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장군, ROTC 출신 첫 합참의장

‘군인 김진호’ 자서전
안보는 국민생존 현실
김진호장군, ROTC 출신 첫 합참의장

합창의장을 지낸 김진호 장군의 자서전 제목이 ‘군인 김진호’(초록문 출판)이다. 군 출신이 구태여 ‘군인’을 말 했을까. 비록 전역했지만 영원한 군인정신을 말하고 싶은 직업군인의 충정일 것이다. 김 장군은 현역생활 35년을 마감하고도 안보선진화포럼 이사장으로 “국가안보에는 여야가 없다. 국가와 국민의 생존이 있을 뿐이다”라고 강조한다.

각급 야전지휘관 거쳐 합참의장

군인 김진호는 1964년 ROTC 2기 육군소위로 임관하여 최고계급 대장에다, 최고위직인 합참의장으로 전역했다. 첫 부임지는 강원도 양구의 2사단 전방 소대장이었고 베트남전 참전을 거쳐 각급 지휘관을 역임한 후 37사단장, 제2군사령관에 이어 합참의장을 끝으로 명예로운 현역복무를 마쳤다.
김 장군은 고대 사학과에 다니면서 럭비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니까 역사학도로서 야전지휘관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확고한 역사의식과 국가관을 앞세워 주어진 직무에 최선을 다해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김 장군은 1986년 육군 제3사관학교 참모장 시절부터 ‘현대사 왜곡과 국가안보’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여 계속 수정판을 거듭하면서 교재로 사용토록 했다.
그 뒤 사단장, 군사령관을 거쳐 ROTC 출신의 첫 합참의장으로 강력한 지휘력을 발휘하여 군기가 살아있는 군을 통솔할 수 있었으니 성공한 군인상을 남겼다.

노태우 대통령과의 각별한 인연

군인 김진호는 야전지휘관을 거쳐 육군대학을 졸업한 후 육본에 근무하면서 장세동 중령을 직속상관으로 모셨다. 당시 장 중령은 치밀하고 엄격한 성품에 충성심 강한 ‘의리의 사나이’로 비쳤다.

▲ 합창의장을 지낸 김진호 장군

노태우 대통령과의 인연도 각별했다. 김진호 중령이 5사단 35연대 대대장으로 부임할 때 사단장이 육사 11기 출신의 김복동 소장이었다. 이 때 청와대 경호실 작전참모장이던 노태우 소장이 처남인 김복동 장군에게 “내가 아끼는 부하이니 잘 보살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 뒤 수도경비사령부 30단 부단장 시절에는 노태우 사령관을 직속상관으로 모셨다.
1979.10.26. ‘국변의 날’에는 일찍 퇴근했다가 밤 9시경 긴급소집으로 귀대하여 궁정동 만찬장의 무참한 시신들을 확인, 수습해야만 했다. 이 현장 시신들 속에서 대통령 수행계장 박상범 경호관이 꿈틀거리는 모습을 발견하여 기적처럼 살아났다. 박 경호관은 고대 법대 60학번으로 김 장군과는 입학동기 사이였다. 그는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었지만 부상을 극복하여 뒤에 대통령 경호실장을 지냈다.
김 장군은 YS와 DJ정권에서 군사령관과 합참의장을 지냈다. 합참의장 시절에는 서해 연평해전 승리를 지휘했다. 동·서해안과 남해안 간첩선 침투, 격퇴 및 반잠수정 격침 등 전공을 세웠다.

군인의 명예를 위한 언론과 재판

김 장군이 제2군 사령관일 때 군인의 명예와 관련된 고소사건으로 언론과 전쟁을 치룬 경험이 있다. 중앙일보 자매지 월간 WIN이 김 장군이 ‘하나회’를 등에 업고 승진을 거듭했으며 11군단장(창녕 소재) 시절에는 YS 대통령의 부친 김홍조 옹을 찾아다녔다는 요지로 보도했다. 김 장군은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닌 허위보도라고 강조하고 정정보도를 요청했지만 받아주지 않자 고발한 것이다.
당시 김 장군은 대구에 있는 2군사령관으로서 위수지역을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여 법원이 대구지법으로 출장 와서 재판했다. 이 때 4성 장군이 얼룩무늬 야전복 차림으로 4시간 동안 꼿꼿한 자세로 답변한 모습이 화제였다. 또 김 장군이 김홍조 옹을 증인으로 요청하여 현직 대통령의 부친이 서면으로 답변한 것도 화제였다.
재판이 2년여 동안 계속되면서 김 장군은 DJ정부의 합참의장으로 승진하여 귀경하고 보니 소송 중인 중앙일보 금창태 사장이 대학선배로 난처했다. 그렇지만 김 장군은 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정정보도 없이는 고소를 취하할 수 없다는 강력한 입장을 견지했다.
결국 신문사가 공식문서를 통해 사과문을 보내 고소취하로 재판을 종결지었다. 김 장군은 자신의 명예뿐만 아니라 군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유력 언론사와 힘겨운 재판을 진행했던 것이다. 그 뒤 관련 기사를 작성했던 김준범 기자가 국방부 국정홍보 관리실장으로 부임하여 김 장군과 만나 골프를 함께 치는 친숙한 사이가 됐노라고 한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5호 (2015년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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