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살기식’ 애국의무 쓸모없는 세월

7080 세대의 세월 한탄
옛 애국심·애사심 추억
‘죽기살기식’ 애국의무 쓸모없는 세월
대한민국 동네북 시대, 미래세대 걱정

‘죽기 살기식’ 옛 세월을 살아온 7080 노인네의 애국심(愛國心)과 애사심(愛社心) 추억이 애달프다. 일제말기, 8.15와 6.25 및 5.16을 거쳐 살아온 70년 세월이 금방인 것 같다. 그때 그 세월에 하느님, 부처님 섬기듯 신앙과 같았던 애국심과 애사심이 지금은 거의 쓸모없어진 세월인 것 같다는 느낌이다.

통금·야근·특근 시절의 애국·애사심

▲ 1977년 수출 100억 달러 달성 기념식.

7080 세대가 뒤돌아보니 태극기, 애국가, 무궁화와 함께 4월 5일 식목일, 3.1절, 6.25, 8.15 기념일에 애국가 부르고 태극기 뒤흔든 추억의 나날들이다. 지금은 대한민국 건국 이승만, 산업화 박정희 대통령 이야기도 듣는 귀가 없어졌다. 자유민주주의와 복지와 인권의 풍요를 누리고 비만(肥滿)을 걱정하는 세월이니 이미 케케묵은 이야기일 뿐이다.
그때 새벽에 출근하여 통금(通禁) 직전에야 귀가하는 고달픈 삶이었지만 중노동(重勞動)마저 큰 복이라고 여겼다.
그 시절 여름철 휴가가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야근(夜勤)을 밥 먹듯 하고 공휴일 특근(特勤)을 상습했던 기억은 또렷하다. 그러나 수당을 제대로 받았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국산품 애용이 애국심이라고 했다. ‘오리지널’이나 보세품(保稅品)을 밝히는 일부 계층은 ‘외산 한국인’(外産 韓國人)이라고 지탄하며 밀수범과 매점매석 꾼들과 함께 ‘반사회적 범죄’로 다스렸다. 또 양주(洋酒)와 양담배에도 벌금 물리고 흰쌀밥은 유죄로 분류되고 밀가루와 보리혼식을 영양식이라며 권장했다.
호화주택, 해외여행도 금지대상이고 프로복싱 세계타이틀 매치도 외화낭비라는 이유로 나라님의 특별결재 사항이었다. 가정마다 ‘한집 한등 끄기운동’으로 절전이 의무화되고 공무원과 직장인 모두에게 무한 근검(勤儉)과 절약(節約)이 강요되고 저축이 미덕으로 칭송되었다.
이들 모두가 나라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애국심의 행동강령이었다.

무한애국을 국민의무로 여긴 세월

나라가 온통 수출과 건설을 독촉하는 채찍질 세월이었다. 민간사회는 자조(自助)와 협동(協同)의 새마을운동이 곧 애국운동이었다. 전후 독일과 일본이 수출 100억 달러 달성으로 나라가 발전했으니 우리도 100억 달러를 달성하자는 목표를 내세웠다.
그러나 말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100억 달러 달성을 위한 바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당초 목표보다 3년이나 앞당겨 1977년 100억 달러를 달성했으니 기적이었다. ‘우리도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가 가시화 됐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날 현재까지 쌀 막걸리가 금지되고 양주, 양담배도 유죄이고 구정(舊正)휴무도 허용되지 않았으니 요즘 잣대로는 암흑의 세월이다. 그렇지만 나라가 무한 애국을 요구했기에 따르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자 도리라고 믿었기에 순응했을 뿐이다.
때는 직장을 갖는 것이 바늘구멍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원서를 제출할 구멍이 열손가락에 꼽을 지경이라 수백, 수천대 1의 경쟁을 뚫고 입사하기란 하늘에 달려있다고들 했다.
직장의 상하관계는 군대식이나 다름없이 계급과 직책에 따른 명령 위주였다. 상사의 담배 심부름하고 구두닦이 심부름했던 기억이 남아 있으니 장교 출신이 갑자기 졸병신세로 전락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살맛이 나고 희망에 부풀었다. 길거리에는 실업자 천지이고 대학 동료들이 만날 때마다 부러워 죽겠다고 하니 우쭐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매주 월요일 아침 조회(朝會)시간 사장님 훈시(訓示)는 나라님의 애국심 짜기와 거의 유사했다. 근검절약에다 연중무휴(年中無休)가 애사심이라고 귀가 아프게 강조했다.
사내 게시판에는 개인별 근무성적표가 표시되어 누구나 알 수 있게 공고했다. 사내 동료 간 경쟁을 촉발하고 외부 경쟁사와도 비교하여 오기를 부추겼다. 근무성적이 하위로 표시될 때는 “이놈아, 월급 아깝다”고 호령하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두근, 벌렁벌렁 뛸 수밖에 없었다.

