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호]

평화공존 통일이란

글 / 南時旭(남시욱 언론인, 고려대 석좌교수)

두 체제 인정한 통일조항

6·15 평양공동선언 제2항의 통일조항은 채택경위와 그 내용의 애매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항이 최종적인 통일 때까지 남북한이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은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된다. 즉, 남북한의 두 정상이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공통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는 제2항이 말하는 '공통성'이란 다름 아닌, 2체제·2정부의 현실인정, 다시 말하면 남북 양 체제의 상호인정과 과도적인 평화공존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난 1972년의 7·4 공동성명이나 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와는 달리 이번 평양선언은 북한의 새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최초의 정상회담에서 이룩된 합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는 지금까지 아버지의 유훈(遺訓)통치에서 못 벗어나는 2세 권력자로만 인식되었는데 지난 6월 13?15일까지의 평양회담과 지난 8월 12일 이번 남한언론사 사장단과의 만남에서 거침없이 쏟아놓은 말들을 살펴보면 그 나름의 독자적인 실용주의적 측면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통일문제를 남북정권이 모두 체제유지를 위해 이용했다고 말한 파격적인 발언이나 노동당 강령에 과격하고 전투적인 표현이 많다고 인정한 것은 김일성 시대의 정책을 그가 독자적인 눈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일전선전략, 포기인가 계속인가

그렇기는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남정책이 종래의 노선에서 완전히 전환했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북한이 지금까지 연방제를 제의한 이면에는 연방제로 통일이 되면 미군은 자동적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기회로 남조선혁명을 일으켜 2단계 적화통일을 하려는 전략이 숨어 있었다. 이것이 북한당국이 말하는 '평화통일'이었다.

문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러한 통일정책방식을 답습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포기한다면 남조선 혁명을 위한 통일전선전략을 포기해야 한다. 얼마전의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한 남한지도자들과 조선일보 기자 입국금지 및 이 신문에 대한 협박사건 이후에도 북한의 태도에는 큰 변화의 조짐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남한언론사 사장단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국가보안법 개정문제는 남한의 내부문제라고 명확히 밝힌 것 등 몇 가지 발언은 이와는 반대되는 징조이다. 그의 태도는 지금 혼란을 보이고 있다.

호기 왔다고 보는 남한 좌익세력들

그러나 남한내의 좌익세력들은 입장이 분명하다. 평양공동선언을 그들에게 유리하게만 해석한다. 그들은 평양선언으로 통일의 기회, 특히 그들에게 유리한 통일방식이 실현될 것으로 판단한다. 이들 친북 세력들은 평양공동선언이 이를 위한 '담보물'이라도 되는 듯 이것을 꼭 관철시키기 위해 분위기 조성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은 양 체제의 상호인정과 평화공존이 분단의 항구화를 가져올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지 않고, 과거식으로 긴장완화만 되면 주한미군의 철수와 남조선혁명에 유리한 조건이 조성될 것으로 본다. 그들은 지금 남한의 “보수수구세력이 일대타격을 받고 뿌리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본다. 따라서 이 기회에 보수수구세력을 일차적인 고립 척결의 대상으로 하여 이들을 무력화시킨다는 투쟁방침을 마련했다.

해마다 광복절을 맞아 평양에서 통일축전을 벌이던 범민련이 이번에는 남북 해외 지역별로 대회를 치르기로 한 것은 북측 위원회의 요구로 결정된 사항으로 알려졌었다. 이번 8·15에 이들 세력은 정부에서 원천봉쇄하지 않은 덕택에 독자적인 통일축전을 벌이고 연방제를 주장했다. 가두시위만은 불허했기 때문에 경찰과 충돌을 벌였다.

그런데 이번 방북 언론사 사장단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말한 것은 흥미롭다. 그는 금년도 범민련 평양대회를 자신이 금지했다고 밝힌 다음 “북남 합의를 모두가 힘을 합쳐 이행하면 되지, 무슨 단체를 두고 친자식과 의붓자식이 따로 있다고 하면 안됩니다”고 말했다. 이것은 금년도 평양축전 금지배경을 설명한 것이지만, 일부에서는 남한내의 범민련 조직 자체에 대한 그의 인식변화라는 견해도 있는 만큼 과연 어떨지 두고 볼 일이다.

남조선혁명 지원 중단해야

그 동안 국내여론은 극단적으로 양분되었다. 평양공동선언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와 이에 불안감을 느끼는 분위기가 뒤섞여있다. 특히 보수층 안에서는 미군의 독극물 한강방류사건 등으로 촉발된 반미투쟁과 김대중 정권의 장기수 송환결정 등에 비판이 고조되었다. 국가보안법은 이미 사문화 되다시피 했고, 간첩 등 공안사범이 '민족의 대화합' 차원에서 사면을 받는 사태가 일어났다. 미전향 장기수라고 불리는 남파간첩들이 당당하게 북한에 돌아가게 되었고 좌익사범들이 사면을 받게 되면 어느 측이 고무를 받게 되는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김대중 정부가 반미감정을 방치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금까지 북한정권의 남한에 대한 파괴전복활동은 간첩파견과 고첩조직의 지원이외에 지하당인 남민전(한국민족전선)과 지금은 공개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등 친북단체에 대한 고무격려형태로 나타났다. 순수한 국내의 자생적인 친북조직은 남한사회의 문제이지만 이들 단체의 활동을 북한측이 지원하여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명백한 파괴전복활동이다.

평화공존을 위해서는 남북사이에 두 번 다시 전쟁이 없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상호간 상대방의 체제를 내부적으로 파괴하는 간접적인 침략행위도 당연히 없어야 한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이번 평양선언과 달리 상대방에 대한 파괴·전복 등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않기로 규정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것을 북한으로부터 재확인 받아야 할 것이다.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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