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호]

[선진인류국가 기초닦기]

반선진 악습백태(百態)

사전 내정해 놓고 들러리 공모 추태

글/ 여영무 뉴스앤피플 대표(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첫해 미국산 쇠고기 협상등 몇가지 시행착오들의 오점을 씻고 지난해 국내외적으로 적잖은 업적을 쌓아 국민신뢰도 크게 회복했다. 새해에는 국가적으로도 여러면에서 큰 발전과 긍정적인 변화가 기대된다.

MB의 선진 일류국가 기초닦기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월 4일 새해 신년국정연설에서 ‘선진일류국가 기초닦기’등 3대 국정운영기조와 5대 핵심과제를 제시했다. 이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최우선과제로 선정한 ‘일자리찾기’도 중요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는 근본적 문제는 ‘선진화의 시대정신’목표를 어떻게 성취하느냐다.

우리가 ‘선진화일류국가 기초닦기’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기초인 법치주의의 철저한 이행과 정부및 공공기관의 투명성이 광범위하게 보장되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국가기관과 공공기관, 그리고 국가및 각계각층 사회지도층사이 법치주의와 투명성이 구석구석 스며들어야 한다. 이런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정부와 공공기관과 그 책임자들이 법치주의와 투명성을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안된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제도는 하드웨어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정치의 외형적 모양갖추기는 너울처럼 필요조건일뿐 알맹이를 채운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외형적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국가라고 해서 개인의 권리와 행복이 골고루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제도라는 하드웨어에 공직자들의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인간적 양심과 윤리도덕, 체질화된 언행일치의 교양, 상대방과 억울한 약자에 대한 배려, 모든 불공정성에 대한 공직자들의 부끄러움과 철저한 시정이 보태져야 한다.

민주정치 장치속에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는 공직자들의 이런 성숙된 윤리도덕관과 애국심이 채워져야만 비로소 민주정치의 충분조건에 도달함으로써 ‘선진화일류국가 기초닦기’ 목표도 달성할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등 정치인들은 물론 정부고위공직자들과 혈세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의 장들이 이런 도덕적 선진화조건들을 솔선수범하는 것이 선진화를 앞당기는 길이다. 물량작전과 외화내빈(外華內貧)의 도시디자인 만능주의와 국제적 대형 이벤트만으로는 결코 선진화를 이룩할 수 없다.

우리사회에는 선진화를 가로막거나 역류하는 요인들이 숱하게 많다. 특히 정부주변과 고위공직자들사이 그리고 정부기관및 공공기관들에서 이런 악습백태들이 성실하게 살아가는 대다수 국민들을 짜증나게 하고 참을수 없는 배신감마저 불러일으키게 한다.

미리 사장 내정해 놓고 들러리 공모

첫째 과거 권위주의시대와는 다르게 근자에 공공기관 사장과 임원들을 공모하는 경우가 자주 눈에 뜨인다. 전수조사는 안했지만 경험과 공개된 비밀들을 종합컨대 몇몇 공공기관 사장공모의 경우 임명권자나 힘센 관계 권력기관들이 사전시나리오에 따라 미리 사장을 내정해놓고 공모광고를 내는 경우를 예로 들수 있다.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정부와 공공기관의 진실성만을 믿고 사장공모에 응모했던 지식인들이 속아서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응모했던 사람들은 체면상 이런 사실을 공개할 수도 없어 꿀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다. 속은 응모자들은 분함과 억울함을 못이겨 이를 뿌드득 뿌드득 갈면서 정부와 해당 공공기관의 속임수에 불구대천(不俱戴天)의 불신과 앙심을 품게된다. 공공기관측은 응모자들이 제출한 산더미같이 까다롭고 복잡한 신원조회서류등 각종구비서류 심사를 하는둥 마는둥 지원서 제출 마감직후 2시간도 안돼 1차합격자를 발표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각종 공공기관의 이런 공모방식과 형식적 절차는 주권자인 국민을 난폭하게 속이는 철면피한 협잡이자 야바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른채 공공기관만을 믿고 응모한 선량한 응모자들은 졸지에 허수아비와 둘러리로 전락하고 만다. 결과적으로 공공기관들이 응모자들을 속여먹는 것이며 여기 대해서는 공공기관들을 감독하는 정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전세계가 입을 모아 한국의 성공모델을 격찬하는 칭찬의 뒷골목에서 정치선진화의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이런 후진적 폐습들이 21세기 대명천지 수도 서울에서 공공연하게 되풀이 되다니 서글픔을 넘어 치솟는 혐오감과 체념을 금할 수 없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작년 말 공모절차 진행중 감독기관 압력에 눌려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 자리를 내놓은 것도 대동소이한 케이스다. 그가 사퇴한 것은 정부가 그를 못마땅해한다는 소문이 정부와 금융가에 나돌았고, 금융감독원이 KB금융지주에 대한 전방위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어떤 신문은 강 행장 사퇴에 대해서 “옛 정보부 뺨치는 무법적(無法的) 은행 회장 사퇴 공작”이란 사설로 정부의 관치금융행태를 질타했다.선진화와는 거꾸로 가는 이런 퇴행적 행태야 말로 국제적 망신이 아닐수 없다.

