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피 용맹정신으로 국가안보 선두

9.28은 서울탈환 기념일
해병 불패정신 구국결의
중앙회, 서울역 광장서 ‘작통권’ 반대
붉은 피 용맹정신으로 국가안보 선두

붉은 피와 땀의 색깔. 해병대 전우회가 일제히 일어서서 9.28 서울 수복 기념일에 전시 작전통제권 논의를 반대하는 구국 결의대회를 가졌다. 해병대 전우회중앙회(총재 김명환)가 주최한 9.28 서울역 광장에서 있은 이날 대회는 임전무퇴(臨戰無退)의 용맹을 상징하는 해병대 복장과 붉은 명찰을 달고 나온 역전의 용사들이 많았다.

불패의 구국정신 일어서다

해병대는 비록 군복을 벗고 예비역으로 물러났더라도 나라가 위급하면 언제든지 전장에 뛰어들 수 있다는 행동력을 보여 왔다. 평시에는 교통정리와 불우이웃돕기 등으로 한가로이 지내지만 나라와 국민의 안녕을 해치는 사태가 생기면 순식간에 현장으로 뛰어가는 체질적 구국충정에 불타는 영원한 군인 상을 보여 왔다.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을 지켜내고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를 위한 범대위의 억지논리를 현장에서 분쇄하는 것도 해병대 전우들이었다.
이 해병전우회가 중앙회 지휘 하에 9월 28일 하오 서울역 광장에 모여 최근의 친북 좌경화 사태를 강력 비판하며 작통권 환수를 위한 논의자체를 즉각 중단하라는 목소리를 높이 외쳤다.
해병정신은 행동하기 전까지 신중하고 주도면밀하게 사태를 주시하지만 일단 행동에 돌입하면 물러서지 않는 불패(不敗)의 신화를 끝까지 수호한다. 이 때문에 최근 각계에서 작통권 환수를 반대하는 결의대회와 성명서 채택이 있었지만 이날 해병 전우회의 결의대회가 국방, 외교 당국에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9.28 서울탈환 기념일의 함성

해병 전우회가 9.28을 택일하여 작통권 환수 논의를 중단토록 촉구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믿어진다.
9.28 서울 수복 기념일은 해병대에 의해 수도 서울에 남아있던 인민군들을 소탕하고 중앙청 옥상에 대한민국 태극기를 게양한 날이다. 그러니까 적치(敵治) 3개월의 서울 시민들을 살려내고 대한민국을 회복시켰으니 구국기념일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해병 전우회의 9.28 결의대회는 친북 좌경세력이 날뛰는 이념분열의 시기에 정체불명의 한반도기를 철거하고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를 게양하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된다.
지금 다시 9.28을 회상해도 나라의 운명이 절박했을 때 용맹무쌍한 해병대 정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자랑스러운지 격찬하지 않을 수 없다.
해병대는 전쟁사상 가장 빛나는 획기적 전과를 올린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여 월미도를 탈환하고 인천상륙의 전위대로서 경기가도를 달려 김포공항과 연희고지를 탈환함으로써 질식하고 있던 수도 서울을 구해냈던 것이다.

박정모 소위 등 3용사

6·25 전쟁사에 따르면 해병대 제2대대 6중대 1소대 박정모(朴正模)소위와 양병수 1등 병조, 최국방 견습해병 등 3용사가 9월 27일 새벽 6시, 중앙청 꼭대기에 감격의 태극기를 올렸다.
이튿날 9월 28일,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이 수도 서울탈환식을 갖고 대한민국이 되살아났음을 대내외로 선포했다. 결국 해병대의 서울탈환작전성공이 곧 대한민국을 살려냈다는 의미와 다를 것이 없었다.
당시 해병대 2대대장 김종기 소령이 남긴 증언에 따르면 미 해병 1연대에 배속된 한국 해병대는 서울역, 조선호텔, 동대문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소탕전을 전개했다.
청파동 김효석(#金孝錫) 내무부장관 집에 대대 CP를 두고 있었다. 김 장관은 서울이 인민군에게 함락된 후 자수하여 “대한민국은 망했다. 모두 자수하라”는 권고 방송으로 공산군을 도왔다. 그렇지만 그도 패주하던 인민군과 함께 납북되고 말았다.
해병대는 9월 26일 아침부터 최후 발악하는 적과 조우했다. 남대문 지하도 등에 잠복하고 있던 적 1개 소대가 완강히 저항하자 화염방사기 등으로 육박하여 섬멸시킬 수 있었다. 이어 시가전에 돌입했을 때 해병 신병들은 겁도 없이 분대장 명령에 따라 돌격했다.
시민들이 곳곳에서 살아나와 공산군이 숨어있는 곳을 알려줘 즉각 소탕할 수 있었다. 순화병원에는 패주한 인민군이 그냥 두고 간 부상 인민군 200여명이 그대로 있었다.

