을 때의 일입니다.

여우는 자신이 하늘로부터 짐승의 우두머리가 되라고 명받았기 때문에 자신을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일 의심이가면 함께 걸어보자면서 호랑이를 뒤에 거느리고 걸어가니 다른 짐승들이 모두 도망쳐 버렸습니다. 이는 앞에 가는 여우를 보고 도망간 것이 아니라 뒤에 따라오는 호랑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는 자기가 무서워 도망친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전하의 군사는 백만, 바로 호랑이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 전하의 군사이지 소해휼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며 왕을 등에 업고 위세를 부리는 신하를 비꼬았다.

수천 년 역사를 살아오면서 뒷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이 짧은 에피소드 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또 무엇을 깨닫고 배워야 할 것인가를 깊이 음미해 보아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공권력을 한번 생각해보면 쉽기 이해가 된다. 공권력은 어느 개인의 권력이 아니다. 일정기간 국민이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 위임한 것이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선장이나 선원이다. 일반국민은 선주 아니면 승객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공권력을 맡은 사람을 우리는 공복(公僕)이라고 하는 것이다.

공복이란 국민의 심부름꾼

공복은 국민의 심부름꾼이다. 심부름꾼이 되례 큰소리치고 주인인 국민을 괴롭힌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공직은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는 자의든 타의든 떠나게 되어있다. 그런 자리를 천년만년 하는 줄 착각하고 있다. 힘 있고 좋은 자리에 오래 앉아있게 되면 부정부패에 빠지는 것이 역사의 진리다.

프랑스 철학자 몽떼뉴(1533 ~ 1592)같은 사람은 이런 말을 남겼다.

“일부 사람들이 자기네만 특별한 권력자라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고 또 서민이 자기네는 짓밟혀도 괜찮다고 아주 무기력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언제나 놀라움을 느낀다.” 그때 그 시대는 백성이 깨어있지 못 할 때였다.

특권의식을 느끼는 것도 이만저만 큰 모순이 아니고 그 모순을 국민이 묵과하는 것 또한 큰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개명천지 모두가 열린 시대이다.

큰 공직에 나가지 말아야할 그릇을 가진 사람들이 배경이나 연줄로 분수없이 높은 자리에 오르는 철면피한 행동으로 결국에는 패가망신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쉽게 보고 있다. 그리고 백성들이 어리석다고 그들을 속여서 권력을 악용하면 뒤끝이 언제나 파멸로 빨리 끝난다는 것을 왜 모르고 있는지?

권력! 그것은 너무나 하찮은 것 아니던가? 옛날부터 어진자는 권력을 모욕했고 어리석은 자만이 존경하였다는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한다.

연줄 과시만 해도 이권 모여든다.

지난정부시절 총리공관의 스캔들도 따지고 보면 권력의 속성을 몰라도 너무 모른 무지(無知)의 결과라고 본다. 예나 지금이나 힘 있고 권력 가진자들의 주위에는 연줄을 이용하여 권력자와 친하고 가깝다는 것을 과시하며 각종 이권을 챙기는 자들이 모여들게 되어있다.

영향력 있는 사람과 자리는 함께하면 직접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기는 현상이 먹혀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또 자화상이다. 정직한 사람들에게는 경찰, 검찰, 법원은 참으로 고마운 기관들이다. 그래서 경찰관, 검사, 판사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들의 직무는 항상 존경하고 감사해야한다. 그런 사람들과 그런 장소에 불려가서 있게 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거나 두려워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불순한 기도가 있다는 증거가 된다. 더욱이 어떤 사건이나 일에 연루되어 비록 구속은 되지 않더라도 기소(起訴)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직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조선시대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1563 ~ 1628)은 백성들이 어리석다고 하여 그들을 속여서는 안 되며 백성들이 천하다고해서 그들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또 실학자 정약용(1762 ~ 1836)도 세상에서 지극히 천하고 하소연 할 곳 없는 자도 백성이지만, 세상에서 무겁기가 높은 산과 같은 자도 백성이다. 백성을 떠받들면 세상에 무서울 것도 못할 것도 없다고 했다. 천한 백성 한사람 한사람이모여 국가나 권력구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힘없고 천한 백성의 신뢰나 지지가 없으면 국가나 권력구조의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권력을 가진 자들은 알아야한다.

그래서 현명한 치자(治者)는 백성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것이다.

우리가 되새겨보고 곱 씹어봐야 할 뼈 있는 가르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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