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호]

[산업입국 대들보 ‘공고의 추억’]

마이스터고 육성을

고졸 기능인 우대, 대졸 백수 줄여야


글 /李斗石 편집위원부회장

서울 동대문구 휘경 2동 휘경 공업고등학교. 전문계 특성화 공고인 이 학교 올해 졸업반 양승화 군은 지난해 9월부터 충남 서산에 있는 자동차 내외장재 생산업체 (주)MGS에 취업했다. 회사근처 기숙사에서 자고 오전 7시 30분 출근해 오후 5시까지 일한다. 지난연말 크리스마스 휴일에도 자동차 범퍼 도장작업을 자원했다. 도장일이 재미있고 돈도 벌수 있기 때문이다.

양군처럼 졸업 전 취업해 현장에서 뛰고 있는 휘경 공고생은 115명. 올 졸업반 전체 309명중 3분의 1에 달한다. 전국 대부분의 전문계고가 대학 진학율 높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휘경 공고는 거꾸로 진학보다 취업에 성공한 학교로 자리매김했다. 재작년 까지는 취업률이 10%선 에도 못 미치던 사실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기술인력 우대 “대학 꼭 갈 필요 있나”

휘경 공고 3학년 졸업반이 대학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한 계기는 윤경식 교장의 설득 덕이다. “적성도 생각 않고 간판 만 따려 대학에 꼭 가야 하나. 명문대 아니면 졸업 후 변변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등록금과 과외비로 등골이 휘는 부모들이 불쌍하지 않은가”

윤 교장의 설득이 먹혀들었다. 그는 공고에서 20년간 후학을 가르친 평교사 출신이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공고 졸업생의 미래를 고민해 왔다. 학벌 차별 않는 사회는 이상이다. 현실은 냉혹하다. 국제기능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취업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간신히 일자리를 구해도 고졸과 대졸 사이에 보수와 승진의 차별은 하늘과 땅 사이 같다.

그래서 윤 교장은 백방으로 뛰었다. 기술인으로 성공한 기업 CEO와 대학교수를 초청해 10여 차례 강연회를 열었다. 평생 자식에게 기름밥만 먹이려 하느냐고 항의하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득도 했다. 그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특히 학생들이 진학에 대한 꿈을 접지 않도록 배려했다. 낮에 일하고 밤에 야간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기업체와 대학과 협약도 맺었다. 경제난으로 대졸자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350만 명에 이르는 ‘청년 백수’도 한몫 거들었다. 진학을 고집하던 학부모들이 대졸 백수의 딱한 현실을 받아들여 닫힌 마음의 문을 열었다.

박정희가 세운 산업화 산실 ‘금오 공고’

70년대 산업입국의 대들보였든 ‘공고의 신화’는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아직도 ‘공고의 추억’은 살아있다. 1973년 1월 31일. 청와대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오원철 경제 2수석이 보고를 시작했다. “ 방위산업의 근간은 기계공업입니다. 우리 기계공업은 아직 유치한 단계입니다” 오 수석의 이 보고는 한국기계공업 육성의 불씨가 되었다. 그로부터 20일 뒤 경북 구미시 공단 1동에 금오(金烏) 공업고등학교의 현판이 걸렸다.

“동양 최고의 공고를 만들라”는 박통이 지시에 따라 6만평의 부지가 마련됐다. 금오공고에 가난하지만 머리 좋은 전국의 수재들이 몰려들었다. 금오공고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했으며 학비를 면제 받았다. 옷 신발 등 생필품은 물론 용돈까지도 국가에서 지원했다. 전국 각 도에 금오공고와 맞먹는 공업고등학교가 한 곳 씩 들어섰다. 당시 공고생들의 자긍심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지금의 외고나 특목고 생 보다 우수한 인재들이 ‘조국근대화의 기수’임을 자임했다.

금오공고는 개교 (1973년) 후 1979년까지 6년간 전국기능대회에서 모두 65개의 메달을 땄다. 1977년부터 국제 기능 올림픽에 5회 연속 참가해 11개의 메달을 받았다. 금오 공고 뿐만 아니었다. 당시 전국 공고생들이 국제 기능 올림픽에서 메달을 휩쓸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금오공고 실험은 평가 할만 했다. 금오 공고의 성공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특성화 공업학교가 각 도 단위로 잇따라 들어섰다.

당시 정부당국의 중화학 공업육성책으로 수출이 증가했다. 수출이 성장하니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공고출신의 유능한 기능인을 대거 스카웃 할 수밖에 없었다. 공고생들은 기능인으로 입신출세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대학진학을 바라지 않았다. 그러니 학원이나 개인과의 등 사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사라진 ‘공고 신화’ 흥망과 재도약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후 ‘공고 신화’는 서서히 퇴색한다. 예컨대 박통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공고의 아이돌’로 떠올랐던 ‘금오공고’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교사들의 특별 수당이 없어졌다. 학생들의 실습 수당도 줄었다. 예산 책정권도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넘어갔다.

1981년 전두환 정부는 ‘공업교육 정상화 방안’을 통해 공업교육과 일반계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을 통합했다. 기능인 육성중심이었던 공고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특혜가 줄어들자 가난한 수재들이 공고를 외면했다. 학생들은 대학진학을 위한 인문계로 몰렸다.

