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호]

[일 천황 한국방문]

올해 어려운 이유 있다

한일병합 100주년에다 북한변수

글 /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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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황족들의 궁중 생활은 공개 안 되는 부분이 많아서 비밀스럽다. 그래서 항상 국민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있다. 예를 들면 천년 넘도록 이어온 천황의 궁중 의식이 몇 가지 있는데 공개 된 적이 한번도 없다. 원로급 고학자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그 궁중 의식에 있어서는 한반도에서 전해온 것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조상신에게 바치는 제례상에는 일본 사람들이 안 쓰는 숟가락도 올라간다고 한다.

<▲아키히토 일본 천황 부부>

일 강무천황 어머니는 백제왕족

몇 년 전에 주한일본대사관에 근무했던 어떤 공사는 외무성에서 파견되어서 궁중 일을 한 적이 있다. 하나의 비서 역할을 했는데 궁중 의식을 도와드리는 일도 했다고 한다. 그 내용은 오프더레코드 때문에 쓸 수 없지만 아키히토 천황을 24시간 대기 태세로 모셨기 때문에 그 천황의 성격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친구에 의하면 아키히토 천황은 매사에 아주 꼼꼼했다. 예를 들면 외국을 방문한다든가 외빈을 접견할 때는 그 나라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미리 철저히 준비 한다. 그래서 외국에 대해서는 상당한 지식과 식견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한반도에 대해서는 그 역사를 포함해서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2002년 한일공동 개최가 된 월드컵 때의 일이 생각이 난다. 천황은 매년 생일인 12월23일에 맞춰서 기자회견을 한다. 월드컵을 앞두고 2001년에 기자회견 때 아주 흥미로운 말을 했다 조선실록 같은 일본의 한 공식 역사서의 기술을 소개하면서 8세기 당시의 “강무천황”의 어머니에는 백제왕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월드컵 공동개최를 연결시켜서 “나로서는 한국과의 깊은 인연을 느낀다”라고 했다.

이것은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에 대한 우호친선의 메시지였다. 본인도 가능하다면 그때 한국에 가서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여건상 방문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말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그때 천황 발언은 한국에서는 모든 신문이 일면 톱으로 보도하면서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천황의 우호친선 메시지를 환영했다기 보다 백제와의 인연을 거론한 것에 대해서였다. 한국 언론들은 “일본 천황의 뿌리가 한반도라는 것을 처음 공식 인정”이라고 대서특필했다. 고대 일본 황족의 백제와의 역사적인 인연은 아까 말한 것처럼 일본의 공식 역사서에 나와 있듯이 이미 알려진 것이었지만 한국언론들은 흥분했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독립왕국 류쿠 병합 잘못 시인

나는 60년대에 통신사 기자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 당시 몸담았던 교도 통신의 선배 기자로 아키히토 천황의 대학 동기생이 있었다. 그때 아키히토 천황이 황태자였는데 그 선배 기자는 황태자 관저에 자주 다녔다. 학창 시절에 황태자한테 “나쁜짓”까지 가르쳐 주었다는 것이 그의 자랑거리였지만 하여튼 동기생이어서 여러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선배 기자가 소개한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아까 말한 것처럼 아키히토 천황은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분이 역사 이야기를 하면서 일본 근대사에 몇 가지 큰 잘못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중의 하나는 근대화 초기인 메이지시대 초의 오키나와를 완전 일본국으로 병합한 것이었다.

오키나와는 “류큐”라고 해서 옛날에는 독자적인왕국이었고 중국과의 사이에 있으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 온 섬나라였다. 메이지시대에 오키나와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냥 일본화 시킨 것이 역사의 잘못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말기에 미국과의 전쟁에서 격전지가 되고 엄청난 희생을 당했다. 그래서 아키히토 천황은 오키나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강하고 황태자 시절을 포함해서 오키나와에는 몇 번이나 찾아 갔다.

<▲2010년은 한일병합 100주년인 해이다.>

2010년 천황 한국방문 어려운 이유

아키히토 황태자가 말한 일본 근대사의 큰 잘못의 또 하나가 한일병합이었다. 긴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한국에 대한 미안한 감정은 분명하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말한 “한국과의 깊은 인연” 강조와 우호친선 메시지는 그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직접적인 정치 또는 외교적인 발언 행동을 할 수 없는 천황으로서는 그런 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에 일본 천황의 한국 방문 이야기가 거론되고있다. 직접적으로는 작년 가을에 이명박 대통령이한 인터뷰에서 “한일병합 100년의 해에 천황이 한국을 방문하면 의미 있고 좋지 않겠냐”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한국도 정권 교체로 한일관계를 강화 확대하는 방향에 있고 일본도 정권 교체와 한류붐으로 친한 분위기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연초에 한국 언론에 나온 여론조사도 긍정적인 숫자가 나와있다.

그러면 천황의 첫 한국 방문은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하다. 특히 2010년이라는 올해는 어렵다. 이유는 2010년은 너무나 과거지향적이다. 불행했던 한일병합이라는 역사는 벌써 65년 전에 끝났다. 국교정상화 이후에 새로운 협력 시대도 벌써 45년이나 된 것이다. 일본 여론의 대세는 “이제 와서 왜100년이냐”라는 견해인 것 같다. 과거사에 연결시켜서 아키히토 천황을 한국 방문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2010년이 아니면 내년에도 괜찮다. 가능하다면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인 2015년이 좋을 것이다. 그만큼 말이 많았던 천황의 첫 중국 방문은 일중 국교정상화 20주년(1995년)을 기념해서 이루어졌다. 중국을 포함해서 불행했던 과거를 상기시키는 해에 상대방 국가 원수의 기념 방문을 생각하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천황 한국 방문에 대해서 예부터 걱정해온 핵심적인 변수는 “북한”이다. 남북관계와 북일관계가 개선 또는 정상화 되지 않는 한 위험하다는 것이다. 북한 체제가 이대로 계속되는 한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남북통일을기다릴 수밖에 없다. 천황 한국 방문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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