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호]

[조용한 아침의 나라]

차분한 다이내믹 코리아

높아진 國格에도 기품 변할 수 없어


글/전성자 (한국소비자교육원장)

1. 은자의 나라, 코리아

현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는 기발한 경구(警句 - 캐치프레이즈)로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를 든다. 우리의 역동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카피다 싶다. 세계인들도 우리를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듯하고 우리도 그런 점을 특색으로 내세우는데 수줍어하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며 메겨진 경구 몇 가지가 생각이 난다. 한때 우리 마음엔 탐탁하진 않았지만 “은자의 나라(Hermit Kingdom)”라고 불리기도 했다. 미국의 최초 한국 전문가라고 비견되던 W. 그리피스가 쓴 그의 1870년 저서의 제목에서 제시된 국가 이미지이다. 비록 그가 일본에서 교수로 채류하며, 일본인의 뒤틀리고 비틀어진 역사기록을 사실 확인 없이 옮겨 쓴 인용의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 책이어서 마음에 탐탁하진 않지만, 그런 흠 많은 글 중에서도 우리 역사와 문화가 동양에 감춰져 있는 귀중한 핵임을 발견해 낸 밝은 눈만은 평가할만하다. 서양사관의 고집쟁이였던 그였지만, 한국(조선)은 마치, 시작의 이집트 문화를 그리스 문화에로 중계해 선진 문명에로 발전을 달성하게 한 키프러스처럼, 중국 문화를 일본 문화로 자라나게 한 아시아 문화의 숨은 중계자라는 것을 찾아 낸 점은 살만하다. 그는 한국을 동양 문화와 역사의 중계자로만 보지 않고 동양 문화를 변형 발전시킨 배지(培地)다는 점을 발견해 낸 것이다. 아시아에 와서 연구해 보고야 숨어있던 존재를 찾아냈다는 점에서 “은자(隱者)”라는 단어를 골라 썼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이나 서양이 무지하여 관심 밖에 있던 이 땅을 찾아와서 보고 우리가 동북아의 숨은 핵심이었음을 알아 낸 것이다. 아시아를 살찌웠으며 당시(현대)의 일본을 가능하게 했던 한국의 훌륭한 문화와 역사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해 보려는 열의를 내보이기도 했었다. 구한말의 요란하던 시대 병인양요 같은 무력시위를 앞세우고 약탈해 간 직지심경 같은 문화재를 통해서 우리를 새롭게 알아보고 나서야 찾아 낸 단어가 “은자”이었을 것 이다. 그 책 이후 미국 사람들은 한동안 한국을 미지의 은자의 나라로 알고지내 왔다.

2. 다이내믹 코리아

전쟁과 가난으로 암울했던 시대에는 그 사태와 실정 그 자체가 한국을 나타내는 연상언어였다. 그 잔영은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고 흔적이 남아있다. 대사변의 시대를 지나고 20세기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조용한 아침의 나라(the Country of morning calm)”라는 슬로간 아래 차분한 걸음걸이를 시작했었다. 밑그림도 떠오르는 동해의 태양이었고 컨셉트도 “아침의 고요함”이었다. “모이자, 노래하자.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 .” 평화롭고 고요하며 희망이 솟는 나라로 환상을 높이려했었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 보자.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 . 아 ~ 우리의 서울, 우리의 서울, 거리마다 푸른 꿈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서울을 사랑하리라.” 열창하였다. 그때의 코리아는 평화와 희망을 시각화하며 성장 의지로 삼았었다. 그 경구도 세계 속에 차분한 친밀감을 심는데 기여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던 나라가 부산해졌다. 성장을 확신하게 되고 그때부터 한국 사람들은 기독교의 세계 선교의 현장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기 시작했다. 가진 것을 나누고 얻은 경험을 공유하려는 의지를 지구촌에 전하기 시작했다. 세계인들은 한국은 이젠 은자의 나라에서 선파(宣播)하는 나라로 (from a hermit country to the heralding country)바뀌었다고 칭송을 보냈다.

