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호]

금융시장이 왜 불안한가?

글/ 金伯駿(김백준 eBANK Korea 부회장)

한국경제의 제2위기설

최근 한국 경제의 제2 위기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가운데 금융시장이 매우 불안하게 움직이고 있다. 채권시장, 어음시장, 대출시장, 주식시장 할 것 없이 모두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불안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저간에 한국 금융시장이 불안하게 움직이고 있는 배경에는 구조적 요인과 마찰적 요인이 혼재하고 있다.

그 첫째는 해결안된 금융부실과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에 대한 불신이다. 제1차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처리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은행과 투신권에 지난 2년 반 동안 1백1조원의 공적자금을 쏟아 부으면서 은행의 부실을 상당히 제거해 주었다. 그러나 작년 7월에 터진 대우그룹 사태, 올 봄에 발생한 현대그룹의 유동성 위기, 새한그룹의 워크아웃(work-out) 신청 등은 금융기관의 부실을 다시 증가 시켰다. 여기에 현재 1백조원에 달하는 워크아웃 기업 여신과 5백여개의 화의기업에 빌려 준 막대한 대출금은 잠재손실을 크게 늘려 은행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둘째 은행의 대출 기피 현상이다. 은행의 대출 기피 현상은 금융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부작용 가운데 하나이다. 합병을 염두에 두고 보니 BIS 자기자본비율을 깎아내리는 기업대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은행들의 몸 사리기는 일부 중견 및 대기업의 신용위험 급증과 맞물리면서 시중 자금흐름을 급속도로 악화시키고 있다.

부실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

셋째는 투신사들의 자금중개기능의 마비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의 발표에 의하면 투신사 펀드(1백억원 이상 규모 기준)의 부실자산 규모는 총 2조1천8백38억원이며 이 가운데 아직 손실로 떨어내지 않은 부분만도 1조1백8억원이다. 투신사들이 전체 부실채권 가운데 거의 절반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해 손실로 처리했지만 아직도 절반에 가까운 46.5%를 안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투신사의 경영부실은 주식시장의 침체와 더불어 대규모의 수익증권의 환매(예탁금 인출) 사태를 가져와 투신사의 유동성위기(자금부족)와 채권 인수능력의 마비를 가져왔다. IMF 위기 즈음에 발행했던 회사채의 만기가 도래함으로써 금년 하반기에 차환 발행되어야 할 회사채만도 27조원에 이르고 있음을 감안할 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넷째 종금사의 부실과 퇴출이다. 97년 초 30개에 달하던 종금사 수는 IMF 위기과정에서 부실 종금사의 퇴출이 대거 이루어지면서 올 6월 현재 8개로 줄어들었고 종금사 전체의 수신고는 92조원에서 3년 만에 10조원 대로 격감하였다.

특히 작년 말부터 나라종금 퇴출, 한국종금의 유동성 위기와 공적자금 지원조치가 이루어짐으로써 종금사의 신인도가 더욱 악화되어 매월 큰 금액의 수신이 줄어 추가적 자금 공급능력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다섯째 기업 부실처리의 지연과 한계기업의 경영 악화이다. IMF체제 이후 진행된 산업구조조정(과잉생산능력 감축)의 효과가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으며, 석유화학, 섬유업 등 경기호전 환경에서 소외된 기업들의 경영 상태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워크아웃(기업 정상화 작업) 대상 76개 기업 중 경영실적이 좋아서 조기졸업을 검토하고 있는 기업이 14개사에 불과할 정도로 워크아웃 대상 기업들의 정상화 실적이 극히 부진한 상황이다.

또한 제조업의 경상이익률이 97년 0.3%, 98년 1.8%에서 99년에는 1.7%로 개선되었으나 그것도 구조조정의 효과 보다 금융비 절감과 원화절상 등 외부여건 호조에 힘입은 바 컸으며 기업의 실질 성장 지표인 영업 이익률은 97년의 8.3%에서 98년 6.1%로 하락한 후 99년에는 전년대비 0.5% 개선에 그칠 정도이다.