기능홀대 하면 첨단기술 발전 못해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고학력화 인문화 첨단산업화 사회가 되자 공고는 인문계 진학을 못한 ‘돌 머리 학생’들이 들어가는 3류 학교로 전락한다. 공고를 나와도 취업대신 대부분 전문대로 진학했다. 왜냐하면 기업이 실력보다는 간판(대졸 졸업장)을 중시해 신입사원을 뽑은 탓이다.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후 1989년 기능 장려 법을 제정했다. 쇠퇴한 공고를 육성해 직업교육을 활성화 하겠다는 취지였다. 기능인에 대한 대우가 나아지자 전국에 정부차원의 지원을 받고 첨단 실습 장비를 갖춘 공고가 들어섰다. 하지만 저 출산현상이 걸림돌이었다. 학부모들이 외아들을 평생 기름밥 먹는 공고에 보내려 하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0년대는 기능인력 양성의 축이 전문대로 옮겨갔다. 실력보다 간판을 중시하는 사회가 공고를 실업계 전문대 진학의 발판으로 만들었다. 최소한 전문대 졸업장이라도 있어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공고 졸업생은 어떤 기업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심지어 국제기능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고졸이라는 이유로 제조업체의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게 엄혹한 현실이다. 학벌이 평생을 좌우하는 사회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공고생보다 전문대나 대졸생의 월급이 더 많다. 승진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70년대 ‘공고의 추억’을 살려 마이스트 고(高) 제도를 도입했다. 마이스터고를 졸업해 4년간 직장에서 일하면 대학4년을 다닌 것 보다 사회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겠다는 취지로 독일식 마이스터교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공고 출신 대우 승진 차별 말아야

2010년부터 전국에 21개의 마이스터고가 들어선다. 이 학교 학생들은 학비 면제와 희망자 전원 기숙사 생활 등 70년대 금오공고 수준의 특혜를 받는다.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기업의 지원도 파격적이다. 예컨대 부산교육청은 올 3월 신학기 마이스터고로 전환하는 부산 자동차고 교장으로 르노 삼성 자동차 이승회 부사장을 발탁했다.

르노 삼성 측은 부산자동차고에 실습자재를 지원하고 교사 현장연수를 시켜줄 방침이라고 한다. 르노 삼성 전문가가 산학 (産學) 겸임 교사가 되는 것이다. 직업현장에서 진짜 필요한 기술과 직능을 가르칠 수 있게 된다. 교장이 된 르노 삼성 CEO는 졸업생 취업의 탄탄한 인맥이 될 터이다.

21개 마이스터고 ‘공고 신화’ 살려야

이뿐 만 아니다. 교과부는 기반 조성금 50억 원을 지원 한다 또 3년간 해마다 6억 원씩의 운영 지원비를 받는다. 역시 마이스터고로 지정된 충북음성 충북 반도체 고는 지역 반도체 회사들로부터 27억 원에 달하는 반도체 공정장비를 기증받았다. 충남 당진 합덕 제철 고는 신입생을 뽑을 때 제철 기업 임원들이 면접관으로 심층면접을 했으며 졸업생 전원 취업을 보장했다. 대졸자가 부러워하는 마이스트 고를 만들어야 한다.

학벌사회가 사교육을 부추긴다. 대학졸업장이 없으면 루저(패배자)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학 진학 율이 84%에 이른다. 하지만 대학을 나와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 할 수 없다. 대졸 백수가 길거리에 넘치고 있다. 사실상 실업자의 절반이 대졸자라고 한다.

기업은 대학에서 당장 써 먹을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고 타박한다.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정부와 지자체는 긴밀한 협력아래 기업에서 꼭 필요한 기술을 마이스터고 학생들에게 전수해야 한다. 그래야 박정희 시대 산업화의 대들보였던 ‘공고의 신화’를 되살릴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전문계고를 육성해야 한다. 고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자는 취지로 설립한 전문계고 학생이 지난 10년간 절반이나 줄었다고 한다. 위기다.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았던 80년대 초반 까지 만 해도 공고나 상고를 졸업하고도 대기업이나 금융권에 취직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과학 기술 발달로 단순 업무를 첨단 기계가 대체하면서 전문계고 진학자가 계속 줄었다. 존폐위기의 전문계고를 살리기 위해 올 3월부터 전국 21곳에 문을 여는 마이스터 고가 제 구실을 하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학비를 면제하고 외국어 교육, 해외연수 취업보장 등 온갖 혜택을 교육개혁 차원에서 추진해야 마땅하다

‘외고 죽이기’ 보다 전문계고 육성해야

이명박 정부는 알아야 한다. 사교육비를 줄이는 지름길은 ‘외고 죽이기’가 아니다. 대학 덜 가는 사회를 만드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산학 협동으로 기능 기술을 익힌 전문계고 졸업생을 우대해야 한다. 대졸자와 보수 격차는 물론 승진과 호봉에서도 차별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 고졸 기능인이 대졸자 못지않게 대접받는 사회가 정착돼야 과외 망국병을 고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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