자산 규모 266조원에다 외국인 주주 59%인 KB는 순수민간 금융기관으로서 정부는 주식한장도 갖고 있지 않다. 이런 형편에 정부가 유신시대같은 못된 압력으로 적법하게 선출된 회장을 사퇴시킬수 있다면 다른 공공기관들의 사장공모에도 얼마나 깊이 개입했을까 가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금융당국이 은행장과 임원들을 부하처럼 마구 휘두르는 관치금융으로 회귀한다면 이야 말로 세계화시대 금융 경쟁력을 추락시키는 후진적 행태의 전형임을 정부당국자들은 똑똑히 깨달아야 한다. 정부가 ‘금융 선진화’를 앞세우면서 실제로는 금융권력을 장악하려 한다면 ‘선진화일류국가 기초 닦기’도 백일몽에 그치고 말것이다.

낙선자에게 공공기관장

둘째로 정부가 지역구 선거에서 낙선한 실패자들에게 주요 알짜 공직을 안긴다는 점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정부가 낙천한 사람들에게 각종 공공기관 또는 정부투자기관 책임자로 보내는 것은 알겠는데 지역구에서 주권자인 국민들의 공개적인 정식 심판을 받고 거부당한 낙선자들을 불러모아 그들에게 주요 고위공직자리를 맡긴다는 것은 주권자의 의사를 노골적으로 깔아뭉게버리는 반민주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로서 ‘선진화일류국가 기초닦기’ 목표를 직접 저해함으로써 정부 스스로 신뢰를 갉아먹는 자업자득이자 언행불일치의 악습이 아닐 수 없다.

셋쩨로 총리와 정무직등 일부 고위공직자들이 국회 청문회에서 탈세,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병무비리의혹등 부조리등이 숱하게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그들중 대다수를 공직에 임명하는것은 청문회 취지와 법치주의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다. 그런가 하면 정부는 2008년 2월 부동산투기등의 사유로 청문회도중 자진사퇴한 사람을 작년 9월 EBS이사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사퇴한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 시절 여성부 장관으로 내정됐으나, 본인과 아들 명의로 된 전국의 아파트와 오피스텔, 단독 주택 등 40건의 부동산과 함께 45억원 상당의 재산을 공개하면서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았었다. 당시 그 여성 장관내정자는 사퇴의 변에서 “소유 부동산 대부분은 선대로부터 상속을 받았거나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공익을 위해 일해 왔다고 자부하는데 이런 비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고려장식 연령제한

넷째로 공공기관 사장과 임원공모에서 편파적이며 불공평한 연령제한문제다. 고령을 빙자한 연령차별은 국가발전의 경륜자원을 사장(死藏)하는 어리석은 반선진화 작태다. 1970년대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89세)는 지금도 세계를 활발히 누비면서 정치자문을 하고 있다. 스트롬 더몬드 미 상원의원은 100세까지 상원의원을 하다가 2003년 6월 재임중 별세했다. 헬렌 토마스(89세) 여성 기자는 지금도 백악관 출입을 하는 현역기자다. 올해 93세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총리는 지금도 ‘아시아-태평양의원포럼’의 명예회장직을 맡아 정부자문역으로서 한국을 비릇한 세계각국을 부지런히 여행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93세의 현역기자가 취재활동을 하는가 하면 여류작가 도리스 레싱(91세·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은 지금도 작품활동을 하는 현역이다. 1980년대 말 전 미국 FRB의장(연방준비제도이사회-우리의 한국은행총재)은 82에의 고령에도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의 고위공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 보다 훨씬 젊은 비서와 올해 결혼키로 되어있다. 중국도 고령의 공직자가 많기는 선진국과 마찬가지다.

이에 비해 한국은 공직자구성이 노장청(老壯靑)으로 된 선진국과 달리 연령차별이 극심하다. 정부는 나이는 기호일뿐 개인별 건강과 의식상 격차는 엄청나다는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연령차별은 헌법과 실정법위반이며 귀중한 인적자원과 경륜을 무단폐기하는 인권유린으로서 반인륜적 범죄이다.

연령차별은 동서양 도덕율과 세계보편적가치에도 정면으로 어긋나는 부도덕적 행태다. 이는 건강하고 유능한 고령자들을 ‘고려장’ 지내는 고대와 중세의 반인륜적 악습이자 폐륜이다. 연령차별은 헌법소원 제기사유가 되며 장차 국가사회적으로도 핵폭탄같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과 폭발력을 가진 재앙이 될수도 있다.

나이가 들었어도 모든 문제에 관해서광범위한 관심을 가지고 항상 자기계발에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열정으로 현역처럼 살아가는 고령자들이 숱하게 많다는 것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2009년 7월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지구촌에서 유례 없을 만큼 빨라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약 500만에 달한다고 한다. 출산율은 가임여성 1인당 1.13명으로 세계평균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따라서 건강과 경륜의 소유자로서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고령자들에게 국가는 연령과 편견없는 공정게임룰에 따라 각자 깜냥에 알맞는 취업기회를 제공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만 비로소 ‘선진화일류국가’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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