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호]

感性的접근 위험하다

글 / 李東和(전 서울신문 주필)

걸핏하면 反統一로 매도당해

지난 6월 중순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가 보여 주고있는 대북(對北)자세는 이성보다 감성이 지배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광복절을 전후하여 남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산가족의 눈물겨운 상봉은 이러한 감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요즘 TV등 일부 매체를 보면 마치 눈앞에 통일이 닥친 것 같고, 남북간의 진정한 화해를 위해 잘 해보자는 의미에서 속도에 제동을 걸거나 충고를 하면 급진세력은 물론 일부 집권세력으로부터도 느닷없이 ‘反통일’로 매도당하기 십상이다.

이러니 통일 환상(幻想)을 부풀리거나 북한을 변호하는 인물들은 제세상을 만난 듯이 활개를 치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많은 지식인과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침묵 속에 방관자가 되거나 뒷전에서 불만을 삭이고있다. 국가의 앞날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야당 총재의 충고마저 집권세력이 귀담아 듣기는커녕 벌떼같이 들고일어나는 판이니 ‘분단고착세력’이라고 누명 아닌 누명을 쓰게 될까봐 전문가들은 한껏 몸을 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수십 년간 경험을 쌓은 대남 전문가들이 남쪽의 의도를 꿰뚫고 앉아서 기본 전략은 고수한 채 변화무쌍한 전술을 구사하는데 비해 우리는 상대의 의도를 정확히 읽지 못하는 가운데 전문가들마저 도태되거나 뒷전에서 침묵하고 있으니 남북관계가 과연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 우려된다. 6·25 남침에 대한 문제 제기조차 못하고 통일 주무장관이 “북에 국군 포로는 없다”고 하는 등 국가와 국민의 자존심을 생각지 않고 무작정 북한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사례들이 속출하는 것은 상대의 전술에 말려 든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우리외투 벗겨지면 本末顚倒(본말전도)

정부가 이러니 급진 세력들의 행태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여러 대학과 일부 세미나 장에 인공기(人共旗)가 등장하는가하면 미군철수 주장과 반미투쟁이 우려할 수준에서 진행되는 등 ‘통일’만 앞세우면 무슨 짓을 해도 되는 것처럼 분위기가 돌아가고 있다. 대통령이 ‘반미’에 대해 잘못이라고 지적해도 일부의 반미 기조는 그대로 가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외신과의 회견에서 ‘통일 후에도 미군주둔’을 얘기했기 때문에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급진세력의 미군철수 주장은 잠잠해 질 것이라는 비아냥 섞인 전망이 맞아떨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만약 북한 지도자의 말에 열광하고 순종하는 세력이 대한민국 안에서 일반에 감지될 정도로 눈에 띄인다면 이는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일시적이고 감상적인 것이라도 말이다. ‘햇빛 정책’이 북한의 외투를 벗겨야지 우리의 외투를 벗기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이를 바로 잡으려면 정부부터 ‘남북은 같은 민족’이라는 감상론에서 한 걸음 벗어나 보다 이성적인 차원에서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우선 국론을 제대로 모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올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나가야 할 것이다. 국익을 생각하고 자존심을 지켜보려는 온건한 다수의 의견이 ‘반통일’로 일방 매도되는 분위기를 타파해 주는데서 그 꼭지를 따는 것이 좋겠다.

사실 남북 정상회담의 본질은 평화 공존이다. 이는 엄밀하게 말하면 통일과는 다른 개념이다.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염두에 두고있을지라도 현실적으로는 남북이 싸우지 말고 각각 현재의 체제를 유지한 채 서로 협력하며 살자는 것이다. 南은 北을 경제적으로 돕고 북은 대남 군사위협을 실질적으로 거두어 남북이 평화와 협력 속에 공존 공영한다는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돈으로 평화를 사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에 경제적 도움을 성의껏 해주려는 자세가 되어있다고 믿는다. 국가 경제의 회복도 아직 완전치 않고 도와줘야 할 국민도 많은데 이를 외면하면서까지 북한의 체제유지를 도와줘야 하느냐는 일부 국민의 완강한 반대와 불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태도는 확고해 보인다. 그러나 북한으로부터 얼마나 확고하고 구체적인 평화 보장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과거 ‘6·25’종전 이후의 역대 정권에서 전쟁은 없었지만 전쟁에 대한 불안은 있었다. 이런 불안 마저 말끔히 씻을 수 있는 확고한 보장을 받는 일은 막대한 액수의 경제협력 대가로서 당연한 만큼 보다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해내야 할 것이다.

급하게 먹는 밥에 체하기 쉽다

남북문제에 관해 할 말이 많지만 정부에 대해 몇 가지만 더 주문하고 싶다. 첫째 과거의 잘못된 일에 대해 진실은 제대로 밝히고 그 처벌은 역사에 맡긴다는 ‘국민의 정부’의 원칙을 정권적 차원에서 민족적 차원으로 확대 적용해달라는 것이다. 남북간의 가장 잘못된 과거는 바로 6·25동란이 아닌가.

둘째 너무 급하게 성과를 얻으려고 서두르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과거 노(盧)정권 때 북방외교의 성과에 조급한 나머지 헝가리 구소련 등에 막대한 액수의 경제협력을 한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임기 내에 무엇을 꼭 이루어야 되겠다는 조급증이 없었다면 곧 이은 소련의 붕괴로 돈 안들이고 수교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북한의 개방도 이제 어쩔 수 없는 대세로 보이지 않는가.

셋째 남북문제의 국내정치 이용을 적극 배제해달라는 것이다. 오히려 야당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고 활용하는 것이 국론의 결집과 협상성과를 도출해 내는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사실 남북 정상회담 성사가 지난 총선 3일을 앞둔 시점에서 발표되었다는 사실자체가 본질을 얼마간이라도 훼손했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국민적 공감대를 모으는데 다소의 어려움이 있었고 조급한 추진에 방해가 되는 목소리를 ‘반통일’로 몰아가는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된다. 또 감성적인 이벤트로 실체 없는 통일무드를 띄우는 북의 전술에 말려든 감도 있다. 남북관계에 있어 지나친 감성은 많은 위험부담을 안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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