세월의 변덕에 쓸모없어진 애국심

이 시절 나라가 요구하는 애국심, 회사가 요구하는 애사심이 틀렸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북의 김일성이 이승만과 박정희의 대한민국보다 국력이 앞서가던 시절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애국심과 애사심 밖에 도리가 없었다고 수긍했기 때문이다.
새벽 출근, 통금직전 퇴근의 만근(滿勤)이 애국·애사였다고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유일한 위로와 낙이 퇴근길의 한 모금이었다. 고구마로 빚은 막걸리와 두꺼비 소주가 주종이었다. 과로에 지친 빈속에 벌컥벌컥 마시는 술맛이 꿀맛이었다. 그러나 자주 속에 탈이 나 주머니 속의 위장약을 나눠가며 상복했다.
이 시절 세월이 멎어 있는지 흘러가는지 분간할 틈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무심한 세월은 제물에 빨리도 흘러갔다. 어느 날 꿈에 그리던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되니 대한민국이 세계에 홀랑 벗은 모습을 내보인 세계화의 세월이라고 했다. 곧이어 산업화와 민주화의 천지개벽 세상이 왔노라고 했다.
이때부터 월급과 보너스가 제대로 나오고 휴가수당에다 특근수당까지 겹쳐 나오니 참으로 신기했다. 우리세대의 애국심과 애사심의 결실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실감했다.
세월의 발전과 혁신이 귀신같았다. 생전 처음 듣는 ‘마이 홈’, ‘마이 카’라는 용어가 유행하여 대한민국 사상 첫 국산모델 포니(PONY) 승용차를 타고 고향길로 들어섰다.
출향(出鄕) 30여년만의 고향은 산천초목(山川草木)이 몽땅 변해 있었다. 옛것이라고는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어릴 적의 고향 어른들은 없어지고 죽마고우(竹馬故友)들도 출향했거나 일찍 떠나 소식이 없다.
꼬불꼬불 토담길과 초가집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새마을길에는 화물차와 승용차가 즐비하다. 경로당 노인네들이 ‘아무개 아들’ 아니냐고 반기니 나부터 벌써 환갑이 넘은 노인네다.
7080 세대가 옛 애국심과 애사심을 추억하며 마치 세월의 급변속에 ‘어항 속의 금붕어’ 처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어항의 물이 일시에 너무 많이 바뀌게 되면 금붕어들이 살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어느새 내 자신이 그런 신세가 되지 않았느냐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경로시대라지만 불길한 떼법세대

