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호]

[미 CIA도 불가항력]

오바마 리더쉽 휘청

테러공포에 스마트외교 치명타


글/ 趙泓來(조홍래) 편집위원언론인

제2의 9.11테러 공포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알카에다를 소탕하려던 미국의 대 테러작전이 허를 찔렸다. 크리스마스 날 디트로이트 행 미국 여객기를 폭파하려다 실패한 나이지리아인은 예멘의 알카에다 기지에서 테러훈련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고 이에 따라 예멘은 알카에다의 새로운 테러기지로 등장했다. 하와이 휴가에서 황급히 돌아온 오바마 대통령은 긴급 안보회의를 소집하고 예멘 내 알카에다 기지에 대한 보복 공격을 다짐했다.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진행되던 대 테러 작전이 예멘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아프간에서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훈련을 받은 이중 스파이가 CIA 기지에 자살 폭탄공격을 가해 CIA 요원 7명이 죽었다. 8년째 계속되는 대 테러작전에 염증을 느끼던 미국은 일순간에 테러 공포에 휩싸였다. 아프간에 3만 명의 미군을 증파하면서 아프간과 파키스탄 접경에서 알카에다를 추적하던 오바마 대통령은 뒤통수를 맞았다. 가장 방대한 지하조직을 갖춘 예멘의 알카에다를 경시한 과오를 범한 셈이다. 테러음모를 사전에 저지하지 못한 미 정보기관들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제2의 9.11 공포가 되살아났다. 오바마 행정부의 국정 우선순위도 급변했다. 일자리 창출, 의료개혁, 경기회복, 기후변화 등 수많은 과제들이 뒤로 밀리고 테러와의 전쟁이 최우선 국정과제로 등장했다. 공화당은 호재를 만난 듯 오바마를 맹공하고 나섰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은 안보의식이 없는 오바마 리더십의 허구가 드러났다고 비난했다.

정보기관들은 예멘, 이라크, 소말리아 등지에서 알카에다 조직이 암약하고 있음을 파악하고도 이들이 오사마 빈 라덴처럼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을 주리라고는 판단하지 않았다.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오판이었다.

알카에다와 10년 악연

예멘과 알카에다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10월 1일 알카에다는 예멘의 남부항구 아덴에 정박한 미 구축함 콜(Cole)을 폭파하여 해군장병 17명을 죽였다. 이 공격에 가담한 테러리스트들은 거의가 예멘사람들이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5년간 의 조사를 통해 예멘 내 알카에다 조직을 거의 파악했으나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알카에다는 바로 이 허점을 이용해 예멘의 여러 기지에 캠프를 만들고 수백 명의 테러리스트들을 양성했다. 예멘 내 알카에다 활동이 확대되는 동안 미국은 아프간과 파키스탄에만 정신이 빠져 있었다.

콜 사건 이전부터 예멘은 테러와 악연을 맺었다. 1998년 예멘 주재 미 대사관을 폭파한 범인들의 대부분은 예멘을 여행했고 위조된 예멘 여권을 사용했다. 그로부터 2년 후 예멘에 본부를 둔 알카에다는 예멘 해안에서 프랑스 유조선을 공격했다. 예멘의 알카에다는 그밖에도 9.11 범인의 한 명인 예멘 출신 테러 범인을 도와주고 말레시아에서 열린 9.11 기획회의에도 참석했다. 2008년 3월에는 한국인 관광객 4명이 피살되었고 작년 8월에는 예멘 보안 담당 차관에 대한 암살이 시도되었다. 이 음모의 배후에도 알카에다가 있었다.

이때 사용된 폭발물은 디트로이트 상공에서 노스웨스트 여객기를 폭파하려다 실패한 범인 우마르 파루크 압둘무탈라브가 사용한 액체혼합 폭발물과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다. 액체 폭발물은 금속 탐지기에 나타나지 않는다. 두 사건에서 폭발물을 사타구니에 숨긴 수법도 같았다. 전후 상황을 종합해보면 예멘이 알카에다가 꾸미는 대미 테러행위의 본부라는 결론이 나온다.

