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호]

[공직자여 분노하라⑪]

만성피로와 삶의 질

글/ 崔同燮(최동섭 대한적십자사서울지사회장, 전 건설부장관, 동아그룹 회장)

여전히 개혁의 피로현상

대통령은 지난 5월 정부내 갖가지 정책 혼선에서 빚어진 불확실성 때문에 국정개혁에 대해 국민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표현으로 공직자들의 국정수행에 대한 불만과 함께 분발을 촉구하여 긴장 분위기가 감돌기도 하였다.

그러나 6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의 만남과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서명한 남북공동선언 그리고 김 위원장의 답방약속으로 평화통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지금까지의 ‘피로’가 다소 풀린 듯 하면서 흥분되고 들뜬 분위기로 전환된 것 같았다.

7월과 8월은 불볕더위의 한참 여름이다.

이산가족의 만남으로 설레이면서도 직장인들은 가족과 함께 휴식 휴가로 즐기는 모습들을 전국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공직사회는 아직도 찜통의 더위 속에서 여전히 의약분업분쟁, 금융노조의 파업(금융구조조정), 국민건강보험노조의 파업 등으로 혼란과 위기 속에서 피로를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흔히 직장에는 있어야 한다는 세 가지 요소로 직장인의 자긍심과 신 뢰, ‘즐거움’을 들고 있지만 공직자에게는 국가 사회 모든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하는 중압감 때문에 ‘즐거움’을 내놓고 펼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는 것 같다.

항상 긴장과 ‘스트레스’에 짓눌려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도 일로부터의 해방감과 휴식,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그들의 능력과 의욕의 재충전도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더 크고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는 기대도 걸 수 있지 않은가.

공직자들도 민주시민이 누리는 최소한의 삶의 질과 미래에 대한 생의 보장, 응분의 처우 등이 따라 주어야 한다. 그들의 사기와 의욕도 생각해야 한다. 긴장의 연속과 찌든 삶은 불평과 불만을 쌓이게 하고 왜곡된 국정 운영으로 분출될 수 있다. 여기에 ‘국정의 피로’가 더욱 가중될 수 있는 가능성도 새겨보아야 한다.

휴식과 여가 모자라는 만성피로

적은 보수와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공직자들은 ‘만성적 피로’에 쌓여 있다. 참고로 공무원들이지난 1년간 실제 휴가를 사용한 실태를 중앙인사위원회의 정책 여구 보고서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공무원이 모처럼 갖는 휴가일수만 보아도 1일부터 5일간의 짧은 휴가를 조급하게 다녀온 수가 43.5%나 되고 있다.

이에 비해 민간 기업에 종사한 자는 같은 범주에 38%이고 11일부터 15일, 느긋하게 충분하게 다녀온 수는 16%나 된다. 선진제국의 직업인들이 1년 벌어 한 달간 가는 휴가 휴식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더욱이나 휴가를 얻어 놓고 집에서 보낸 공무원이 52.7% 된다는 것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경제사정도 있겠지만 업무와 연속되는 긴장된 휴가를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평소에 일주일동안 지내면서 여가시간이 거의 없다고 답한 비율이 25%나 되고 있다.

우리나라 공직사회풍토는 오랜 습관으로 국가위기상황과 경제목표 달성을 위하여 쉬는 날 없이 긴장과 ‘일하기’ 연속에서 살아온 탓으로 휴식은 노는 것, 낭비로 생각되어온 풍토가 있다. 아랫사람이 앉아서 쉬는 모습을 고운 눈으로 보려는 습관은 없는 것 같았다.

얼마전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과로로 쓰러졌다.

일본 총리쯤 되면 평소 격무와 과로에 얼마나 시달리고 있는가를 실제로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 클린턴이나 레이건 대통령들은 일하기 위해 휴가를 즐기는 것인지 휴가를 즐기기 위해 일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유를 보이고 있음을 참고해야 한다.

심지어 블레어 영국총리는 부인이 출산했다고 2주일간이나 휴가를 얻겠다고 들먹거린 이야기도 있다.

“골프치다 큰일 날라”

어려울 때 중대하고 올바른 정책결단은 맑고 건강한 심신을 유지하는데서 가능하다는 원칙에 충실하면서 휴가를 취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가끔 중대한 결정이나 구상을 하기에 앞서 옛날은 진해, 최근에는 청람대에서 휴식을 며칠 취하는 것이 고작이고 심지어 청와대 뜰을 거닐면서까지 휴식과 일을 동시에 취하는 안타까운 모습도 볼 수 있다.

윗분들이 그러하니 아래공무원들이 취하는 휴식, 휴가에 대한 여유는 좁아질 수밖에 없고 윗사람의 눈치보기에 가슴이 조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눈총 속에 모처럼 얻어낸 은전이건만 고작 몇 일간의 휴가이고 그것마저도 업무와 완전 단절하지도 못 한채 연락처를 알려 주고 행동반경은 묶어 놓은 채로 몇 일간 보내는둥 마는둥 하다 돌아온다.

그러다 보니 여름 휴가에 대한 만족도 조사가 보여주듯이 민간 기업종사자는 65.5%가 만족하고 있는 수준인데 비해서 공무원의 경우는 겨우 57%로 반수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비교적 고위공직자들이 주말에 즐기는 골프를 보자.

이 운동은 오랜동안 공직자들이 눈치를 살피며 가슴을 펴지 못하고 하는 휴식 운동이다. 이것으로 인해 많은 공직자들이 문책되기도 했다. ‘돈이 많이 드는 과분한 사치 운동이다’ ‘접대와 부정이 얽히는 운동이다’ 해서 금기시 되어오기도 했다.

최근에는 박세리양의 힘을 입어 국민운동으로 활짝 풀리는 듯 했다. 그러나 총선 후 사정(司正)바람이 불면서 ‘골프 치다간 큰일난다’고 기피하는 경향이 또 일어나는 것 같다.

지난 현충일에 이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는 기간 중에는 자제와 해약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일반 국민들 사이에는 그처럼 좋은 운동으로 골프인구가 확산되고 있지만 공직자들에게는 골프장은 사실상 출입이 제한 되고있는 금기 구역이기도 하다.

이러다 보니 ‘여가시간’에 대한 공직자 만족도 조사에 나타난 결과를 보면 민간 기업종사자는 48.6%가 만족하고 있지만 공무원의 경우는 겨우 31.8%만이 만족하고 있다는 답이 나오는 것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낮은 처우와 직업 만족도

공무원들이 민간기업 종사자들보다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것은 이런 사정을 통해서 알 수 있지만 경제여건, 처우도 상대적으로 열악하여 그들은 ‘피로’에 젖고 있다.

공무원 처우수준은 99년 기준으로 보아 민간 중견 기업의 87% 수준이라고 한다. 그것도 근무 오래할수록 민간 임금과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대졸초임에는 민간기업대비 89% 수준이었던 것이 10년 지나면 86%, 20년 경력이면 83%, 30년이 되면 민간기업의 65% 수준이라고 한다. 따라서 직업에 대한 만족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민간기업 종사자의 경우 응답자의 71.2%가 직업에 만족한다고 답한 데 비해 공무원은 58.5%만이 만족하고 있다. 그것도 공무원 가운데 상위직은 높은 편이지만 6, 7급등의 하위관리직은 매우 낮다는데 문제가 있다.

나라의 경쟁력은 공직자의 행정 서비스의 질에서 찾아야 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 공직자의 의식개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에 앞서 공무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안을 마련해 주는데서 먼저 찾아야 한다. 정부의 우수인력의 확보 유지도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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