그 사이 대한민국이 발전하여 세계의 부자나라 클럽인 OECD 회원국이 되고 원조를 받아 연명하던 나라가 원조를 주는 나라로 팔자를 고쳤다.
더구나 경로(敬老)사회가 도래하여 지하철의 무한정 무임승차가 보장된다. 전국민 의료보험에 노령연금도 주어진다. 옛적에 못 보고 못 들은 출산장려금, 출산휴가도 제도화 됐다.
금기로 여겼던 골프가 자유화되고 해외여행도 자유화된 적이 오래다. 일본인보다 중국인 관광객이 넘쳐난다. 중국은 6.25 때 중공군으로 참전한 적국이었다. 국제정세도 바뀌고 국내 정치·사회도 몽땅 바뀌었다. 일본의 아베 수상 우경화가 성가시고 북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불안하지만 대한민국의 위상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별 손상이 없다.
반면에 7080 세대가 신앙처럼 지켜온 애국심과 애사심도 별로 쓸모가 없어졌다고 느껴진다. 아무도 옛날 애국심을 주장하지 않으니 결국 노인세대의 추억에 지나지 않는다.
집단시위 만능, 떼법 만능으로 비쳐지니 7080 세대의 눈에는 너무 불길(不吉)하다. 송전탑 하나 세울 수 없고 원전 보수 끝내고도 가동하지 못하니 나라가 말이 되느냐고 걱정된다. 심지어 해군기지 건설마저 공사중단을 몇 차례나 거듭해야 하니 국방이 되겠느냐고 한탄한다.
노조권력, NGO권력이 천지를 모른다. 정치노조의 기득권 논리가 청년 실업자들을 꼼짝달싹 못하게 막아 놓고 있지만 말릴 재간이 없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보다 세월호국민대책위라는 정체불명의 조직이 수도서울의 도심을 지배한다.
선출직 황제권력으로 군림하는 의회권력이 ‘돈 밝히는 사회’를 주도하는 형국이다. 입법권, 예산심의권 독점을 마치 하늘이 내린 신성불가침의 특권처럼 독주한다. 청부입법 로비입법이란 말도 자주 나온다.
국가안보는 군경이나 공안기관만의 소관이고 애사심은 주총을 앞둔 CEO만의 책임소관이라 여기는 꼴이다.
7080 노안에 비친 2015년의 대한민국은 마치 주인 없는 무주공산(無主空山)에다 아무나 집적거리고 흔들어도 괜찮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이 판국에 이적(利敵) 종북(從北)세력마저 준동하고 있지 않은가.

늙은피가 끓고 있지만 하소연 할 곳 없네

민주주의와 선거제도가 좋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살아 온지도 퍽 오래됐다. 대통령도 바뀌고 국회의원들도 정기적으로 바뀌니 백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자세로 고분고분하니 기분이 좋다. 그렇지만 집권자가 ‘선출된 황제’라는 지적이 나오더니 ‘국회선진화법’이라는 요상한 법률을 만들어 ‘황제 야당’이라는 말도 나온다. 민생(民生)은 없고 인기와 포퓰리즘으로 국민세금을 낭비하는 야합과 담합판에 국민을 봉으로 여기는 정치꾼들 세상이 되고 말았다.
역대 대통령들이 ‘역사병’(歷史病)으로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사를 뒤 바꾸겠다고 시도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과거사를 뒤엎고 역사 교과서를 변조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마저 뒤죽박죽으로 뒤섞어 놓고 말았다. 사법부의 판단도 수시로 뒤바꿔 지난 70년대 국가보안법 위반 간첩들이 무죄가 되어 국민세금으로 거액을 배상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좌파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에 의해 공안사범들이 무더기로 사면 복권되어 위헌정당 통진당 사태를 빚었다. 위장탈북 간첩이 종종 적발되지만 증거조작이란 이름으로 무죄 석방되고 그를 변호하던 민변 변호사와 결혼함으로써 간첩 잡는 국정원의 대공능력을 조롱하기에 이르렀다.
정당정치가 포퓰리즘화 하여 국민개세주의(皆稅主義)가 변질하여 근로소득자의 45%인 740만명이 한 푼도 세금을 물지 않는다. 국민개병주의(皆兵主義)가 변질하여 복무기간이 단축되고 병역자원이 모자라 국방당국이 전전긍긍하고 있는데도 성급하게 징병제를 모병제(募兵制)로 바꾸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국방과 안보가 더 이상 필요 없는 평화시대가 도래했다고 착각하니 똥별들에 의한 방산(防産)비리라는 이적범죄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고 7080 세대의 애국심과 애사심이 서글픈 심정으로 통탄하지 않고 배길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이제 와서 무슨 수로 세월을 되돌릴 수 있겠는가. 다만 앞을 내다보지 못한 채 죽기 살기로 살아온 옛 세월이 무정하고 허무하다는 서러움을 주체할 수 없을 뿐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다문화 사회가 되어 옛 전통과 역사문화가 케케묵은 낡은 가치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지만 부모와 자식사이, 부부사이마저 보험금을 노리는 ‘보험살인’이 유행이니 이를 두고만 볼 것인가. 호주제가 없어지고 간통죄도 무죄가 되었으니 가정도 파괴되고 있지 않은가.
경로우대 사회라지만 노인학대도 친족에 의해 저질러지는 세월이니 새삼 말해 뭘 하겠는가. 얼마 남지 않은 세월이지만 늙은 피가 끓고 있는 것을 누구에게 하소연하고 떠날 것인가 막연하다는 심정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0호 (2015년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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