예멘 정부 허약속에 은신 안성맞춤

예멘은 여러 가지 이유로 알카에다에 안성맞춤의 은신처를 제공해 왔다. 아라비아 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예멘은 사우디아라비아, 소말리아, 이라크, 아프간에서의 테러작전을 지휘할 수 있는 요충지이다. 국경은 허술하고 여러 갈레로 갈라진 부족들은 알카에다에 동정적이어서 출입국이 용이하다. 또한 총기와 화약은 암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이 나라를 구성하는 부족사회의 특성 역시 알카에다 작전에 유리하게 되어 있다. 예멘의 중앙정부는 허약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각 부족들은 자칭 미니 정부 행세를 한다. 남부에서는 시아파의 분리 독립 운동이 벌어지고 북부에서는 중앙정부에 대한 반란이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1인당 소득이 8백 달러 수준인 예멘 국민 대부분이 극빈층이어서 이들을 돈으로 매수하거나 알카에다 선전에 끌어들이기 쉽다. 쿠바 내 관타나모에 수용된 1백 98명 중 90명이 예멘 국적이란 점은 이들이 돈의 유혹에 얼마나 취약한가를 보여준다. 미국은 6명의 예멘인을 석방했으나 이들은 후에 다시 알카에다에 가담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도 나온다.

미국이 예멘에 공을 들이지 않은 건 아니다. 작년 1월 예멘 수도 사나에 있는 미 대사관 부근에서는 경찰과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총격전을 벌였다. 그 이후 미국은 대사관 경비를 강화했다. 미국은 2009년 예멘에 6천 7백만 달러를 원조했다. 금년에는 의회가 동의할 경우 원조액을 1억 5천만 달러로 늘일 계획이다. 이 원조는 예멘 보안군의 훈련 및 장비 구입에 사용된다. 오바마는 예멘에 미군을 파견하지 않고 그곳 알카에다를 소탕하는 방안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으나 워싱턴 포스트는 미 지상군 파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테러지원국 승객 입국심사 강화

미국은 알카에다와 연관이 있거나 테러지원국으로 분류된 14개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승객들에 대한 입국심시를 강화했다. 리스트에 오른 14개국은 예멘, 아프간, 파키스탄, 사우디, 나이지리아, 쿠바, 이란, 수단, 시리아, 알제리, 레바논, 리비아, 이라크, 소말리아 등이다. 이 14개국에서 직접 미국으로 오거나 경유해서 오는 승객들은 알몸 투시기 혹은 촉수방식에 의한 입국심사를 받는다. 미국과 영국은 크리스마스 사건 직후 예멘 주재 대사관을 폐쇄했으며 프랑스, 독일, 일본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1월 2일 라디오 연설에서 예멘 내 알카에다 조직이 크리스마스 사건 범인을 훈련시키고 여객기 폭파를 지령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는 이 조직이 미국을 겨냥한 테러 음모를 꾸민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전조치를 취하지 못한 미 정보기관들을 질책했다. 자칫 비극으로 끝날 뻔했던 이 사건 용의자의 아버지는 나이지리아 주재 미 대사관에 아들이 위험인물이란 정보를 통보했다. 그러나 CIA, FBI, 테러대책본부, 국토안보부 등은 이 정보를 입수하고도 공조수사를 하지 않았다. 용의자는 이 틈을 이용해 예멘에서 암스테르담을 거쳐 디트로이트 행 여객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그는 디트로이트 상공에서 폭탄을 터뜨리려 했으나 발파 뇌관이 작동하지 않는 바람에 테러에 실패했다. 정보 네트워크가 정상적으로 작용했다면 용의자는 비행금지 리스트(no-fly-list)에 올라 암스테르담에서 체포될 수 있었다.

집권 2년차의 벽두에 터진 이 사건은 향후 오바마의 진로에 큰 부담이 될 듯하다. 11월 중간선거 전망도 어두워졌다. 부시는 힘에 의한 일방주의 외교를 추구했다. 오바마는 이를 버리고 대화를 통한 스마트 외교를 천명했다. 그의 노선은 부시 식이 아니면 모든 게 좋다는 이른바 ABB(anything but bush) 독트린으로 불리기도 한다. ABB 정책은 그러나 빛을 보기도 전에 치명타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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