적치 3개월 만에 태극기 게양

서울탈환의 영웅 박정모 소위는 9월 26일 하오 3시, 덕수궁과 반도호텔 쪽을 돌파하여 서울시청 측면에서 공격, 탈환하여 시청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했다. 시청 정문에는 커다란 스탈린과 김일성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당장 이를 끌어내려 불 질러 버렸다.

▲ 해병용사에 의해 정식으로 중앙청에 게양되는 태극기

이때 미 해병 5연대가 중앙청을 공격하느라 고전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박 소위는 통신병에게 상부의 호출에 응답하지 말라고 명령한 후 곧장 광화문으로 진격했다.
중앙청은 미군기의 네이팜 탄 공격으로 불타고 있었다. 세종로에는 적의 진지와 바리게이트로 벌집이 되어 있었고 잔당들의 저항은 완강했다. 적은 도망할 길이 없어 죽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박 소위 일행은 저녁 7시경에 조선호텔에 있는 본부로 귀환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해병대 김성은 참모장이 명령위반이라며 처벌하라고 지시했지만 대대장 김종기 소령이 전후 사정을 보고하고 용서를 빌었다. 이어 신현준 해병대 사령관과 김성은 참모장을 졸라 중앙청 공격을 허락 받을 수 있었다.
박 소위는 밤새껏 태극기를 구하고 공격준비를 끝내고는 새벽 2시에 중앙청 공격에 나섰다. 세종로 일대에는 20m 간격으로 방공호 마다 적 2명씩이 기관총과 박격포로 발악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일부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몰골이었다. 적은 이미 저항할 힘이 없었다.
중앙청이 화염에 쌓여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박 소위는 수류탄을 던지며 진격했다. 화염 속에 마지막 잔당이 도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중앙청에 도달했지만 철제 사다리가 폭격에 끊어지고 없었다. 소대원들의 혁대를 풀어 급히 로프를 만들어 이를 타고 박 소위와 최 수병이 옥상으로 올라가 눈물의 태극기를 올렸던 것이다.
수도 서울이 적의 수중에 들어 간지 석 달 만인 1950년 9월 27일 아침 6시였다. 이 전공으로 박 소위는 금성을지훈장을 받아 6·25전사에 빛나는 기록을 남겼다.
이날의 서울탈환 영웅이던 박정모 소위는 대령으로 예편한 노병으로 서울 상계동 자택에서 9.28 56주년을 맞았다. 노병은 그때의 전우들은 다 떠나가고 혼자 남아 6·25의 악몽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심정을 밝혔다.

서울과 대한민국 사수결의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탈환한 뒤 38선을 돌파하여 평양을 회복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했지만 김일성이 중공군을 끌어들여 서울이 다시 적치 하에 들어간 것은 뼈아픈 패배였다.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1·4 후퇴하면서 서울 시민들은 또다시 피난길에 올라야했다.
인민군에게 짓밟힌 서울이 이번에는 중공군에게 유린당했으니 그 처참한 고통과 비애는 말할 필요가 없었다. 함락 70여일 만에 서울 재탈환의 기회가 왔다.

▲ 맥아더와 함께 서울에 귀환한 이승만 대통령이 50년 9월 29일 중앙청홀에서 거행된 서울탈환 축하식에서 연설하고 있다.(左에서 세번째 맥아더원수)

백선엽 장군이 지휘하던 국군 1사단이 서울 재탈환 명령을 받고 제15연대 김안일 대령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다. 제2대대장 최병순 중령이 한강을 건너 지리멸렬한 중공군을 소탕하며 중앙청을 탈환한 것이 1951년 3월 14일 상호 11시 30분이었다.
두 번 죽다가 살아난 서울 시민들은 감격했다. 노인, 부녀자, 어린이 등이 지하 방공호에서 숨어 연명하다가 꾸역꾸역 걸어 나와 대한민국 만세와 국군 만세를 불렀다.
9.28 서울 수복 기념일을 택해 해병 전우회가 구국결의대회를 갖고 작통권 환수논의 중지를 호소한 것이 과연 무슨 뜻인지 누가 모르랴. 대한민국이 죽다가 살아난 날이요, 용맹무쌍한 해병 정신이 친북, 좌경세력이 준동하는 시기에 대한민국이 흔들리는 모습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이 분명하다.
간첩과 빨치산이 민주화 유공자로 둔갑하고 핵과 미사일로 위협하는 김정일에게 자주와 민족공조를 내세워 ‘우리끼리’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려는 세력들을 두고만 볼 수 있는가.
해병 전우회의 9.28 결의대회를 서울과 대한민국을 사수하려는 해병 정신의 진격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87호(2006년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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