강력한 금융구조조정 필요

금융시장 불안의 배경이 구조조정의 방법론에 있었던 아니면 구조조정 주체들의 도덕적 해이나 정부당국의 낙관주의에서 기인했던 금융 불안은 조기에 수습되어야 한다. 금융 불안을 조기에 수습하지 않으면 전반적인 경제 불안으로 확산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경제가 구조조정과 부실기업 처리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가운데 개방경제를 지향하고 있어 환경변화에 매우 취약한 상황인데다가 국내 소비와 수출 증가세가 점차 둔화되고 있어 금년 하반기 국내 경기전망이 상당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간의 금융불안 현상을 해소하기 위하여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우선 금융의 제2의 구조조정(부실 정리 포함)을 조기에 추진하여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여야 한다. 구조조정에 따른 부작용보다는 구조조정 지연에 대한 시장의 반발이 더 큰 문제인 만큼 조기에 강력한 금융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 금융구조조정이 지연될 경우 우리나라 금융기관에 대한 대외신인도 하락, 금융부실 증가,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 심화, 국내 금융시장의 장기침체, 금융 시스템의 정상화 지연 등 일련의 악순환이 유발될 수 있다. 금융의 구조조정은 시장원리에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할 경우 공적 자금 투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경우 타이밍(timing)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그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공적 자금의 운용에 있어 책임원칙개념을 도입하여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방지하는 장치도 동시에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산업 체질을 계속 강화하여야 한다. IMF 이후 급한 불을 끄는데 주력하여 실질적 체질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재무적 내성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의 부도설에 시달릴만한 기업이 많다. 한계기업의 부도나 워크아웃 기업의 양산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하여 기업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의 대상기업도 그 회생 가능성을 철저히 점검, 가능성이 낮은 기업은 과감히 퇴출시켜야 한다.

또한 오늘날의 경제적 어려움이 시설과잉에서 기인되었음을 알진데 이러한 과잉시설 문제는 적시에 효과적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고통이 없는 수술은 있을 수 없다.

금융시장 불안의 배경이 구조조정의 방법론에 있었든 구조조정 주체들의 도덕적 해이나 정부당국의 낙관주의에서 기인했든 금융 불안은 조기에 수습되어야 한다


정책에 대한 시장신뢰 회복 급선무

셋째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 발휘와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 회복이다. 금융시장의 실패가 발생한 만큼 정부의 한시적 개입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정부 당국은 금융 구조조정과 경제정책에 대한 확고하고 일관된 정책의지와 방향을 유지해야 할 줄 안다. 나라 경제를 위해 할 것은 하고 책임질 것은 지면서 은행의 통폐합과 투신사 정리 등과 같은 문제에 명확한 구도를 제시하고 그대로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다만 이 경우 정책집행 과정에서 시장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여야 할 것이다.

예컨대 은행 합병의 경우 내부적으로 협의는 충분히 하되 그 결과에 대한 발표는 한번으로 끝내야 한다. 합병이 성사되기도 전에 계속 암시적 발언을 해 은행을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 정리되지 않은 은행 합병설은 은행 주가에 상당한 영향을 주어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며, 낮은 주가는 은행 경영 정상화 작업에 있어 운신의 폭을 크게 위축시키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은행경영 정상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넷째 금융인의 책임의식과 사고 개혁이다. 금융기관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최선의 구조조정안을 제시하고, 합당한 정책 추진에는 승복하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

물론 금융인들 입장에서 할 말이 많을 줄 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금융부실에 대한 책임론에서 금융인들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은 네 탓이오, 내 탓이오 할 계제가 아닌 듯 하다. 집단이기주의에 의한 저항이나 보신주의는 공멸을 초래할 뿐이다.

오늘날 금융의 세계적 메가머저(megamerger) 열기는 한국 금융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너무 많은 것이다. 그 내용은 우리 금융인들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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