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호]

경기논쟁 할말 있다

글 / 溫基云(온기운 매일경제 논설위원, 經博)

경기를 보는 다른 시각들

요즈음 국내 경기예측기관이나 전문가들 사이에 우리나라의 경기정점이 이미 지났을 가능성이 있다느니, 경기정점이 아직 멀었다느니 하는 견해들이 엇갈려 표출되고 있다. 특히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7월에 발표한 경제전망 자료에서 경기정점이 올 1/4분기중 이미 통과했을 수도 있다고 한데 대해 국가기관인 통계청이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나서 경기논쟁이 보다 가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전국경제인연합회나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기업에 설문조사해서 작성·발표하는 기업실사지수(BSI)에 의하면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이미 상당히 냉각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기관마다 경기에 대한 진단이 다르다면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경기를 판단해야 할 것인가?

경제상황은 동일한데도 경기에 대한 판단이 이처럼 제각각인 것은 경기를 판단하는데 사용하는 잣대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과 관련해 우리는 경제전망기관들이 사용하는 잣대가 과연 현실경제를 어느 정도 정확히 반영하는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만일 잣대가 정확하지도 않은데 이를 가지고 경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다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통계청 등 각 기관들이 경기정점이나 저점을 판단하는 잣대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소위 경기동행지수(Coincident Index)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1968년 미국의 NBER(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가 경기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개발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용, 생산, 투자, 수출입 등과 관련된 10개 구성요소를 종합해 통계청이 매월 작성·발표하고 있다.

이 지수를 가지고 경기국면을 파악할 때는 구성지표의 월별통계자료에서 계절적 요인과 천재지변이나 사건과 같은 불규칙 요인을 제거하고, 또 중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따라 변동하는 추세적 부분을 제거해 만든 이른바 ‘동행지수순환변동치’를 사용하고 있다.

국가별 경기지수 항목이 다르다

이에 입각해서 보면 우리나라 경기는 98년 8월에 바닥을 통과한 후 현재 70년대이래 7번째 확장국면에 놓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그동안 뚜렷하고 깨끗한 상승세를 보여왔던 이 지수의 순환변동치가 올 들어 5월까지 매월 하락세를 지속하자 이를 보고 경기가 정점을 지났다고 판단하는 기관이나 전문가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 순환변동치가 6월에 다시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자 통계청이 우리나라 경기가 잠시동안의 조정기를 마치고 다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하게 된 것이다.

경기동행지수에 포함되는 노동투입량, 산업생산, 제조업가동률, 생산자출하, 전력사용량, 도소매판매, 비내구소비재출하, 시멘트소비, 수출입 등 10개 지표는 거의 모두 제조업과 관련된 지표들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산업생산에서 차지하는 제조업의 비중이 20%대로 낮아지고 서비스업은 50%대로 높아지는 등 산업구조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 제조업 중심으로 되어 있던 산업구조를 반영해 개발된 동행지수의 구성항목을 재편하지도 않은 채 이를 언제까지나 경기판단의 지표로 활용하는 것은 분명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과 관련해 국가 간에 경기동행지수의 구성항목이 다르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사항이다. 즉, 같은 경기라도 어느 나라의 잣대를 활용하느냐에 따라 진단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많은 나라들도 현실경기를 되도록 충실히 반영할 수 있도록 동행지수 구성항목의 개편을 시도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경기지표 개선 필요하다

제조업에다 서비스업까지를 포함한 보다 광범위한 경기를 판단하기 위해서 국민경제의 총체적인 활동수준을 나타내는 실질GDP(국내총생산) 증가율, 즉 실질경제성장률을 또 하나의 잣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실질경제성장률을 전분기와 대비해 살펴볼 때 작년 2/4분기 이후 하락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경기조정을 나타내는 것인지 하강을 나타내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충분하고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최근의 경제성장률 하락은 과거 높은 성장률에 대한 조정현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성장률이 물가면동은 고려하지 않고 실질측면에서만 주로 계산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매출액이나 수익, 비용 등과 같은 명목변수에 신경을 쓰면서 행동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업종별 경기와 관련해서도 내수나 수출물량이 아무리 늘어도 단가가 크게 떨어지는 경우라면 기업들이 경기가 좋다고 느낄 리 만무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에 대한 실사조사 결과인 BSI와 현실의 지표경기에 괴리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BSI에는 기업들의 자금사정이나 단가 및 채산성 등이 반영되어 있다. 전경련이 최근 6백개 기업을 대상으로 작성한 BSI에서 기업들이 체감경기가 크게 나빠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은 바로 자금난과 채산성악화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완전한 경기판단의 잣대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므로 현행 경기관련 지표를 개선·보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만약 실제 우리나라 경기가 정점을 통과하지도 않았는데 정점을 통과한 것으로 잘못 진단한다면 기업과 일반국민들은 잘못된 진단에 따라 투자와 소비를 줄이게 돼 경기하강이 당초보다 빨라질 염려가 있으며 증시도 정도 이상으로 침체될 수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확장정책을 취함으로써 경기과열을 야기하고 물가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

설사 현재의 잣대가 완전하다 할지라도 경기정점이나 저점은 이것이 실제로 나타난 1?2년후 그 당시의 여러 가지 통계자료와 경제상황이 충분히 고려된 바탕위에서 확정되므로 아직 어느 기관이 맞고 어느 기관이 틀리다고 단정할 수 있는 단계는 물론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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