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우 회장, 2세에게 대물림 소망
아태지역 친선교류 회의로 활동 재개

‘21세기 환태평양 시대’
33년 민간외교가 보람
이영우 회장, 2세에게 대물림 소망
아태지역 친선교류 회의로 활동 재개

최근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풍부한 천연자원과 우수한 노동력, 거대한 시장을 바탕으로 급성장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아·태 지역 내 국가들 간의 경제적·외교적인 교류협력과 상호 우호증진을 위한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민간 외교 및 경제협력단체인 사단법인 환태평양협회의 이영우(李映雨) 회장은 ‘21세기 환태평양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가 이 시대를 이끌어갈 주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민간 차원의 교류와 협력이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 환태평양협회의 이영우(李映雨) 회장

33년간 환태평양 지역 국가 간의 경제협력 및 학술·문화·친선 교류확대를 위해 민간 외교사절로서 활동해 온 그는 “올해에는 잠시 주춤했던 협회 활동을 활성화시켜 그동안 민간 외교의 최전방에서 쌓아온 다양한 경험과 명성을 바탕으로 민간 외교의 가교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오일파동으로 민간외교 필요성 절감

사단법인 환태평양협회는 우리나라와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 간의 경제협력사업 및 이해증진을 목적으로 81년 설립되었다. 이 협회의 전신은 전경련 회원사 대표가 주축이 되어 75년 결성된 한호협회이다.
이 회장은 7년간 한호협회 상임부회장과 3대 회장을 맡아오다가 환태평양협회로 개편되면서 초대 회장으로 취임, 민간외교를 통해 국가경제발전과 국제 교류를 활성화한다는 사명감으로 현재까지 협회를 이끌어오고 있다.
“건설회사에서 사장으로 일하던 당시(73년) 1차 오일파동이 일어나 업계가 많은 어려움을 겪었었지요. 이에 민간 차원에서도 자원보유국가와 협력강화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당시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하고 전경련 부회장직을 맡았던 원용성 장관과 뜻을 모아 전경련 회원사 대표 70여명과 전직 국무총리, 경제 각료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호협회를 설립했다. 이후 자원이 풍부한 호주, 뉴질랜드 및 남태평양 지역국들과 민간 차원에서 직접적 경제외교를 시작하였고 그 결과 자원 확보와 기업의 해외 진출에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다 80년대 21세기 태평양시대의 도래가 가시적으로 다가오면서 호주 뿐만 아니라 일본,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 등 여타 태평양 지역 국가들과의 경제교류 및 우호협력 강화를 위해 환호협회를 확대 개편하여 발족된 것이 사단법인 환태평양협회였다.

33년간 경제협력·친선확대 노력

7개 해외 지부와 20여개 이상의 산하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환태평양협회는 회장단, 고문단, 명예회원을 포함한 약 1,000명의 회원들과 함께 민간 국제외교의 최전방에서 국제 친선과 경제협력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 회장은 협회 설립 이후의 33년간은 그야말로 ‘민간외교의 산 역사’였다고 자부한다.
협회는 아시아·태평양 지역국을 대상으로 친선 통상사절단, 자원조사단, 경제사절단 등을 파견해 민간사절단으로 활약했다. 특히 태평양지역 국가들과 경제·문화세미나 개최를 통한 학술교류, 해외교포 초청행사를 통한 문화교류, 각종 산업전시회 개최, 합작투자사업 추진, 교역확대 촉진 등 경제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활동을 추진해왔다.
또 국제 친선확대를 위한 전위부대의 역할도 담당했다. 주한 아·태 외교관 등 구내 주요 외교 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국내외 유력인사 초청 등 친선교류도 협회의 몫이었다.
그 결과 미국, 캐나다, 중국, 호주, 인도네시아 등 아·태 연안국가 및 이들 주요 도시의 각종 단체 및 연구소 등과 자매결연을 체결하고 지역협력위원회도 조직하여 정부 및 기업의 국제화 세계화에 기여해왔다.

