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호]

[고철회(古鐵會) 30년]

신철 투병설에 허망감

해방동이 작가 최인호씨 나쁜소식


글 / 宋貞淑 편집위원(송정숙 전장관,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옛날 문화부 기자 출신들이 모여 조그만 모임을 만들어서 한 달이면 한 번씩 만난다. 그 이름이 「고철회(古鐵會)」다. 만든 지가 30년도 넘었는데 그 때 이미 신철(新鐵)은 아니므로 고철이라 했고 고철도 철이므로 녹이면 그런 대로 철로 쓰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겸손하게 그런 이름으로 정했던 것 같다. 우리는 모이면 옛날에 했던 실수며 후회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그리고 빛나고 영화로웠던 추억은 아니어도 이면으로 사라진 진상(眞相) 같은 것도 이야기하고, 그리고 열정을 공유했던 시절의 이야기 같은 것도 허망함에 말아서 훌훌 들여 마신다.

문화기자 시절의 해방동이 작가

새해 벽두에 작가 최인호씨의 소식이 전해졌다. 무엇보다도 투병에 너무 힘이 들어 샘터에 연중이었던 「가족」을 잠깐 중단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가슴이 시려 왔다. 옛날에는 자주 읽었지만 최근 10년 안팎에는 읽지도 못했던 글이다. 그렇지만 그가 아직도 「가족」을 연재중이라는 사실을 나는 거의 상식처럼 익히고 있었다. 우리가 노상 상식처럼 지니고 있던 일을 이제 옛일이 되게 해야 한다는 뜻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찬바람이 속옷 속으로 기어드는 것 같은 처량함을 느꼈다.

최인호는 우리 옛날 문화부 동료들에게는 늘 「신철」처럼 마음에 자리하고 있던 사람이다. 그는 녹슬어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를 우리는 『해방동이 작가』로 오래 일컬어왔다. 광복절 특집 같은 것을 하려면 으례 그를 불렀고 어떻게든 요리 소재로 동원해야 구색이 맞춰진다고 생각하면서 수십 년 동안 문화면을 꾸며왔었다. 해방 동이의 동은 동(童)이다. 그래서 오랜 동안 그는 우리에게 「아이」로 존재해 왔다.

그도 어른이 되고 늙어 가는데 그가 한번도 우리에게 어른처럼 나이 들고 늙어 가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그 「동이」때문인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 나는 깨달았다. 그는 한번도 상투적이거나 낡거나 때묻어 보인 적이 없는 작가이고 지식인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샘터 연제 ‘가족’ 중단 서운

깊고, 진실 되고 선(善)을 실천하는 신념을 속으로 간직하고 독실하게 수련하는 흔치 않은 품격 같은 것을 그가 지닌 것이라는 생각을 나는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와 나는 서로 친하거나 잦은 친교 같은걸 갖는 사이는 아니다. 그는 그런 교유의 이웃을 많이 지닌 편인 사람이지만 나는 그에게 그런 대상에 들어 있지는 않다. 그런데 그가 투병중이라는 이야기를 몇 번 듣고 마침내 「가족」을 잠정 중단했다는 소식을 접하니까 이렇게 찬바람이 속옷을 서걱서걱 젖히며 지나가는 것처럼 쓸쓸하고 가슴이 아프다.

『나보다 젊고 어리면서 늘 신철처럼 좋은 재질로 얼마든지 좋은 준비물을 펼쳐 보일 수 있는 그가 왜 그런 소식을 전한담.』하는 서운함이 앞선다.

그가 침샘인가에 암이 생겨서 투병을 한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얼핏 어떤 생각이 났었다. 그가 연재 소설을 쓰거나 산문 같은 것을 쓰면 반드시 성공을 했다. 그래서 늘 그를 탐냈었다. 그래 우리는 언제나 그를 『잡으려고』몸 닳아 했었다. 나도 물론 그랬다. 접촉을 시도하고, 조르고, 요구하고 더러는 협박도 하고 지겹게 들볶기도 했다. 그런 일들이 그에게 병을 만들어준 것은 아닐까.

나쁜소식 거두고 빨리 일어나라

지금은 대신문에서 사장을 지내고 있는 정치학교수 출신의 인사가 있다. 그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있었던 개인적인 일화를 들려줘서 듣던 우리가 모두 웃으며 그러나 가슴도 좀 아파하면서 보낸 일이 있다.

그는 형제가 4 쯤 되는 중의 둘째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는 어렸을 때, 우리 모두가 그랬듯이 아주 가난 집에서 자랐다. 중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들 형제는 늘 배가 좀 고팠다. 부모님들은 살기에 바빠서 밖에 계셨고 그래서 솥에 있는 밥을 꺼내서 형제가 함께 김치나 고추장 같은 것을 하나씩 놓고 서로 수저를 박아가며 먹어야 했다. 그런데 밥은 적고 둘이 서로 퍼먹어야 하므로 다퉈 가며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형인 그는 아우가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것을 알고 일부러 고추장을 많이 넣고 비벼버렸다. 그러면 아우는 매워서 어쩔 줄을 모르면서 숟가락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며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물을 많이 마시고 배가 아파하곤 했다. 그럴라치면 형인 그는 잘됐다는 듯이 혼자서 많이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후 유학시절 미국에서 하루는 아우가 원인 모르게 몹시 배를 앓은 적이 있었다. 만리 타국에서 형제가 고학으로 유학을 하는 중이었으므로 아우가 병이 나면 형은 너무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그 날 형은 그런 아우를 보면서 어린 날 아우에게 고추장을 많이 먹인 일이 꼭 그 배앓이의 원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눈물이 「콱」났었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말도 안된다』며 웃었고 그러면서도 눈물이 「콱」나는 대목을 공감하기도 했다.

과거에 내가 한 무심한 허물 때문에 누군가 깊이 다쳤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깊은 회한이 든다.

최인호. 나보다 젊은 사람이 건방지게 먼저 나쁜 소문 만들지 말라. 그리고 깊은 산 속에 여러 갈래의 발원지를 탐색해 놓고 깊고 맑은 수원지(水源池)를 늘 넘쳐흐르게 하고 있는 그가 일손을 놓고 있다는 것은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다. 그러지 말라. 빨리 털고 일어나서 그 신선한 물맛을 목마른 우리에게 전해 주라.

그렇게 빌어본다. 새해의 첫 기원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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