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경쟁방지법 개정, 보호범위 확대

필자는 길었던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D제약회사에서 ‘영업비밀 보호’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되었다. 영업 비밀에 대한 강의는 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법무팀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와 연구원, 직원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가 강조하는 포인트가 다르다. 법무팀을 상대로 강의할 때는 회사의 시스템 만드는 법을 강조하고, 직원을 상대로 강의할 때는 비밀 침해 방지에 중점을 둔다.

영업비밀 유출의 IT시대

[고윤기 칼럼 @이코노미톡뉴스(이톡뉴스)] 필자가 강의한 D제약회사는 최근에 보안 관련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였다. 개인 USB로 자료를 주고받는 것을 금지하고, 회사가 소유하는 클라우드 저장 시스템을 통해 회사의 정보를 관리한다. 필자는 강의할 때 파워포인트 대신에 ‘프레지’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는데, 보안이 잘되어 있는 회사에서는 이 프로그램이 구동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올해 딱 두 번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한번은 법무부에서 강의할 때고, 이번에 D제약회사에서 강의할 때 그랬다. 그만큼 보안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는 뜻이다.

USB 메모리, SD카드 등 작지만 용량이 큰 저장매체가 발달하면서 영업비밀 유출은 더 쉽게 일어나고 있다. 핸드폰에 들어가는 마이크로SD메모리는 이제 256G는 흔히 볼 수 있고, 테라바이트의 저장 공간을 가지는 것도 등장했다. 곧 몸에다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술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영업비밀 유출도 쉬워질 것이다.

보안시스템, 비밀 침해의 인정여부

필자는 강의를 할 때 항상 필자의 사무실에서 진행했던 사례와 최신 판결을 업데이트 한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최신 판결을 공부하고, 가지고 있던 지식을 업데이트 하는 기회로 삼는다. 이번 강의 전에도 최근 3년간의 영업비밀과 관련된 판결들을 훑어보았다. 판결마다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회사가 영업 비밀을 보호받기 위한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놓았는가에 따라 영업비밀 침해의 인정여부가 달라진다. 시스템이 잘 만들어져 있으면 영업비밀의 침해가 인정되고, 그렇지 않으면 영업비밀의 침해가 부정된다.

영업 비밀을 ‘관리’한다고 말하려면, 보통 세 가지를 갖춘 경우를 말한다. 하나는 회사 내의 제도적 장치, 다른 하나는 인적관리, 마지막으로 물리적 관리이다.

제도적·인적·물리적 관리 장치

제도적 장치는 일단 회사 내부규정으로 영업비밀 관리규정’을 만들면 된다. 그리고 그 규정에 따라 영업 비밀관리 대장을 만들고, 보관 장소, 관리책임자, 보존기간 등 세부적인 사항을 기록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영업 비밀을 1급, 2급 3급으로 단계를 나누어 분류하면 좋다.

인적관리는 직원과 관련된 보호 장치이다. 회사는 직원으로부터 영업 비밀보호 서약서를 받거나 영업 비밀 서약을 취업규칙에 넣기도 한다. 영업 비밀을 취급하던 직원이 퇴사하는 경우 ‘퇴직자 영업비밀유지 서약서’를 받고, 그 직원이 관리하던 ‘영업비밀 목록 및 보유자료’를 제출 받는 게 기본이다. 회사 외부와의 관계도 신경 써야 한다. 거래상, 영업상 부득이하게 우리 회사의 영업 비밀에 대한 자료를 외부에 주어야 할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 영업비밀 유출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 경우 상대방으로부터 제공받은 영업비밀의 사용범위를 명시한 영업 비밀 서약서 또는 비밀유지계약서를 받는 것도 좋다. 특히 거래처 및 협력업체의 경우 영업비밀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물리적 관리는 쉽게 말하면 영업비밀의 차단·격리이다. 예를 들어 영업비밀이 서류로 작성된 경우에는 최소한 일반 문서와 분리하여 잠금 장치가 있는 별도의 장소에 보관해야 한다. 영업비밀이 전자데이터로 만들어 진 경우에는, 컴퓨터나 파일 열람에 관한 패스워드 설정, 패스워드의 유효기간 설정, 네트워크에 접속할 때의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인터넷 등 외부 네트워크를 통해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영업 비밀을 취급하는 컴퓨터의 외부 네트워크를 차단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메일에 대한 보안조치는 꼭 점검해야할 항목이다.

‘부정경쟁방지법’, 관리수준 완화

회사에 위와 같은 세 가지 조치가 시행되고 있을 때 ‘영업 비밀 관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마다 사정이 다르다. 중소기업에다 삼성전자와 같은 수준의 영업 비밀 관리하라고 할 수 있을까? 논의에 앞서 먼저 법을 한번 들여다보자. 영업비밀과 관련된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는 법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다. 줄여서 부정경쟁방지법이라고 한다. 이 법은 영업비밀 관리와 관련하여 상당히 엄격히 규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중소기업 가운데에는 기술개발에만 치중하고 영업비밀 보호를 위한 충분한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나머지 ‘비밀관리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였다.

결국 국회에서는 2015. 1. 28. 부정경쟁방지법을 일부 개정해서, 비밀유지관리 수준을 완화하였다. ‘영업비밀’의 정의와 관련하여 영업비밀로 보호되기 위하여 필요한 비밀유지·관리 수준을 ‘상당한 노력’에서 ‘합리적인 노력’으로 완화한 것이다. ‘상당한’과 ‘합리적인’의 차이가 무엇인가? 보통사람이 보기에는 단순히 말장난으로 보인다. 외국법을 참조해서 법을 만들다 보니 발생한 일이다. 어쨌든 합리적 노력이 상당한 노력보다 노력의 수준이 적다고 생각하자.

‘영업비밀’ 보호 범위 넓어져

법 개정 전에는 영업 비밀보유 기업의 규모는 원칙적으로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법원은 삼성전자나 중소기업이나 원칙적으로 같은 기준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법이 개정되면서, 영업비밀 보유 기업의 규모, 해당 정보의 성질과 가치, 해당 정보에 일상적인 접근을 허용하여야 할 영업상의 필요성이 존재하는지 여부, 영업비밀 보유자와 침해자 사이의 신뢰관계의 정도, 과거에 영업 비밀 침해당한 전력이 있는지 여부까지 고려대상이 되었다. 즉 영업비밀로 보호받는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아무리 법에서 영업 비밀 넓게 보호해준다고 해도, 기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회사에 대해서 까지 보호해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회사의 영업비밀이 잘 관리되고 있는지 점검하자. 영업 비밀은 한번 유출되면, 회사에 막대한 타격을 준다.

<필자소개> 고윤기

-고윤기 변호사는 사법시험(사법연수원 39기)을 합격한 연세대 출신으로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 기획, 인권이사를 역임했다. 서울동부지방검찰청 형사조정위원회 위원과 서울시 소비자정책위원 등 다양한 공적 활동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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