88올림픽과 월드컵 축구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한국인은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경제가 성장했고 세계로부터 많은 새로운 별칭들을 얻어 냈다. 세계 2차 대전 후에 나타난 새로운 자이언트, 후진국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성공시킨 최초의 나라, 최빈국에서 부강 대국으로 진입한 유일한 나라, 현대 세계사의 모든 환난을 다 극복해 낸 유일한 나라 등등 놀랄만한 별칭이 따라붙었다. 우리가 우리를 겸손하게 보수적으로 보아도 사실 놀랄만한 역사를 썼으며 당장도 그런 기록 달성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도 당면한 세계 경제의 어려움을 제일 먼저 돌파 해 낼 것이라는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어 또 다른 역사를 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문화의 창달, 과학의 발달, 경제의 성장, 스포츠의 기록들, 한류의 진행 등등 자랑꺼리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 특성을 높이 산 캐치프레이즈가 다이내믹 코리아이다.

3. 차분함과 다이너미즘은 상충인가?

사실 우리의 지난 경력은 돌파력이 돋보이고 역동적이었다. 우리의 핵심 캐릭터를 잘 나타낸 경구로 동의 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단일의 컨셉트로 확정하기엔 좀 저어되는 점도 없지 않다. “다이내믹”을 내세우고 보니 선택과 집중, 빨리빨리, 파이팅 이 세 단어가 연상된다. 단축 성장과 치열한 세계 사회에의 진입과 선진을 위해선 이 세 마디 구호는 매일 복창하는 외침이었다. 우리의 가치였고 행동 요령이었다. 남들이 달성할 수 없는 분명한 결과도 나왔고 성적도 올랐다.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한편 갈무리되지 아니하고, 끝마감이 거칠고 차분하지 않은 처신들이 연상되어 뒷맛이 찜찜하다. 간과한 것도 작지 않다. 이미 치열한 전투적 사회로 들어서고 말았다. 유연성이 결여 되었으며, 이기기 위해 반칙도 참지 않으며, 재미도 없는 사회가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갈등 조정을 하지 못하며 조정자도 모자란 경직된 사회, 선하고 칭송 받는 패자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로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더티 플레이도 합리화 하는 철면피도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진 자(패자)에게 회복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비정한 능력사회다.

이런 사회 특성을 승자 측면에서 관찰 한 아이디어가 “다이내믹”이라고 한다면 매우 두려운 구호이다. 승자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루서가 되버리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타협이나 합력도 훈련하지 않아 잘 모른다. 선한 게임을 룰에 따라 페어플레이 하는 노력이 폄하되고, 반칙왕이 박수 받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인다. 게임 룰 파괴가 능력으로 칭찬되기도 하는 요란하고 분요한 다이너미즘으로 굳혀질 듯하다.

모든 곳에서 파이팅을 외친다. 승복하지 않는 경쟁, 끝없는 싸움이 이어지다 모두가 패하고 마는 결과를 내기도 한다. 우리의 다이너미즘에는 치밀하고 차분하게 준비된 디자인이 보이지 않는다. 옳은 선택과 바른 집중, 절차와 순서를 존중하는 빨리빨리, 선한 파이팅, 그리고 함께 승자가 되는 건전한 재미를 상기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차분함과 다이너미즘은 양립할 수 없는 딜레마가 되어버렸다.

요즘 우리 사회에 국격(國格)이란 새 낱말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개개인에게 인격이 있듯 나라에도 국격이 있으며 고상하고 수준 높은 품성을 선양해 내야한단다. 때 맞은 옳은 착안이다. 돈 많다고 고매한 분으로 높임 받는 것이 아니라 받을 만한 품성을 갖춘 분이 칭송 받듯, 나라도 그만한 국격이 갖추어졌을 때 존경 받는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국격 높고 고상한 나라로 높임 받으려면 차분한 다이내믹 코리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보다 유연하고, 보다 친절하며, 보다 재미있게 게임 룰을 지키며 페어플레이 하는 나라라야 한다. 차분한 다이내믹 코리아는 무리한 스로간일까?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