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호]

왕회장의 結者解之(결자해지)

글 / 閔丙文(민병문 내외경제신문 주필)

일에는 늙음이 없다더니…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건강이 별로 안좋은 모양이다. 1915년생, 우리 나이로 86세니 세월은 속일 수가 없다.

지난 98년 출간된 정 회장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 표지에 발췌한 글을 보면 그는 아직 젊었다.

‘일꾼으로서 나는 아직 늙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일에는 늙음이 없다. 최상의 노동자에겐 새 일감과 순수한 정열이 있을 뿐이다.’

얼마전 현대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 계동 근처 한식집에 저녁 약속이 있어 갔다가 문간서 멀지 않은 골목길에서 집안에 문제가 좀 있다고 잠시 입장을 저지 당한 일이 있었다. 안면 있는 종업원이라 웃으며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라도 나왔는가’ 묻자 그는 도리질을 했다.

한 5분쯤 할 일없이 서있는 사이 검은 캐딜락 ‘에쿠스’가 몇대 나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는 입장 허용. 식사 중 이유를 물어도 좀처럼 대지 않더니 술이 몇순배 돌아가자 누군가 귀띔을 해줬다.

현대 왕회장이 아들과 식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게 왜 입장 불허 사유가 되는가 캐묻자 왕회장이 잘 걷지 못하는데 그런 모습을 외부인에게 보이고 싶겠는가 되물어왔다. 그렇다. 북한을 왕래하는 그의 최근 TV 영상 모습을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됐다.

순간 30년전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건너편 얕으막한 각진 낡은 빌딩 구석방에서 초기 현대건설 사장으로서 그를 인터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패기만만했었다. 그리고 오늘의 세계적 대기업집단을 형성했다. 그러나 세월의 부침을 어찌 인간이 막으랴.

10년 전쯤 기회가 있었건만

현대그룹이 당면한 유동성 위기는 한국경제 우환의 한복판에 있다. 가까스로 외환위기를 벗어나자 작년 이맘때는 대우그룹이 좌초했고 올해는 현대가 휘청대고 있다. 대우처럼 그룹 전체가 아니라 건설만의 문제이고 중공업, 전자, 증권, 자동차 등 수익성 높은 계열사가 많아 만기 도래하는 건설의 은행빚을 연장만 해준다면 큰 탈이 없을 것이라고 당사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시장이 그 말을 잘 믿지 않는 게 큰 짐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그동안 이 정부와의 좋은 관계를 의식해서인지 계열사 분리, 구조조정에 등한했고 거기다 형제간 경영권 다툼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다. 주주보다는 기업, 기업보다는 소유주에 집착하다 시장의 불신을 샀다.

이제 왕회장이 마지막 현명한 판단을 할 시점이다. 바람직하기는 10년 전에만 아들과 삼촌들간의 재산 정리, 기업 정리를 했어도 오늘의 화근은 싹이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심신이 말짱할 때 후계자 선정을 해놓았어야 했다.

물론 그의 판단이 늘 옳지는 않았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사위인 정희영 전 현대종합상사 사장과 사업상 결별할 때 “내 판단 중 7할이 맞았기 때문에 오늘의 현대를 이룬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위를 일찍이 내쳤었다.

LG 구자경 명예회장의 경우

불행히도 3할의 틀린 판단 중 세월과 그의 신체적 노쇠의 상관관계가 들어간 셈이다. 그런 점에서 LG그룹의 구자경(具滋暻) 전 회장은 모범이 될 만 하다.

그는 70년 1월 선친의 타계로 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다 선친이 일으킨 낙희화확에 50년 입사, 20년만에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3촌들이 추대하는 형식으로 그룹 수장이 된 것이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95년초 과감히 맏아들 구본무(具本茂)에게 회장직을 남기고 일체의 경영일선에 물러났다.

당시 그의 나이 71세, 현대 정 회장보다 꼭 10년이 젊은데 은퇴는 15년 이상 앞선 셈이다. 그에게 은퇴가 일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퇴임 전부터 틈틈이 손을 보던 난초 기르기에서 요즘은 버섯연구에 흠뻑 빠져있다. 이를 위해 성환 소재 연암축산원예대학에 자주 간다. 자신의 호를 따 만든 대학에서 교수들과 머리를 맞대고 버섯연구에 몰두, 양질의 팽이버섯, 만가닥버섯, 새송이버섯 등 다양한 품종의 개량에 열을 올린다.

그는 또 매주 월요일 여의도 LG트윈타워에 출근, 그가 관장하는 문화, 복지재단과 연암학원 등 공익재단의 업무를 챙긴다. 지난 4월에는 평택시 ‘북부종합사회복지관’ 기공식에 참석하고 청주시 ‘서부종합사회복지관’ 개관식에 참석하는 등 복지 문화사업 쪽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결국 왕회장이 풀어야할 매듭

생전에 후계자 선정을 끝낸 참기업인의 원조 격으로 유한양행 창업자인 유일한(柳一韓) 박사를 잊을 수 없다.

유 박사는 9살 때인 1904년 대한제국 순회공사를 따라 도미, 고학으로 미시간대학을 졸업하고 26년 귀국해 제약회사인 유한양행을 설립했었다.

당시에 불모지였던 제약업에 나서 국민 건강사업에 이바지한 공로 이외에 그는 탁월한 경영력으로 기업을 건전히 키웠다. 62년 주식공개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추진하고 이때 후계자를 자식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맡긴 것이다.

현대의 정 명예회장은 쌀가게를 소유하고 났을 때 이게 내 재산인가 느꼈을 뿐 그 이상 기업이 커지면서 자신의 재산이라는 소유감정이 들지 않았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 말이 진실임을 지금처럼 위기에 빠졌을 때 보여주는 게 정 회장답다.

정주영 씨의 인생은 유일한 씨보다도 더 파란만장했다. 고려대학교 건축공사 인부로 출발해 오늘의 부를 이룬 마당에 무엇을 더 주저할 것인가. 알렉산더대왕은 죽은 뒤 자기 양손을 관밖에 나오게 해달라고 유언했다. 죽으면 빈손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서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한다. 현대그룹의 위기는 창업자인 정 명예회장이 풀어야 한다. 과감한 구조조정, 자구노력, 계열분리밖에 방법이 없다. 아름다운 끝맺음이 가능하도록 아들들도 우애를 되찾고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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