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개혁에 대한 인간반응

글 / 趙重完(조중완 사회경영전략 연구원 회장)

개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개혁은 두 가지 국면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하나는 기계, 제품, 공정, 절차, 방식, 시스템, 사물 등 하드웨어, 또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영향으로서 이를 기술적 변혁이라 한다. 또 하나는 이들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영향으로서 이는 사회적 변혁이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사회적 영향이 없는 기술적 변혁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기술적 변혁도 숙명적으로 얼마간의 사회적 변혁을 수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변혁은 기술적 변혁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지위, 습관, 신념에 대한 일종의 위협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중요한 ‘삶의 방식’이 있고 그것이 침해되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게 마련이다. 사회적 변혁은 중대한 트러블 메이커이다. 그러므로 개혁을 추진할 때는 기술적 변혁 이상으로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변혁의 본질을 철저하게 분석,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개혁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매우 복잡하다. 그 반응은 인간이 속해 있는 ‘사회’로부터 영향받은 수없이 많은 습관이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것을 이해하는데는 문화(Culture)에 대한 인류학적 사고가 도움이 된다.

인류학자는 문화를 “인간의 집단(사회)에 의해서 공유되고 사회에 새로 편입되는 신참자가 순차적으로 학습하는 신념, 습관, 관례, 전통의 집적이고 학습된 행동의 집합이다.”라고 정의한다. 문화는 인간의 습관, 신념, 전통 등이 단순히 뒤섞여 있는 집합이 아니다. 옷감처럼 정교하게 직조된 조직적 집합이다. 한 요소가 동요되면 다른 많은 요소에 영향을 미친다.

문화유형과 시대상황

문화의 요소 중에는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가를 구분하는 가치척도가 있다. 여러 문화는 각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많은 비극이 그 차이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인종, 종교, 국민이 다르면 문화적 차이가 현저하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산업에도 분명한 문화적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문화유형은 구성원에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스스로 그것을 변혁하려 하지 않는다. ‘개혁에 대한 저항’은 주로 기술적 변혁이 수반하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저항이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제재소의 목공들이 수력제재공장을 재삼, 재사 파괴했고, 마찬가지로 19세기의 직공들은 동력화된 직물기계를 파괴했고, 미국의 유조차 운전사는 펜실베니어 유전지대에 처음 출현한 송유관을 파괴했다.

역사적으로 개혁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은 20세기를 거처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똑같은 양상으로 계속되고 있다.

한 문화적 집단이 어떤 위협에 직면하면 반사회적으로 반응한다. 지식인, 과학자, 박사들의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통치자가 압도적으로 강력한 정치적, 경제적 힘을 구사하던 시대에도 폭동이나 기계파괴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저항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물며 오늘날의 통치자는 과거와 같은 압도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제는 저항을 쳐부수거나 밟아 뭉갤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보다 진보된 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에 ‘개혁에 대한 저항’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중요한 사실은 모든 사회에는 예외 없이 인식가능한 문화유형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문화유형이란 보편적인 것이고 인간이 생활하고 있는 곳에는 어디나 존재하는 것이다.

죽음과 맞서 투병하는 암환자의 진료조차 거부하는 의대교수들의 반사회적 집단행동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들의 사회도 여러 문화유형 중 하나에 불과하고 어찌 보면 그들도 단순한 인간의 집단임을 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달라야…

개혁을 설계하고 추진하는 사람은 첫째, 나와는 전혀 다른 습관, 신념, 전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개혁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개혁의 명분이 아무리 정의롭고 합리적이고 합목적적이며 매우 시급하다고 해서 그들도 전적으로 동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더더욱 의료인은 독점적 지식과 지위, 권능을 사회로부터 부여받고 존엄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에 일반직종의 종사자와는 달라야 된다거나 다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부터가 잘못임이 작금의 의약분업사태를 겪으면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생명의 등불이 꺼져가는 암환자의 수술을 거부하고 집으로 쫓아내고는 집단시위현장으로 달려가는 의대교수들의 모습에서 히포크라테스의 윤리관은 이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붉은 머리띠 둘러매고, 선도자의 도전적이고 이상야릇한 팔짓, 몸짓에 따라 격렬한 구호를 외쳐대는 집단시위장에는 편작(扁鵲)도 허준(許浚)도 슈바이처도 없다. 그곳은 오로지 불법적 집단시위와 털끝만큼도 다를 바 없는 현장이 있을 뿐이다. 지도부의 삭발까지 어쩌면 그렇게도 닮았는가.

둘째, 내가 주장하는 기술적 변혁의 사회적 영향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어떤 신념이 부정되고 어떤 습관이 변혁되어야 하고, 어떤 태도가 도전 받는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수록 불가피한 저항을 대처함에 있어서 대응이 보다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개혁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기술적 변혁에만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개혁의 영향을 받는 문화집단에 대해 알면서도 사회적 변혁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강제하고 있는 사회적 변혁의 진실이 무엇인지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를 진정으로 그들의 입장에서 파악하고 있는지 원점에서 다시 냉철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능력없이 의욕만 앞서는 것보다는 차라리 능력도 의욕도 없는 편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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