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호]

테헤란밸리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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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李完宇(이완우 환경일보 편집국장)

코스닥시장은 몰락할 것인가?

금융부분의 구조조정이 매듭 되기도 전에 잇따른 금융사고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한빛은행 부정 대출사건을 비롯해 은행직원들의 대형 금융부정사고와 최근에는 신용금고회사의 불법 대출사건이 금융계의 불신을 더욱 가중 시켰다.

벤처기업인 한국디지탈라인(KDL) 정현준 사장이 불법 대출 받은 6백여억원 중 4백여억원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이 돈의 상당 부분이 정·관계로 유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동방, 대신상호금고 불법대출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 사건을 기화로 정치권은 ‘여권 커넥션’설이 어느 정도 신빙성을 지니고 있다는 야당의 공방과 여권의 반박이 또 다른 정치공세로 이어지고 있고 손해를 본 투자자들은 증시 침체국면에 아연실색하고 있다.

힘차게 출발했던 국내 벤처산업이 불과 몇 년만에 이렇게 엉망이 된 것은 정부의 잘못된 벤처정책과 사이비 벤처기업인들의 비뚤어진 인식, 그리고 투자자들의 한탕주의 관행이 어우러진 결과다. 정부가 벤처기업 육성에 외적 성과에만 급급한 나머지 과잉 투자로 수조 원을 쏟아 부었고, 그것도 모자라 기업 인수·합병(M&A)펀드까지 조성하는 기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여기에다 코스닥 붐이 맞물리면서 ‘벤처=대박’이란 그릇된 인식이 확산됐고, 일부 벤처기업인들의 도덕적 해이까지 확산되면서 벤처산업이 몰락 위기에까지 처해지고 말았다.

졸부의 꿈은 사라지고

정부는 증권시장의 경기부양과 실업대책의 일환으로 벤처기업을 육성할 방침을 세우고 이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 벤처산업이 붐을 이루면서 코스닥 시장이 과열됐고 투자자들은 벤처주식은 사기만 하면 주가가 폭등하는 재미로 묻지마투자에 여념이 없었다.

사이버 주식과 인터넷을 통한 실시간 연속 거래가 이뤄져 증권회사는 예년에 없는 수익이 늘어나 즐거운 비명을 올렸고, 지식산업을 기반으로 한 정보통신 생명공학 반도체 등 벤처기업의 주식이 코스닥시장을 주도, 상장되기가 바쁘게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상장된 벤처주식은 불티나게 소진돼 매수주문을 내도 주식을 살수가 없고, 사놓은 주식은 연일 상종가로 호황을 누려왔다. 코스닥시장에 참여하는 네티즌들은 하나같이 ‘대박’ 터지기를 기대하면서 졸부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재미를 부친 투자자들이 묻지마 투자로 객장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가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이들 기업을 과잉 보호 지원하고 있고 이들 주가가 거품으로 형성돼 조정 기에는 코스닥 주가가 폭락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과잉투자를 자제하도록 경고한 바 있다.

예상대로 코스닥 시장은 형성된 거품이 빠지면서 맥없이 무너졌고 벤처기업을 둘러싼 대출부정, 주가조작, 정치권과 연계된 권력형비리까지 연루돼 손해본 투자자들이 망연자실 하고 있고, 코스닥에 염증을 느낀 투자자들이 시장을 외면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일반기업들은 증권시장을 통한 유통자금이 순환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어왔다. 섬유, 건설, 철강, 조선, 비철금속, 조립기계 등 재래식 굴뚝산업은 지식산업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벤처바람’에 밀려 오금을 펴지 못했는데 코스닥시장이 무너지면서 장세가 더욱 악화돼 어려움을 겪고있다.

기술력 내실 더욱 키울 때

코스닥시장은 이대로 무너질 것인가? 대형사고로 인한 금융부실과 투자손실은 누가 보상 할 것인가. 정부는 한국디지탈라인이 벤처붐을 타고 20여 개의 기업을 신설 또는 매입 확장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차용한 금융부담과 사설펀드를 통한 사기성 자금조달 등으로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벤처기업 육성은 당초 예정대로 밀고 나갈 방침이다.

금융부실과 부실기업의 양산으로 나라부채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만 가고 있다. 국가부채는 상반기동안 6조원이상 늘어났으며 갚아야할 외채규모가 총 4백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초 국민 1인당 부채규모가 2백만원이던 것이 올해 말에는 1천만원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국민 부채규모가 늘어나는데도 정부의 대책은 전무하다. 구조조정이 매듭 되기도 전에 대형 금융사고는 계속 터지고 있고 이런 악순환으로 자본시장은 계속 침체국면을 보이고 있다.

98년 말 현재 2천42개의 중소벤처기업이 올해 2월 현재 5천5백46개로 급격히 증가됐다. 4·13 총선이후 이들 벤처기업의 잇따른 부도사태로 퇴조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생명공학 사이버벤처 이동통신 등 유망업종 몇몇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기술력이 없는 모방기업으로 살아남기 힘들다는 전망이다.

벤처신드롬이 극에 달해 벤처로 몰렸던 돈과 사람이 다시 벤처를 떠나고 있다. 주가하락과 적자경영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사이버 벤처, 한탕주의 벤처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이제 현실로 다가온 만큼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수익기반을 갖춘 벤처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3년 내에 절반 이상의 벤처기업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벤처열풍은 이미 과거의 허망한 꿈으로 변모했다. 인터넷 전문 여론조사 기관인 P&P리서치(대표 이은우)가 직장인 1천1백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의 80.8%가 ‘현재의 벤처 기업 중 절반이상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벤처기업이 기술력 부족으로 지속적인 성장성에 취약점을 나타내고 있고 ‘경제대안 성장가능성’은 17%에 불과하다.

최근 코스닥시장이 연속 하한가를 기록하는 장세를 일부 투자자들은 조정국면으로 자위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이미 끝이 보여 하향장세는 더 지속될 것으로 졸부의 꿈을 향한 지나친 과욕이 허망하게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가가 바닥세로 주저 앉았는 데도 전혀 매수세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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