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자연농원 지혜

그들 부부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3월 마지막 목요일로 기억한다. 벚꽃도 볼 겸 묻어둔 봄날의 추억도 있고 해서 이렇다 할 계획 없이 워커힐을 향했던 적이 있었다. 혼자였다. 이왕 나선 바에 아차산까지 올라가 볼 요량이었다.

아차산으로 이어지는 삼거리로 접어들었을 때 중년의 부부가 팔짱을 낀 모습으로 필자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중 유독 눈에 띈 부부였다는 말이 맞을성 싶다. 그 부부의 공통점이라면 첫눈에 보기에도 자기관리를 아주 잘 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점이었다. 평소 몸집이 가벼운 쪽을 선호하는 개인적 성향에 딱 맞는 부부의 모습에 유쾌함을 느끼며 별스런 생각 없이 그 부부의 뒤를 따라 걷게 되었다.

‘배철수’를 좋아하는 동질성의 대화

▲ 부부가 조심스레 호박잎을 들춰보는 모습.

송파와 바로 이웃한 광진에서 아차산 줄기를 따라 걷는다는 것은 흔하게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조금도 특별할 일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음악프로그램에 대한 얘기를 하며 걸어가고 있었는데 FM방송에서 음악을 진행하는 DJ 중 남녀를 통틀어 “배철수”를 가장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뒤로 정서적 동질감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필자가 다가가 먼저 물꼬를 텄다. 그들은 꽃구경을 겸한 등산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러저러 거의 30여 분을 함께 얘기하며 걷다가 셋이 나란히 앉게 되었다. 무심코 내려다본 발 밑으로는 진보랏빛을 머금은 제비꽃 꽃망울이 필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필자가, 고관대작의 저택에서 정원사의 손에 의해 피어나는 인위적인 꽃송이보다는 들길에서 자란 야생화의 질긴 생명력이라든가 고유의 아름다움에 가치를 두는 편이라고 말하자 그 부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격한 동감을 표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관계를 발전시켜주는 요소들이 더러 있겠지만, 또 개인에 따라 치중하는 바가 다를 수 있겠지만 동의와 동감을 표현해줌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상대방이 얘기할 때마다 그 게 아니라며 지적하는 사람이 주변에 늘 있게 마련인데 그런 사람과는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는 게 대다수의 보편적 심리일 것이다. 물론 중대한 사실을 바르게 밝혀야 할 때라든가 입장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는 있다. 단지 상대의 말에 습관처럼 부정적 반응을 드러내는 사람을 일컬음이다.

옹기종기 재활용품의 생활센스

그 부부와 필자는, 사는 곳과 이름, 직업과 나이, 가족관계 등등... 이를테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주고받는 수순을 자연스레 밟아갔다.

얘기를 듣고 보니 남편은 서울시 공무원으로 퇴직한지 6 년째 접어들었고 부인은 학창시절의 전공을 살려 동사무소의 자치센터에서 일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운동을 겸한 주 3회의 정해진 외출 덕분에 생활이 탄력적이고 즐거울 수 있다며 여자가 활짝 웃었다.

그러고 나서 남편이, 어릴 적부터 꽃이나 채소 가꾸는 일을 좋아해 집 옥상에 크고 작은 화분들을 옮겨놓고 작은 텃밭처럼 가꾸고 있으니 들러보고 가도 좋다고 했다. 아울러 취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되도록 많은 것을 협조하겠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4월, 5월이 지나가고 6월이 되었다. 서울 생활에서는 보기 드문 친절이라 여기며 고마움에 답례 차 수차례의 통화로 유대와 친근감을 이어갔다. 그때마다 여자의 경쾌한 목소리가 반가움을 더 해 주었고 진지함에 매료되어 꼭 한 번 가보겠다고 작정했었다. 그러나 좀체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크고 작은 일들이 잇달았다. 벼르고 별러 급기야 지난 6월 16일에 그 부부의 집을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 잘 정리된 창고안의 모습.