보이지 않은 곳에서 로비스트 자처

이 회장은 환태평양협회는 외교통상부 산하 민간 외교단체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단체로서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 국제사회에서의 대외 위상 강화,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 일익을 담당해 왔다고 밝힌다.
그는 과거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이 호주에 대우실업 지사를 설립할 때나 오비맥주가 합자회사를 만들 때 협회의 추천을 받아야 했을 정도로 환태평양 지역 국가들에 대한 협회의 영향력이나 위상이 높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환태평양협회는 이러한 관련 국가들과의 돈독한 우호관계를 바탕으로 보이지 않은 곳에서 국가를 위해 활동하는 합법적이고 건전한 로비스트의 역할도 자처했다.
“80년대 남북한 군사적 대치상황이 지속되고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 하에서, 남북한 양국은 한반도 문제 결의안 채택 등의 남북현안에 있어 UN회원국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물밑경쟁이 치열했었지요. 그때 남태평양 연안의 작은 국가들도 UN 회원국으로서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평소 그들과 쌓아온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우리 측에 우호적인 표를 얻기 위해 숨은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86 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을 치루면서 우리나라의 높아진 대외 위상으로 기업 등에서 독자적으로 해외국가에 대한 접촉라인을 구축하게 되었고, 동시에 협회의 역할도 많이 축소되었다”며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진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외국인 최초 중국무역촉진위원회 고문

이영우 회장은 환태평양협회 회장이기 이전에 건설업체 사장 등을 지낸 기업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경주 출생인 그는 경주상고를 나와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다니다 군 입대로 학업을 중단한 후 27세의 젊은 나이에 부국건설의 상무이사로 건설업계에 몸담게 되었다.
이후 태일기업, 남산관광, 한주석유, 거남주택, 대한주택 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식품경제신문, 대구신문 회장, 통진학원 이사장, (사)민족정신중흥회 총재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또한 환호협회 부회장(75), 환태평양협회 회장(81) 이외에도 한국민간외교협의회 초대 회장(77년), 한국라운드테이블연합회총재(80년), 한미정치활동위원회 고문(85), 민족정신해외선양회 회장(86), 한미경제외교협회 회장(98) 등을 맡으며 오랜 기간 민간 외교 분야에서 광범위한 활동을 벌여왔다.
그는 “본래 외교전문가는 아니었으나 33년간이나 이 분야에서 활동하다보니 민간외교가로서의 남다른 사명감이 생겼다”며 “특히 91년 당시 비수교국이던 중국에서 외국인으로 최초로 중국 하북성 국제무역촉진위원회 고문으로 위촉되어 중국을 중심으로 한 북방외교에 다소나마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보람 있었다”고 말한다.
이후 이 회장은 91년 한중협력위원회를 설립하여 중국 하북성 경제단체간 자매결연을 체결하여 한라그룹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의 중국 하북성 진출을 돕는 등 중국에서 조직적인 외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두 아들과 민간외교 소임 나눌 터

지난 몇 년간 대외적인 협회 활동을 잠시 쉬었던 이 회장은 올해 1년에 한차례씩 열리던 ‘아시아·태평양 지역 친선 교류회의’ 개최를 시작으로 활동을 재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제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두 아들들과 민간외교사절의 소임을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10년간 근무하다 최근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장남에게 사무총장을 맡긴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가지고 있다.
“장기적이고 거시적 차원에서 국제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민간 레벨의 외교활동을 강화함으로써 정부간 외교를 보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87개국의 주한 대사들 중 25개국 대사들과 현재도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민간외교의 첨병으로서 역할을 해 나가고 싶습니다.”
활발한 민간 외교활동이 곧 국익 증진과 직결된다는 사명감으로 살아 온 이 회장의 33년의 세월이 헛되지 않도록 공식채널을 통한 공공외교 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의 대외활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기를 기대해본다. (全)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90호(2007년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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