결혼 후 초기에 두 세 번 이사한 것 말고는 집을 장만한 이후로 지금까지 줄곧 한 곳에서 살아왔다는 그 부부의 집은 한마디로 부부와 자녀와 행복이 있는 “삼위일체”의 집이었다. 맨 처음 아차산 기슭에서 보았던 대로 부부의 외형은 물론 집안의 소품 하나하나까지도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는 생활의 달인들이었고 재활용의 효율성을 소리 없이 보여주었다.

500ml 짜리 종이 우유팩 4개를 함께 묶어 악세서리나 머리핀 통으로 이용하는가 하면 같은 크기의 음료수 캔 두 개를 하나로 붙여 필기구를 꽂아두었고 투명한 생수병은 목께를 오려낸 몸체에 두 개의 구멍을 뚫어 벽에 걸어두고 칫솔꽂이로, 그 외에도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의 재활용품이 곳곳에 보기 좋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제품은 시판되는 150개 들이 인스턴트 커피가 들어있는 단단한 박스인데 박스의 한 면을 책 크기에 맞게 잘라 이동식 책꽂이로 활용하는 센스가 정말 놀라울 지경이었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박힌 돌처럼 살다보니 하다못해 분리수거용 쓰레기봉투를 씌워놓는 케이스부터 사소한 물건들까지도 숫제 분신처럼 느껴져 쉽사리 버리지 못하는 생활습관이 몸에 배었다고 했다.

하늘과 닿는 옥상에 잘꾸민 자연농원

다분히 의례적인 방문이기는 했어도 필자가 너무 심하게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봄이 도를 넘어 자칫 무례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세세하게 돌아보는 필자의 관심에 자부심을 느끼며 그 점이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썩 넓은 편은 아닌 거실을 지나 작은 방을 건너갔다. 한쪽으로 나 있는 급경사의 연회색 층계를 조심조심 밟고 올라가자 옥상과 연결되었다. 옥상은 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질서정연하게 가꾸어놓은 섬세한 손길에 한순간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파릇파릇한 관상용 식물이며 채소, 원예작물과 여러 종류의 식용작물들을 차례차례 눈여겨보았다. 상추, 케일, 들깨, 고추, 호박, 강낭콩, 땅콩, 팥에서부터 제비꽃, 채송화, 맨드라미, 분꽃, 나팔꽃, 나리꽃, 찔래꽃, 코스모스, 산앵두, 청포도 할 것 없이 작은 화원을 옮겨놓은 듯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했다.

▲ 단비를 뿌려주다.

한 쪽으로는 창고가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뿌리고 남은 각종 씨앗, 식물들의 시든 잎을 따거나 그 몸체에서 떨어진 낙엽을 모아 만든 자연퇴비, 농기구 등등이 있었다. 창고 안은 흡사 TV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육군 병사들의 내무반을 연상시켰다. 어디를 보든 각이 제대로 살아있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창고의 벽면에는 창틀을 따라 직각으로 꺽어 호스도 연결해 놓았다. 스프링클러의 대용인가 보았다.

집안 분위기도 옥상에 꾸며진 자연농원의 모습도 완성도 높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시청이나 구청에 근무했던 35년 동안 핵심 부서를 두루두루 거친 이 나라의 공무원이, 그때나 이때나 한결같이 독야청청할 수 있다는 사실에 국민 한 사람의 입장으로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사리사욕 없이 참행복으로 살아가고 있는 터에 자연이 함께 하니 금상첨화일 것이었다.

도시 속의 자연인이 틀림없다는 소감이었고 우연치 않게 만난 청백리의 생활상을 과감 없이 볼 수 있었음이 뭣보다 큰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우리나라의 동사무소, 구청, 시청이 면목동에 사는 라우정님 같은 청렴결백한 공무원들로 가득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79호(2014년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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